바쁘게 살고 싶다는 생각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결코 일 중독이라거나 공부 중독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못된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 그런 성격을 가지고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건 어디까지나 내가 시키면 하는 타입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내 성격은 어느 정도는 수동적이고, 이렇게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입시 제도를 맨날 비판하고 있긴 하지만 어쩌면 그런 입시 제도가 나를 그나마 여기 까지 올려보내준 것일지도 모른다는, 그러니까 내가 이 제도 최대의 수혜자 중 한 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그러니까, 김두식 선생님의 <욕망해도 괜찮아>에 따르자면, 나는 어디까지나 '계'의 사람이고, '선을 못넘는' 사람인 셈이다.


그렇지만, 내 머릿속 깊은 곳 어딘가에는, 나 스스로 바쁘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다. 맨날 여유, 여유, 그렇게나 여유를 좋아하는 나이고, 실제로 공부하면서도 그 쥐꼬리같은 여유를 찾아 챙기는 나이지만,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니까 소위 일이나 공부같은 것에 '중독'된 사람들을 조금은 부러워했고, 또 조금은 동경하기도 했다. 애초에 나는 그 정도의 집중력이 되지 못하고, 또 그렇게 극한까지 치달아본 적이 없어서 그래본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아무리 현대 사회가 사람을 몰아간다고 하더라도, 내가 몰리는 바로 그 사람이 되기를 조금은 바랐던 것이다. 물론 상상력이 부족하 나는 그렇게 '몰리는' 부분을 항상 한정하고 있었다. 내가 검사가 되서. 내가 변호사가 되서. 하다못해 내가 대학생이 되서. 과연 나는 바쁘게 살면서, 행복해할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그런 행복함 조차 챙기지 못할 정도로, 그러니까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을 동경했던 것일지도 모르고.


글을 쓰면서 나 자신도 느끼는 것이지만, 참 이상한 동경이었던 것 같다. 그런 생활이 만족스러울 리가 있나. 그런 생활이 행복할리가 있나. 그런걸 뻔히 알면서도, 왜 자꾸 그런 상상을 하곤 했던 걸까. 그런데 정작 바빠야하는 나는, 왜 이렇게 여유를 부리고 있나. 혹시 내가 바빠지고 싶은 이유는, "나 이렇게 바빠. 그러니까 나 좀 건드리지마. 나 이렇게 바쁜데 왜 나한테 그래?"라는, 일종의 특권 의식을 가지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그럼 나는 고3을 거치면서 그렇게나 '특권 의식'에 빠져 있었던 걸까.


*


이건, 어디까지나 학원에 치이기 이전의 생각이었고, 지금은 어떤가 하면.


학원을 다니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건, 이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바쁘게 살고 있는가에 관한 것. 말은 저렇게 하지만, 나는 잠깐의 서울 생활로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다. 한마디로, 동경은 했지만 역시 나에게 어울리지는 않는 생활이었던 것 같다. 순천에선 상상도 못할 그런 생활이었다. 아침에 학원까지는 걷는 1km 남짓을 합쳐 1시간 정도가 걸린다. 서울에 올라오니, 그 1시간이라는 시간이 아주 긴 시간은 아니었다. 친구들은 용인에서, 분당에서, 수원에서. 다들 힘들게, 바쁘게 살고 있었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 였다. 그리고 그 선생님들의 학창시절은, 그들의 이야기에 과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의혹(?)을 포함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이상으로 치열했던 것 같다.


학원에 다니면서 2주에 1번씩 자리를 바꾸는데, 어쩌다보니 상당한 경쟁이 붙어서, 어느새 강북에 사는 나는 4시 반에 일어나서 택시를 타고 한강을 넘어야하는 처지가 되버렸다. 그렇게 살다보니 해가 일찍 뜨는 여름에도 강남으로 넘어갈 즈음의 강남의 모습은 '야경'이었다. 감동에 젖고 무엇이고 간에,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 앞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동경한다던 그 사람은 어디에 가버린거야?


고3때도 비슷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 때 이상으로, 가장 바라는건 여유일 뿐이다. 솔직히 미치겠는 생활이고.. 강북에도 널린 학원을 두고 강남을 고른 내 미스도 있었지만.. 정말 힘들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이미 몸이 못 버티고 있다. 조금 더 힘내야지, 힘내야지, 하는데, 몸이 안따라준다. 


그러던 차에 담임 선생님(학원)이 아침 조회 때 해준 한 마디. "정신력으로 버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한창 의지 드립이 뜨겁던 때라(지금도 뜨겁긴 한가?) 그 생각도 조금은 났고, 우선 나 스스로 인정해야한다는걸 알았다. 내가 하자, 해보자, 해서 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인정할건 인정해야하는거 아닌가. 나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지 말자..라고. 우리 모두가 너무 바쁘게 사는 데에 매몰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라고. 무조건 자기를 몰아세우고 자기를 궁지로 몰아가는 사람들에게 잘했어, 대단한데, 하고 박수를 쳐주는 사람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기만 하면 쏟아지는 기사들. 이렇게 힘들게 훈련했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성공했다, 이런 무관심 속에서 따낸 메달이다. 대단한 일은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그래서? 왜 우리는 그런 이야기에 자꾸 열광하는 걸까. 상식적으로는 그들의 처지에 안타까워하고 그들의 처지를 개선할 방법을 찾아야하는데(비록 스포츠에 대한 국가적 투자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의 입장 차이는 접어두더라도), 우리는 와 대단한데? 라면서 은근히 충분히 투자받고도 성공을 이뤄내지 못한(메달을 따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 칼날을 들이민다. 스포츠 뿐이 아니라, 우리 생활 전반에. 그렇게 바쁘고 힘들게 살아야만 성공적인 삶인걸까?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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