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감정이 장난스럽게 퍼지는 과정

그렇습니다. 저, 전남에서 태어나 전남에서 자랐습니다. 서울에 올라오기 전까지 20년 가까운 세월을 전남에서만 자라왔죠. 접하는 사람의 70퍼센트 이상은 아마도 전남 사람이었을 것이고, 나머지도 전남 그 자체에 대놓고 반감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물론 워낙 전남에 관련된 여러 코드들이 인터넷에서 장난스럽게 사용되는 풍조가 강해서, 제가 어차피 백날 '짖어'봤자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인터넷에서 그 자체에 대해서 시비를 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그리고 이런 생활은, 아마도 전남에서만 살아왔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터입니다.

그랬던게 문제가 된건  역시 서울에 올라와서였습니다. 서울에 올라온지 2달 정도 되어가고, 학원 생활에도 어느 정도 적응하고 있긴 하지만, 역시 아직은 호감도로는 서울<순천이고... 문화생활 같은거 다 접어두고 딱 사람이 쾌적하게 평화롭게 사느 건 순천이 훨씬 더 낫다는 생각은 아마도 지워지지 않을 거 같습니다... 이게 주제가 아니고. 어쨌든 그래서 무엇이 문제인고 하니, 얼마전부터 합류한 한 친구의, 좋게 말하든 나쁘게 말하든 '개드립'이 문제죠. 드립, 그것도 개드립.. 싫어하지 않아요. 굉장히 재밌어라합니다. 그게 저랑 관련된 거라도 왠만하면 재밌으니 괜찮음ㅋ 하는 주의인걸요. 

문제는 이 친구의 드립이 전남, 좌파, 빨갱이, 북한, 5.18로 흐르는, 한마디로 단적으로 제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개드립으로 흐르고 있다는 거지요. 사실 전남=호남=좌파=빨갱이=북한(엄밀히 말하자면 종북이라는 말이 맞습니다)이라는 이 공식을 가지고 당당하게 드립을 치면서 자기는 중립이라는 입장을 표명하는데 있어서도 제가 지적하고 싶은게 한 둘은 아니지만, 학원 생활은 모나지 않게, 정치적 성향도 밑으로 내리깔고 살아가자, 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그냥 하지 마라는 정도로 그치고 있습니다. 처음에 전남=좌파까지야 100% 틀린 소리는 아니니 그러려니 했지만 소재에 절대 건드려선 안될 예들 - 그러니까 당장 제 부모님 세대에 있었던 그 사건을 개드립 소재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상상 이상으로 기분이 나쁘네요. 북한으로 이어지는 논리는 중립이 아니라 보수 꼴통도 이제는 더 이상 써먹지 않을 논리임은 접어두더라도, 이젠 개드립같지도 않습니다. 그건 그냥 개소리죠. 개소리같은게 아니라 정말 멍멍 짖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에요.

 이 친구를 보아하니 지역 감정이 어떻게 장난스럽게 퍼질 수 있는지 일면 이해가 갑니다. 제가 이전에 몇 번 글을 쓰면서 언급했던, 인간적으로 어떻게 5.18 민주화 운동을 그렇게 장난스럽게 말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지역과 무관하게 우리 사회의 토대를 쌓아온 과정 중 하나인 민주화 운동을 단순히 전남이라는 지역 코드와 묶어 그렇게 짓밟아도 되는거냐, 했던 말의 가장 바탕이 되는 전제- 즉 5.18 민주화 운동이 얼마나 '중요한' 역사이고, 얼마나 '피'의 역사인지 거의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저도 제가 다른 지역에서 태어났다면 과연 5.18 민주화 운동을 어떻게 말할지 자신은 없지만- 그저 씁쓸하기만 하네요.

P.S.)
네이버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검색하다보면 어떤 블로그에서 '민주화 폭동' 정도가 가장 옳고, 중립적이 표현은 '광주사태'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솔직히 이해할 수 없는 논리다. 왜, 그러면 3.1 운동은 3.1 폭동인가. 부마항쟁은 부마폭동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확실히 짓밟히는 역사이긴 한 모양입니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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