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코노 이야기' 최고의 이야기, <민들레 공책>

#2012-03



  원래 단편 소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사실 도코노 이야기의 첫 작품인 <빛의 제국>에 아주 만족하지는 못했다. 그러다보니 과연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도 되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도 생겼다. 읽어야할 책.. 이라기 보다도 읽고 싶은 책이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상황에서, 시간도 아주 많지 못하니 꼭 읽고 싶은 책만 읽고 싶다- 라는, 언제나 그렇지만 편중된 독서경향의 결과물인 고민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민들레 공책>이 <빛의 제국>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는 듯 싶어, 결국에는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대만족이었다. '나'나 사토코나.. 요즘 들어 유난히 소설에 있어서 캐릭터가 매력적이네 어쩌네 하는 소리를 자꾸 입에 담게 되는 것 같은데, 이번 소설도 하나같이 매력적이었다고나 할까.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그런 두 캐릭터, 그리고 그 오묘한 신분의 수직 관계를 드러내지 않는 천진난만함과 순수함은 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이런 분위기는 서술 방식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모두 경어체로 이끌어나가진다. 단순히 어린 아이의 시점이기 때문은 아니지만(서술 시점에서 이미 할머니의 나이다. 소설은 모두 회상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서술은 소설의 전체적인 밝은 느낌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밝은 이야기보다는 어두운 이야기가 더 많았고, 어두운 이야기보다는 도대체 맥을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더 많았던 <빛의 제국>과는 달리, <민들레 공책>은 굉장히 밝은 이야기다. 이야기 자체는 참신하다거나 할 것은 없다. 결국, 독자들이 생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사토코가 죽는다는 것을 제외하면 진부한 이야기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다.  알 수 없는 탁함이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는 역시 '도코노'라는 환상성에 의한 것이 아닐까. 그 외에는 <빛의 제국>에서 저자의 어두운 경향을 까내렸던 내가 민망할 정도로 밝다. 중반까지는 지극히 평범한 세계 대전 즈음의, 그러나 전쟁의 마수가 아직은 온전히 닿지 못한 시골 마을에서의 두 소녀 이야기였고, 결말은 소녀를 그리는 소녀 이야기였으며, 마지막에 현재의 시점으로 돌아와서는 결국 전쟁의 마수에 의해 무너진 촌락 이야기였다. 감탄스러운 것은, 어느 요소도 재미있었다는 것.

  한편 도코노 이야기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선 것과는 달리, 평범한 소설같은 느낌을 계속 유지한다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사토코가 '먼 눈'으로서의 능력을 가지고 있고, 소설 곳곳에서 사토코가 도코노의 일원일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느낌의 표현이 묻어나기도 하지만, 적어도 이 소설에는 그런 환상성이 짙게 개입하지 않는다. 심지어 도코노 일족 중 하나인 하루타 일가가 이야기 전반에 개입하고, 결국 하루타 일가가 소설 전반에서 도코노 일족을 대표하여 묘사되지만, 몇몇 장면에서만 느낄 수 있을 분 소설의 핵심이 되는 두 소녀에게는 그런 느낌이 거의 닿지 않는다. 마치 어디까지나 어른의 이야기와 아이의 이야기를 나눠놓은 것처럼.



  고백하자면, 민들레 공책을 이렇게 재밌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코노 이야기의 세 번째가 되는 <엔드 게임>은 읽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평가는 조금 오묘하지만 전반적으로 괜찮다, 라는 평가였지만, 애초에 소재 자체가 <빛의 제국>에서도 별로 관심이 없었던 <오셀로 게임>이었기 때문에 큰 관심이 가지 않았다. 온다 리쿠의 첫 작품으로 <밤의 피크닉>을 접하고 그 이후로 몇 권의 책을 더 접해보았는데, <민들레 공책> 자체는 온다 리쿠의 작품에서는 평작~수작 사이에 배치할만 하고, <도코노 이야기> 시리즈 자체도 온다 리쿠 팬들에게는 큰 호응을 얻은 모양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평작 이하의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서의 도코노 이야기를 <엔드 게임>이 아닌, <민들레 공책>에서 끝낸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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