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 리쿠 - <빛의 제국> : '도코노 이야기'의 서장


  온다 리쿠의 소설을 그렇게 많이 읽은 편은 아니지만, 굉장히 매력적인 작가라고 항상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첫 작품으로 접했던 <밤의 피크닉>이나, 그 후에 읽게 된 <굽이치는 강가에서>는, 온다 리쿠 특유의 환상성이 짙게 드러나는 시리즈는 아닙니다. 온다 리쿠의 작품은 대개 장르불문이라는 느낌이 강해서, 한 작가의 작품인데도 그 작품색만 남을 뿐 작품간의 어떤 공통성을 찾아내기 쉽지 않습니다. 즉, 그녀의 작품은 굉장히 넓은 분야를 커버하고 있는 것이죠. 밤의 피크닉은 굉장히 잔잔한 작품이었고, 굽이치는 강가에서는 그 긴장감을 한 순간도 풀어놓지 않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밤의 피크닉의 경우 읽은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이렇다, 라고 단언하기 어려워졌습니다만, <굽이치는 강가에서>라는 작품에서 느꼈던 온다 리쿠에 대한 느낌은 역시 '이질감'이 아니었나 합니다. 그리고 그 작품에 이어 읽게된 도코노 연작 소설 시리즈의 서장과도 같은 작품, 이 <빛의 제국> 역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빛의 제국>은 대놓고 환상성을 우리 일상생활에 집어넣은 작품이라 이질감을 느끼는게 당연하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굽이치는 강가에서>에서 느꼈던 그 이질감은 어떻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낭만적 긴장감, 이라는, 제 리뷰에서 제가 직접 썼던 표현이 제가 그 작품을 설명하는데 쓸 수 있는 가장 명쾌한 말 중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빛의 제국>은, 연작 소설 시리즈의 첫 번째라고 하지만, 단편집입니다. 물론 굳이 나누자면 이건 단편이다, 이건 옴니버스다, 이건 장편이다, 이렇게 분류하고 싶은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도코노 일족이라고 하는 소재만을 매개로 묶어져있습니다. 이 작품은 소설이라는 의미 이상으로 역시 풀어쓴 설정집이란 느낌인데, 라는 느낌으로 중간까지 읽었습니다. 단언컨대 이 소설은, 앞부분보다 뒷부분이 훨씬 재밌습니다. 아니, 재밌다고 하기는 뭐하고, 훨씬 낫습니다. 그런 소설입니다.



  이 책은 10개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꽤 기준이 모호하고, 자기들끼리 알게 모르게 연관이 되어있는 만큼, 범주에 따라 묶을 수 있는 기준은 꽤 여러가지가 있을 겁니다. 완전히 따로 노는 이야기는 '오셀로 게임', '잡초 뽑기', 이렇게 두 작품이 아닐런지요. 나눠볼까 했는데 꽤 소설이 엉겨있다, 라는 느낌으로 묶여있어서, 뭐라고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하루타 가족', '아쓰시', '두루미 선생님', '아키코' 정도의 범주로 묶어낼 수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를 고르라고 한다면 '다루마 산으로 가는 길', '검은 탑', '국도를 벗어나'. 굳이 하나 더 꼽으라면 '커다란 서랍' 정도가 있을 수 있겠네요. 단편집과 동명의 작품, '빛의 제국'이라는 작품 하나가 상당히 길게 수록되어있습니다만, 썩 기분좋은 소설은 아니었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등장인물이 죽었을 때, 읽고난 기분은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슬프다', '아 왜 죽었을까..' 같은, 안타까운 심정이 있는가하면, '뭐야 이게..'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기분나쁜 죽음도 있습니다. 둘 중 어느 쪽이냐하면 뒤 입니다. 애초에 너무 아기자기한 삶, 상처를 치유하는 삶과 같은 현장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몰살시켜버린 셈이니까요. 거기서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었든, 죽는 과정도 그렇고 순간적으로는 아, 역겹다, 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 말 다한거 아닐까요.

  사실 그렇기 때문에 미사키와 다시 만나는 장면(단편 '국도를 벗어나') 등이 더욱 느낌있게 다가오는 것이고, 애초에 그러는게 목표였으며 사실 이렇게 모두 돌아올 것이다(그것이 환생의 형태를 취하는 것 같긴 하지만), 라는 거라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건 아니지만, 결코 기분좋은 것은 아니었죠. 원래 제가 단편집에서 그 표제와 동명의 단편을 가장 좋은 작품으로 꼽아본 기억이 별로 없기는 하지만, 이번 소설은 정말로 뭐야 이게... 하면서 멍 때리게 만드는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온다 리쿠 특유의 묘사와 겹쳐지니, 역시 썩 기분 좋지는 않았어요.



  싫은 작품 이야기도 했으니 좋았던 작품 이야기도 해봅시다. '다루마 산으로 가는 길'은 이 단편 전체를 통틀어 가장 '평범한 소설' 가까이에 있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전반적으로 도코노 일족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환상성이라는 그 특징에서 벗어나기는 어렵겠지만, 굉장히 소소하달까, 담담하달까, 이 미친 놈아! 싶은 남주의 반응이 마지막에 변하는걸 보면, 아.. 하는 심정이 들기도 하죠. '국도를 벗어나'와 함께 가장 좋은 이야기였지 싶습니다.

  '검은 탑'은 굉장히 암울한 이야기였어요. 아무리 봐도 저 아키코는 같은 책에 실린 '역사의 시간'에 나왔던 그 아키코 같은데, 왜 저렇게 암울하게 살고 있나, 싶을 정도로. 사실은 그 고모가 너무 마음에 안들어서, 와, 저런 고모가 뭐야 도대체, 싶기도 했지만, 암울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나름 해피 엔딩, 이라는 그 스토리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 단순하고, 진부하고, 뻔한 이야기에 홀랑 넘어가버리는게 저인 거겠죠. 거대한 서사시의 프롤로그같은 부분 두 대목만 툭툭 던져놓았으니, 남은 이야기는 어디선가 풀어나가야겠죠. 이렇게 툭 던져놓고 도망가면 안되는거잖아요. 으히히.

  '국도를 벗어나'는 미사키가 다시 돌아온다는 점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먹고 들어간 소설. 남자도 여자도 참 재밌는 성격이구나, 저럴 수도 있구나, 싶기도 하고, 기본 설정이 '빛의 제국'에서를 그대로 가져온 이야기이기 때문에 왠지 모르게 찡한 느낌도 듭니다. 왜 그런 느낌 있잖아요, 한 10년 전에 봤던 사람이 지금 이렇게 변해있구나, 하는 거. 소설 내에서의 시간은 한참이 지난 후겠지만('빛의 제국'은 세계대전을 즈음한 이야기니까), 왠지 그렇게 재밌는 캐릭터로, 활달한 면을 가진 캐릭터로 돌아왔다는 생각을 하니 흐뭇하더라고요.



  이 소설은 세 권에 이르는 도코노 이야기 시리즈의 가장 첫 권입니다. 아직 뭐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죠. 2권 격인 민들레 공책은 완전히 별개가 되는, 청일전쟁 즈음의 장평닌 것 같으니 논외이고, 사람들 반응을 보니 세 번째인 <엔드 게임>에서 1권의 이야기가 정리되는 모양이더라구요. 아무래도 거기까지 읽어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위에서 저렇게 '빛의 제국'을 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사키가 돌아오는 '국도를 벗어나'를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로 꼽아놓은걸 보니, 역시 그들이 하나 둘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사람 마음이란 모르는거 아니겠습니까.

  덧붙이자면, 이렇게 단편으로 내놓을 이야기들이 아니었다, 라고 작가 후기에 썼는데, 그 글을 보자마자 바로 제 입에서 튀어나왔을 법한 이야기(실제로 튀어나오진 않았지만..ㅋㅋㅋ), "아 그럼 이렇게 내놓질 말든가!". 전반적으로 이야기들이 좀 찝찝합니다. 여기서 끝나면 안되는데, 뭐야 이 프롤로그같은 이야기는, 하는 이야기들로 수두룩합니다. 도대체 이 이야기는 왜 여기에 끼워져있는거야, 싶은 이야기도 있었고.. 평가는 도코노 이야기를 모두 끝낸 뒤에 내려야겠지만, 확실히 좀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사람을 붙잡는 능력은 분명히 있는 책이에요. 아, 왠지 다음 권을 사야할 것 같아, 라는 느낌이랄까?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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