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 <플래티나 데이터> : 현대 '관리통치'의 현실

현대사회는 과학기술이라는 문명을 기반으로 진보해왔다, 라고 표현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는 인터넷의 탄생과 함께 발생하여, 단방향 통신을 무너뜨리기에 이르렀다. 쌍방향 통신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명하고, 그에 대해 돌아오는 반응에 다시 반응하며 자신의 생각을 키워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는, 조금 더 진보되고 구체화되어 여러가지 문화 매체 속에서도 드러난다.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썸머워즈>에 나오는 OZ다. 이 OZ는 전세계를 잇는 네트워크, 라는 단순한 범주에서 벗어나 현실의 모든 것을 관리·통제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작품 내에서는 이러한 관리적 측면이 아니라, 잘못된 프로그램에 의한 위험성을 보여줬지만, 그런 이야기 뒤에는 역시 《플래티나 데이터》가 다루고 있는 현대 관리통치의 위험성이 존재하고 있다.

작가의 성향상, 《플래티나 데이터》가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사실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는, 내 생각 이상으로 예상 외의 소설을 써오던 사람이다. 사실 정통파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반전과 교묘함에 초점을 둔 것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하지만, 그의 소설을 모두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확언할 수 없지만, 일반인이 생각해낼 수 있는 그런 트릭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이번의 전기환각기(일명 '전환기')도 그랬고, 《사명과 영혼의 경계》도 그랬다. 《사명과 영혼의 경계》를 다루면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는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 모양이다.
이번 작품 《사명과 영혼의 경계》는 이른바 사회파 추리소설이다. 종래의 추리소설이 트릭을 앞세워 탐정놀이의 미로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여 등장한 것이 사회파 추리소설인데 범죄의 사회적 동기와 사건에 얽힌 사람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리얼리즘을 담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오근영, 《사명과 영혼의 경계》역자 후기
범죄의 사회적 동기. 과연, 《플래티나 데이터》는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플래티나 데이터》가 다루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가? 역시 가장 큰 것은 앞서 계속 언급하고 있는, 제목에서도 역시 언급한, '관리통치'다. 앞서 말했듯, 현대 사회는 과학기술이라는 문명을 기반으로 끊임없는 진보의 흐름 위에 있었다. 페이스북과 같은 SNS, 텀블러나 (큰 범주에서의) 트위터를 포함하는 마이크로 블로그, 그리고 티스토리나같은 블로그 서비스나 각종 블로그 툴 등, 현대사회는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 확대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의 확대 뒤에는 지배계층의 편이도 포함되어있다. 그러한 내용 역시 이 작품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플래티나 데이터'라는 게 만들어지게 된 이유. 기술이 발달할 수록, 관리와 통제는 편리해진다. 옛날에는 누군가 대통령을 욕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개인과 개인간의 이야기라면, 우연히 누구에게 그 말이 들어가지 않는한 잡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을 꽁꽁 묶어야만 했던 시대가, 바로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어떠한가? 우리가 친구들과 트위터를 통해, 페이스북을 통해 한 이야기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것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별도로 설정하지 않았다면, 검색 엔진을 통해 그러한 대화를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록 그것이 설정을 통해 막아두었다고 하더라도, 공권력 하에서 영원한 비밀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게 자연스러운 현대 사회의 '생리 구조'일지도 모를 일이고.
"당연하지 않은가. 다른 사람의 DNA를 마음대로 조사해서 수사에 사용하는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어."
"마음대로가 아니지요. 국가 지도자층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아니, 허락이 아니라 우리는 그들의 지시를 받고 이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요."
"본인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국가가 본인에게 알리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적인 데이터를 이용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금조차 제대로 징수할 수 없을걸요."
이야기는 플래티나 데이터를 다룬다. 플래티나 데이터는, 유전자를 통한 조사 시스템으로부터 적발되지 않는, 즉 NOT FOUND라는 메시지를 띄우게 하는(그리고 동시에 잘못된 자료를 주게 하는) 코드가 덧붙여진 데이터다. 그렇다면 그러한 데이터는 누구에 의해 만들어지는가.
"과학경찰연구소, 아니 경찰청의……."
"좀 더 위에 있는 사람들이겠지.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은. 자네는 완벽한 수사 시스템을 만들려 했지만 너무 완벽하면 곤란해지는 사람도 있는 거야.
수사 시틈에 이 사회에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 바로 '윗사람'의 동의 덕분이다. 일전에 어디선가, 우리나라의 지문 채취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가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는 과정에서 지문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했던 그 글의 필자는, 이러한 지문 채취가 전국민을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하는 것과 다름없다라고 표현했던 바 있다. 이 작품에서 가구라가 내세우는 명분 역시, 결국은 전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우리가 또 다르게 봐야할, 뼈있는 대목이 2대목 있다. 바로 이러한 '관리통치'하에서 국민은 어떤 존재인가? 이것은 곧,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현실적으로, 대의민주제에서 국가 지도자층이, (이 소설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여당과 야당이 합심하여 어떠한 법안을 통과시키고자 한다면,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국민들의 반발, 시위는 며칠간 눈을 꾹 감고 있으면 어느새 넘어가고 마는 것이다. 여느 싸움이나 그렇듯, 상대방이 반응하지 않으면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사실을 지도자층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그렇게 쉽게 시들해지지 않은 지금까지의 수많은 민주화 운동들이 의미를 부여받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고.

"국가가 개인의 DNA 정보를 관리한다는 문제를 국민이 용서할 리가 없어."
그러자 가구라는 질렸다는 듯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 죽여 웃었다.
"국민이 용서하지 않는다고요? 이보세요, 아사마 반장님. 국민이 뭘 어쩔 수 있다는 겁니까? 데모를 하건 연설을 하건 정치가들은 자기들이 통과시키고 싶은 법안을 척척 통과시키는데요. 지금까지 줄곧 그렇게 해오지 않았습니까? 국민의 반대 따위는 아무 소용이 없어요. 국민들이 '그렇게 터무니없는 법안을 통과시키다니 용서할 수 없다.'라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초기 뿐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상황에 익숙해지지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에요. 최종적으로는 DNA를 관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될걸요."
"성가신 질문은 아니에요. 이유는 단순해요. 지배를 당할 바에야 지배를 하는 쪽에 서는 것이 스트레스를 덜 받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지배?"
"관리라고 표현해야 이해하기 쉬울까요? 미국에서 처음으로 DNA 프로파일링이 실용화되었을 때, 어린 마음에 그런 생각을 했어요. 앞으로 틀림없이 모든 것이 관리되는 시대가 올 거라고. 위조 카드, 가짜 이름, 위조 여권. 어떤 것을 위조해도 의미가 없는 그런 시대. 살아 있는 한, 유전자는 위조할 수 없지요. 그걸 국가에서 관리한다는 것은 인생을 지배당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 아닌가요? 자유라는 말도 의미가 없어질 것이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반대 세력에 서는 쪽이 더 나은 것 아닙니까?"
리사는 피식 웃으며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반대 세력이 국가의 방침을 바꾼 예가 과거에 몇 번이나 있었지요? 국가가 국민의 DNA를 관리한다는 것은 이제 세계적인 흐름이에요.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지요. 저는 그런 의미 없는 일에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지배하는 쪽에 서기로 했다는 말입니까?'
"물론, 지배하는 쪽에 선다고 해도 관리를 당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겠지요. 그건 잘 알고 있어요. 다만 시스템을 이해하고 그 배후를 알아두고 싶은 거예요. 그렇게 하면 무슨 일이 발생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제게도 책임이 있는 일이니까 납득할 수 있을 테니까요."
국민은 실로 나약하다. 대의 민주제는, 어쩌면 다수의 지배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심지어 운명까지도) 내맡겨야하는 시스템일지도 모를 일. 조금은 극적이게, 조금은 과장되게, 조금은 적나라하게 그런 부분을 들이파버린 것이, 바로 이 소설이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가 주어지고 있는가. 과연 우리 사회는 '자유라는 말이 의미가 있는' 사회인가. 우리들만의 자유는 아닌가에 대해서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을 제외하더라도, 소설 자체도 재밌다. 현대 정치와 맞물려 생각해보면, 조금은 무섭지만. 사실 이것 외에도, 결국 매드사이언티스트같은 전반적인 과학 기술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하고, 나아가 심리와 인간, 과학과 감정 같은 여러 떡밥(?)을 던져주는 책이기도 하다. 가볍게 읽기엔 무겁고, 무겁게 읽기엔 너무 가벼운, 뭐 그런 책이라고나 할까. 소설 자체도... 솔직히 범인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아니 워낙에 소설에 개입이 별로 없지 않았나 싶었거든. 뜬금없이 범인이 그렇게 나오다니.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다! 싶기도. :) 에잇 어쩔거야, 이 어정쩡한데다 서평이 아니라 주제를 정해놓고 그냥 쓴 글같은 서평을! ㅋㅋㅋ


플래티나 데이터 - 10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정환 옮김/서울문화사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이미지 맵

    서평/소설 다른 글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