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사, 몰스킨, 몰스키너


양지사라는 국산 노트/수첩 브랜드가 있다. 노트는 모르더라도 수첩은 상당히 양질이고, 가격도 일반 노트에 비하면 비싸지만 수입산 수첩에 비하면 굉장히 저렴한 가격이라 평상시에 자주 애용하곤 했다. 그러던 차에 얼마전 티스토리에서 받은 몰스킨 리포터 스퀘어드 라지 사이즈를 보고 나도 몰스킨이나 입양해볼까 하는 생각에 이리 뒤적 저리 뒤적 하면서 자료도 찾고 사용담도 들어보면서 꽤 많은 글을 읽었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대체적으로(물론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포스팅 자체를 하지 않았겠지만) 몰스킨에 만족하고 있었고, 소위 말하는 몰스키너(Moleskine + -er = Moleskiner)로서의 동질성으로 자신들끼리 연대감을 형성하고 있기도 했다. 사실 몇 번 본적은 없지만 몰스킨의 하드커버와 단단한 밴드만으로도 몰스킨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런 점에 빠져서 나도 몰스킨이나 사볼까 하고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저번에도 그랬던 적이 있다. 그저 몰스킨이 가지고 싶었다. 몰스킨의 가장 큰 장점은 단정하고 심플한 외양과 단단한 밴드, 적절히 두꺼운 하드커버 그리고 매년 똑같은 모양으로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그런데다 각은 깎아서 둥그럽더라도 딱딱 쌓아놓으면 보기 좋게 쌓이는 점 등 매력적인 면이 참 많다. 그리고 그런 매력에 빠진 것은 나 뿐만이 아니고, 동시에 우리나라 사람들 뿐만이 아니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몰스킨에 빠져있고, 자기 자신을 몰스킨과 접미사 -er의 합성어인 몰스키너(Moleskiner)라고 칭하곤 한다.


우리나라의 필기구 회사들이 Pentel이나 여타의 많은 브랜드의 '가치'를 따라가지 못했듯이 양지사도 이러한 면에서 몰스킨을 따라잡지 못했고, 몰스킨이 국내에 유입되면서 지켜오던 시장을 내주고 말았다. 물론 그 이면에는 몰스킨의 종이의 질같은 단순한 '퀄리티'의 문제도 있겠지만, 양지사와 다른 몰스킨만의 포인트(위에서 언급한 밴드라거나, 기타 등등)가 핵심이라고나 할까.


물론 몰스킨은 가격때문에 포기했다. 한동안은 사려고 굳게 결심하고, 사이즈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건만, 너무 가격이 비싼게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멀어졌다. 양지사 PD노트나 열심히 써야지, 하는 생각. 쓸모없는 설정놀음부터, 낙서에 스케줄 관리에 거의 모든걸 하나로. 딱딱 각맞춘 삶에는 약한 사람이라서 일기형은 어차피 잘 못쓰는 터라, 몰스킨을 사더라도 무일기형인 클래식 노트북 Ruled를 사려고 했던 터였다. 그냥 그렇게 좋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굳이 몰스킨이 아니어도 괜찮겠구나.


지금 상황에서 양지사에게 수첩에 밴드달아주세요라는 소리를 하는건 좀 웃기다. 물론 밴드를 다는건 몰스킨 뿐만이 아닌 것 같지만(예를들어 독일 브랜드인 로이텀 역시 밴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실은 양지사가 그런걸 달아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하지만 무엇보다, 디자인은 지금 디자인을 유지하더라도, PD노트만큼은 이름이 바뀌어야하지 않나 싶다. 모 방송국의 한 때 논란이 되었던 프로그램 이름을 연상시키는 문제는 둘째치더라도, 이름에 매력이 없다. "난 사무용품이야, 감성따위 필요없는 양산제품이라고!" 를 외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로서도 PD노트을 대체할만한 마땅한 이름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좀 더 매력적인 이름으로, 그것의 팬들을 이끌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해보는건 어떨까. 착한 가격에 매력있는 이름,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양지사라는 브랜드. 그정도면 참 금상첨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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