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장편 소설

얼마전에, 교지에 실을 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장편 소설이라는 것을 읽어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어디서 나온 말인지, 누가 먼저 쓰기 시작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말이 바로 이 경장편이라는 말입니다만, 읽어본 소감부터 말하자면 생각보다 괜찮다라는 것 정도. 황정은이라는 작가는, 경장편에 딱 맞는 글을 『百의 그림자』라는 제목의 책으로 낸 것 같습니다. 국내에 민음사 말고 또 경장편 소설을 출판하고 있는 곳이 어디에 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경장편 소설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보다 단편의 장점과 장편의 장점을 잘 조화시킨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황금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170 페이지 남짓의 길이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길이입니다. 장편이라고 붙이기에도 단편이라고 붙이기에도 뭐하지만 장편에 더 가깝죠. 경장편(한자는 추정이긴 하지만 輕長編이라고 쓰는 것 같습니다만)이라는 단어는 그러한 소설을 포장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물론 경수필에서 쓰인 輕의 본래 의미(가볍다)로 쓰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결국 맥락은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경장편 소설에 따끔한 독설을 하셨던 분이 기억납니다. 경장편이라는 이름은 그저 출판사의 농간일 뿐이라구요. 한마디로 돈벌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런 내용이었을 겁니다. 물론 저는 아직 판단이 잘 서지 않습니다. 처음 읽었던 경장편 소설이 재미없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가끔 들지만 실제로 처음 읽었던 『百의 그림자』는 굉장히 우수한 작품입니다(서평은 교지에 실어서 블로그에는 자제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보다 다른 분야와 담을 쌓고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 내용에 있어서 외부와 상호 관계를 맺지 못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세세하게 나누다 보면, 평론가나 작가마다 주관이 강해서, 한 경향에 분류된 사람들도 극명하게 다른 경우가 있고,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각자의 경향을 내세우며 서로 다른 경향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외부에서는 그 경향이라는 걸 파악하기 어려워졌달까. 그런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경장편이라는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경장편의 가장 큰 매력은 앞서 말했던 것 처럼 단편과 장편 모두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단편같이 담백하고, 잔잔한 느낌은 최대한으로 살리면서, 장편과 같은 완결성을 모두 챙긴 형식인 것 같습니다. 물론 태생적으로 단편化된 장편 소설인 이상 문제점도 있습니다. 뭔가 더 이어질 것 같은데 갑자기 끊어져서 끝나버린다거나── 수 권으로 이루어진 장편 소설에서도 다 읽고나면 느껴지는게 아쉬움인데 경장편이라고 나온 책들에서야 느껴지는게 당연합니다.

저도 한 번 써보고 싶어졌네요. 글이 길어지면 그에 걸맞는 완결성을 구비해야하지만, 그 이상으로 단편이나 중편에서도 요구되는게 그런 요소인 것 같은데요. :D 왠지 어정쩡하고 어중간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래서 더 좋은 게 경장편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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