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 청춘의 독서

청춘의 독서
유시민

유시민이라고 하는 사람의 이미지는 어떤 이미지일까. 청춘의 독서를 읽기 전에 이미 나는 <거꾸로 읽는 세계사>에서 그를 대단한 문필가라는 이미지로 그렸었다. 나는 정치인 유시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나에겐 뚜렷한 성향이 없다. 내가 되고 싶어하는 것은 중도진보 내지는 진보이지만, 그것은 내가 살면서 천천히 정립해나갈 문제다. 내가 커서 어떤 정치성향을 갖든, 그게 심지어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극우일지라도, 그렇다고해서 역시 좋아하는 것보단 싫어하는 것에 가까운 극좌일지라도,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무어라고 할 자격도 없고 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주변에서 유시민 씨에 대해서 좋게 말하는 것을 거의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터라, 책을 읽기 전까지 유시민 씨에 대해서는 나쁜 이미지 일색이었다.

그런 그는 저번 총선에서 떨어진 이후 다시 문필가로서, 학자로서 돌아왔다. 자칭 지식인 소매상이란다. 그런 유시민 씨는, 저번과 같이, 그다지 싫지 않다. 실제로 이 것을 행동에 옮기고 있다면, 이 사상 자체는 별로 흠 잡을 데가 없어 보인다. 물론 글로는 굉장히 쉽게 동화되어버리는 나인지라 어쩌면 그에게 '오염'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런 격한 용어를 쓸 것 없이, 정치라는 단어를 유시민 씨에게서 뺀 채로, '{(유시민)-(정치)}'의 이 책은 혐오스럽지 않았다. 싫지도 않았다. 정치인의 냄새는 맡기 어려웠다. 적어도 이 책에 따르자면 그가 정치에 뛰어든 것은 그저 그의 꿈을,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이 책은 단순한 독후감은 아니다. 그렇다고 좀 더 진지해진 서평이냐면, 독후감보다는 가깝지만 그런 것으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이것은 유시민 씨의 자서전과 가깝다. 자서전을 시간의 흐름이나 사건 중심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읽어왔던 책으로 써낸 느낌. 젊은 날의 유시민 씨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고 상상하게 만드는, 그런 책이다. 소개하고 있는 책 하나 하나는 호기심을 유발한다. 맬서스의 <인구론>같은, 읽어보면 분노를 터트릴 것 같은 책도 있었다.

이 책에서 그의 정치 성향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파트는 고작해야 리영희의 <전환 시대의 논리>와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정도일 것이다. 아니, 물론 그의 모든 글에서는 그의 정치 성향을 뺄 수 없다. 잔뜩 묻어난다. 그렇지만 <전환 시대의 논리>라거나 <공산당 선언>뿐만 아니라, 모든 이야기에서 그는 자신의 성향을 설명하기 보다 자신이 그 책을 읽고 나서의 느낌, 그리고 나서의 변화, 그리고 다시 읽어본 그 책에 설명하는데 온 힘을 쏟는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좋은 책이다. 고등학생 정도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느낀 것이 있다. 어떤 책이든 간에, 다시 읽어봤을 때 그 느낌은 다르다는거. 독해력이라고 하는 단어는 많은 말로 설명할 수 있다. 글의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이나 심층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 이런 정의를 내렸을 때, 적어도 후자를 키우기 위해서는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사람에게서 묻어나는 연륜이란 그렇게 쉽게 훔치거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독해력의 기반에 있는 배경지식, 그 배경지식은 이름과는 조금 모순되겠지만 단순한 지식이 아닌 '경험'까지도 포괄적으로 요구한다.

──이 책 자체에 대해서 언급이 별로 없는 것은, 아마도 이렇다. 이 책은 특별한 주제가 없다. 아니, 주제만 있다고 하는게 더 옳을까. 이 책은 보는 사람에 따라 그 가치가 천지 차이일 것이다. 하지만 단 한가지, 유시민 씨가 써낸 이 글을 읽다보면, 그가 소개하고 있는 책이 더없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수없이 정해놓은 내 독서 목록에 한 권 더하고 싶을 정도로.

전문대학까지 모두 합쳐도 15만 명을 넘지 않았다. (……) 비교적 운이 좋은 젊은이라야 대학에 갈 수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때 대학생들은 스스로를 예비 지식인이라 여겼고, 사회에서 큰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지식인으로서 사회에 보답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지식인은 어떤 존재여야하는지, 지식인으로서 바람직한 삶은 어떤 모습인지, 자기 인생에서 지식인의 소명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고민하는 학생이 많았다.
『인구론』과 맬서스는 금이 간 거울이다. 내 생각도 그릇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일그러져 있지 않은지 경계하면서, 거기에 나를 비추어 본다. 생각은 때로 감옥이 될 수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푸시킨
이런 젊은이들(주사파)은 스스로를 가리켜 뉴라이트, 또는 북한민주화운동가라고 했다. 슬픈 풍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권력은 마주 서 있을 때보다는 함께 서 있을 때 더 큰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정치는 위대한 사업이다.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야수적 탐욕과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니콜라이, 유시민의 항소 이유서
높은 수준의 애국심, 충성심, 복종심, 용기, 동정심이 있어서 항상 남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낳은 부족은 다른 부족에 비해 성공을 거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연선택이다. -HWO TO READ 다윈, 본문에서 재인용
현실의 이해타산을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고결한 이상주의가 사라진다면 인간의 삶이 너무 비천할 것 같다. 누구나 다윈만큼씩만 인간에 대해 연민을 느끼고, 이타주의에 공감한다면, 이 세상은 훨씬 더 살만한 곳이 되지 않겠는가.
내가 밝히려고 했던 그 진리가 받아들여지기는 쉽지가 않다. 그게 쉬울 것 같으면 이미 오래 전에 받아들여졌을 것이며, 결코 지금까지 감추어져 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분투하고 고난을 감수하며 필요하다면 죽기까지 할 진리의 벗들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진리의 힘이다. -진보와 빈곤
다시 헨리 조지를 읽으면서, 그에 미치지 못하는 나는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래, 진리가 아름다운 것은 그걸 실현하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일지도 몰라. 행하기 쉬운 진리에는 매력이 없는거야. 그러니까 '근본적 변화'가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은, 그 자체가 멋지기도 하지만, 실패하고 좌절하면서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깝게 다가서려는 '진리의 벗'들, 그들의 몸부림이 아름다워서일지 몰라.
카타리나 블룸이 묻는다. "그대는 신문 헤드라인을 진실이라고 믿습니까?" 나는 대답한다. "아니오. 믿지 않습니다. 헤드라인을 진실로 믿어도 되는, 그런 좋은 신문을 집에서 구독해보는 것이 내 간절한,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소망입니다."
오늘날의 모든 언론인들은 여론을 움직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적절한 사실을 선택하고 배열하는 데 있따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흔히 사실은 스스로가 말한다고들 한다. 이것은 물론 진실이 아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中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이미지 맵

    서평/인문학 다른 글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