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야리사 -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작가 이야기>2001년 데뷔했지만 아직은 어색한 풋내기 작가, 와타야 리사
어떻게 보면 웃긴 제목. 내용을 쉽게 예상하기 어렵기도 하고, 뭔가 유쾌한 것 같으면서도 일본 소설 제목 특유의 느낌이 살아있다(물론 이게 번역 상에서 일어나는 것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저자는 와타야 리사, 아주 이름있는 작가는 아니고, 1984년생의 어리다면 어린 작가(본인 큰 형보다 어리다-ㅋㅋ)다. 2001년 「문예(文藝)」를 통해 공개한 <인스톨>이라는 작품으로 등단하여 현재까지 3개 작품을 냈다(국내에도 3개 작품이 모두 번역 출판되어있다). 저자 소개 부분을 보면,
2001년 17살인 여고생 때 입시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쓴 <인스톨>이란 소설로 그녀는 제38회 문예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라는 상당히 현실적인(;;) 배경에서 작품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문학소녀" 그 자체로 평가되는 작가. 물론 본인도 이번 작품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작가이지만.

작가는 1984년생 답게 신경향 감각주의라고 불리우는 일본 80년대생 작품의 계보에 속하는 듯 싶다. 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모르겠고 출판사 측에서 그렇게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 내가 느낀 것은, 80년대를 즈음하여 태어난 일본 작가들의 소설은 그 전에 태어난 작가들과는 극명히 다른 작품색을 드러내고 있다. 정통이라는 선이 무너진 것은 물론이고 감각적이며 경쾌하지만 치밀한 구조의 작품구성과 문체를 보여준다. 이러한 느낌은 번역되면서 많이 옅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여전히 묻어나는 그 색깔은 한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일본 작품의 색깔이 아닐까.

첫 작품이 2001년, 고3으로서 썼기 때문에 그 당시의 (적어도 지금에 비한다면-지금도 스물 다섯밖에 안되긴 했지만) 풋풋한 인터뷰들이 상당히 많다.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책이 들어와있는 것이 조금 부끄럽지만."라고. 자신의 필명(와타야 리사)을 정하는데에는 무려 2주가 걸렸다고[..] 무려 중학생 시절 동급생의 성을 빌린 것[..;;]이라니, 여러모로 알 수 없는 느낌을 준다.

<작품 이야기>방황하는 별들의 이야기 - 그래, 그렇게 성장해나가는 거야
이 소설은 굳이 분류하자면 성장 소설이다. 따뜻한 사랑소설도 아니고, 전체적으로 내용에서 느껴지는 것도 전혀 따뜻하지 않다. 하지만 작가의 문체는 그러한 점을 뛰어넘어서 따뜻하면서도 경쾌하고, 길면서도 짧은 문장으로 내용을 전반적으로 따뜻하게 느껴지게 한다.

책 자체는 무척 얇은 편이다.이야기는 정확히 150페이지(번역판 기준)에서 끝나버린다. 물론 사건도 복잡하지 않고 그다지 치밀하다고 할만한 구조도 복선도 반전도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단순함은 이 이야기를 무엇보다 빛나게 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세상을 그저 삐딱하게 바라보는 여학생과, 히키코모리 기질에 오타쿠 기질까지, 냉정하게 말하자면 철저하게 소외되고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인물 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우연한 만남, 그리고 거기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결국 이야기는 그렇게 만나서 생활을 하다가 콘서트에 갔다 오는 것으로서 마무리 된다. 남자주인공인 니나가와는 콘서트를 통해서, 여자주인공인 하츠는 니나가와를 통해서 자신의 알을 깨고 나오면서 현실과 직면하게 된다.

여자주인공인 하츠는 사회생활에 지쳐서, 니나가와는 앞서 말한 그런 기질 때문에 반 친구들과 동화되지 못하고 별개로 떨어져있다. 서술자인 하츠의 입장에서 그러한 기분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혼자서 이야기하고 있으면 무슨 얘길 해도 혼잣말이 되어버리잖아. 당연한 소리지만. 그냥 그렇다는 거야. 비참함이라고나 할까? 뭐라고 해야 할까?"

"알아 알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울 것 같은데 뭐. 그러니까, 나랑 같이 쟤들이랑 한 그룹이 되면 좋잖아? 자, 트럼프─"

"싫어. 그냥 둘이서 계속 잘 지내면 안 돼?"

"그건 사양하고 싶어."

키누요는 머리 꽁지를 흔들면서 책상을 둘러싸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는 잡초 다발들에게 달려가 버린다. 왜 저렇게 섞이고 싶어하는 걸까? 같은 용액에 잠겨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다른 사람들에게 용해되어버리는 게 그렇게 기분 좋은 것일까? 난 '나머지 인간'도 싫지만, '그룹'에 끼는 건 더더욱 싫다. 그룹의 일원이 된 순간부터 끊임없이 나를 꾸며대지 않으면 안 되는, 아무 의미없는 노력을 해야 하니까.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P. 18 ~ 19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감정. 이후로 계속되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하츠는 중학교 때 가식적인 웃음과 한 화젯거릴 통해 반 억지로 이어져있던 인간관계에 지쳐버린 나머지 타인과 친해지는 것을 꺼려하게 되었고, 원래 친했던 키누요와만 친하게 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키누요는 하츠와 반대로 그런 그룹에 끼는 것을 좋아하면서, 키누요는 하츠와 보내는 시간보다 그룹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고, 이를 통해 겉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하츠의 고민은 왠지 생생하게 전달된다.

니나가와는 올리짱(;)이라는 모델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팬이다. 뭐 안에서 묘사되는 것으로는 순전히 오타쿠이지만. 그런데 작가가 원래 의도했던 것처럼, 니나가와는 전혀 부정적으로 비쳐지지 않는다. 물론 하츠의 입장에서 얼핏 봐서는 니나가와에 대한 혐오를 느끼는 것 마냥 묘사되지만, 실제로 작가는 니나가와를 전혀 나쁘게 묘사하지 않는다. 작품 내에서 니나가와와 하츠는 그저 매력적인 캐릭터일 뿐이다.

그렇다, 여느 소설들과 다르게 이 작품의 캐릭터들은 인기가 있거나, 예쁘장하고 멋지게 생긴 인물이 아니다. 일반적인 주인공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면 "특이한 인물"이라는 점 뿐. 두 캐릭터는 실제로 학교에서 철저하게 왕따당하는 인물의 전형이지만, 그런 하츠와 니나가와는 참을 수 없이 매력적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자신의 박힌 틀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 하츠와 니나가와의 성장 과정은 누구나 동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것과 동류의 것을 경험하기는 물론 어렵겠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춘기에 여러가지로 고민하고, 번민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한편 읽으면서 다른 전형적인 소설에서처럼 러브스토리로 연결되는 것일까 했지만, 물론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하츠가 니나가와를 보면서 느끼는 가학적 기분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네가 좀 더 욕먹었으면 좋겠어. 좀 더 비참해졌으면 좋겠어. 좀 더 고통스러워했으면 좋겠어.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P.136

 하지만 그것이 하츠가 성장해나가는 과정이고, 니나가와는 그 기폭제 역할임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은 아니다. 작품의 제목인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도, 그런 하츠의 가학적인 면모가 엿보인다(작가의 가학적인 면모가 엿보이는 건 아니다!).

뭐랄까── 작품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서 무언가에 홀린 듯이 읽었다. 물론 작품 자체도 150 페이지 분량으로 두껍지 않다. 앞서 말했듯, 작가 특유의 문체 역시 글을 읽는 속도를 빠르게 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그러면서도 결코 허술하지 않은 문장들에 다시 감탄하게 되기도 한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재독해보고 싶은 책. 뭐랄까, 원래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조금 빠르게 읽는 성격이라서 재독을 해보면 다시 여러가지를 느끼곤 하니까. 한편 책의 내용 자체는 성장 소설의 전형이면서도 누구나 푹 빠져볼만 하다. 성인이라면 학창시절을 회상하게 하고, 학생이라면 자신의 고민이 투영된듯한 이 이야기에 금방 빠져들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무거운 책이라거나 고민할 거리를 남겨주는 책은 아니다. 당연힉 그런 책이 무조건 좋은 책인 것도 아니고. 얇고, 경쾌하며 가볍다(긍정적인 의미로). 그렇기에 더더욱 빠져든다. 짧아서 아쉽지만 짧은 것이 이 책의 또하나의 매력. 책이 남기는 여운은 깊지도 얕지도 않다. 아, 물론 나에게는 조금 깊은 편이었을까.
나에게는 여러가지로 생각할 거리를 조금 던져줬다. 나 역시, 지금으로서는 불안정한 인간관계에 자주 마음이 흔들리고, 학업과 인간관계라는 저울을 전혀 맞추지 못하고 있는데다, 그렇게 신경쓰면서도 인간관계에선 고생을 많이 하고 있으니까.

<감명깊었던 대목>
위의 P.18-19가 가장 감명깊었으나, 위에서 인용하였으므로 제외.

 "이번 선생님은 그저 잘 길들여진 거 아니에요?"

무의식중에 내뱉고선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기가 불안정하게 떨리면서 소름이 끼쳐 온다. 선배는 앞을 본 채 낮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네 눈, 언제나 예리하게 빛나고 있는데도 정말은 아무것도 못 보는구나? 한 가지만 말해두겠는데, 우리는 선생님을 좋아해. 너보다, 훨씬."

나 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육상부원들과 선생님 사이에는 거짓이 아닌, 진정한 정이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라니, 그런게 있을 리가 없다. 조금 전 선배의 말은 단지 허세일 뿐이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선배들의 방식에 물들지 않고 차가운 시선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내게 위협을 느껴서, 그 때문에 나온 허세다.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P94

 

참고자료의 출처표기.
(英)위키피디아(en) - Risa Wataya
(日)위키피디아(ja) - 綿矢りさ(와타야 리사)
(日)위키피디아(ja) - 文藝(문예)
(日)작가의 독서도 8회 - 와타야 리사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 8점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황매(푸른바람)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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