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가 소설 속의 주인공이 아닌 것을 기억하라

비오는 날 J관. @서강대학교 정하상관 3층


너는 소설이나 영화 속의 주인공이 아니다. 아마 이 말을 처음 접했던건 <밤의 피크닉>에서였을거다. 거기에서, 남자주인공이었던가? 하도 오래되서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어쨌든 주인공 중 한 명이, 다들 연애를 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이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이런 요지의 말을 한다. 어디까지나 학창시절의 추억 소겡서 그 때 나는 이런 풋풋한 연애를 했었지, 하는 추억을 만들기 위한 연애는 하고 싶지 않다고. 그 때는 크게 공감하지 못했던 말을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결국 그런거다. 너도, 나도, 소설이나 영화 속의 주인공이 아니며, 모든 일은 그렇게 아름답게 풀리지 않을 것이며, 너가 겪고 있는 일은 아름답게 포장되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내용의 글을 다시 본건 또 인터넷 사이트에서. 사실 내가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하나도 없고, 가끔 눈팅하는 사이트만 서너개 있는데, 그 중 하나에서. 아마 짝사랑에 관한 글이었는데. 누구나 짝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의 공통점 중 하나는, 그 아픈 사랑에 대해서 미묘한 감정을 가진다는 것이다, 뭐 그런 글이었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그 사랑은 그냥 아픈 사랑이고, 일방 통행의 사랑인데, 마치 비극적인 운명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착각한다고. 아,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그렇게 감성적이고 말랑말랑하면서도 오글거리는 생각에, 착각에 충분히 빠질 수 있는 존재니까.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가끔은 그런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 아니 재수 때까지만 해도 밑그림이 그려진 그림을 채우는 기분으로 살았다. 트랙 위를 뛰고 있었달까. 내가 갈 길은 정해져있었고 나는 그 길을 미친듯이 따라갈 뿐이었다(그럼에도 결국 어떤 의미에서 목적지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대학에 오니 그게 아니었다. 내가 갈 길은 전혀 정해져있지 않았고, 나는 그런 '갑자기 주어진 자유'에 조금은 비틀댔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려 했다. 아직 내가 가야할 방향은 모르겠지만, 나중에 내가 지금 방황하면서 미뤄놨던 것을 놓쳐서 생길 문제들은 피하고 싶었기에. 물론 모든걸 하려 했으니 모든 부분에 어설프게 손을 댔고, 어떤 의미에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5월에 깊은 멘붕에 빠져들었고.


멘붕이 내 주제는 아니고, 어쨌든 그렇게 어떤 의미에서는 재수만큼이나 힘들게 한 학기를 보냈다. 그동안 나 스스로를 바라보는 내 눈길은 어쩌면 나 자신을 소설이나 영화 속의 주인공마냥 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힘든 자신에 대한 묘한 집착. 그런 힘듦이 젊음의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착각. 그런 가운데 나 자신을 자꾸 밀어넣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날 힘들게 만든건 아니었지만 내 멘탈을 으깬건 어떤 의미에서는 나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요즘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건 아마도 멍하게 있는 때가 많아서. 어떤 의미에서는 잡생각이 많아졌으니 안좋은 것일수도 있고 어떤 의미에서는 나 자신이 지금까지 보내왔던 시간을 정리해보는 그런 소중한 시간일 수도 있고. 가급적이면 후자였으면 좋겠지만.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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