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스스로를 돌이켜보아야 할 때

조금 경박하게 말하면, 멘붕이었다. 조금 더 진지하게 말하면, 그동안 쌓아놨던 모든 상처를 탈탈탈 털어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난 관심병인 것 같다는 생각이, 멘붕하는 내내 따라다녔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그래서 더 힘들 것이다. 나는 왜 멘붕하는걸까? 왜 멘붕하는 모습을, 마치 고의적으로 보여주기를 바라는 것 마냥, 자꾸 내비치는 걸까?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는 마음과, 다른 사람들에게 내비쳐서 위로의 말을 한 마디라도 더 구걸하고 싶다는 천한 생각. 그런 생각의 공존. 그게 이 한 주였다. 솔직히 욕지거리를 쏟아내고, 에이씨, 이게 뭐라고, 라면서 탈탈 털어내버릴 수 있는 성격이면 참 좋을텐데. 내가 그런 성격이지 못하니까, 사실 누구도 탓할 수는 없는거다. 어디까지나 내가 못났다.


자각이 없었거나, 또 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거나. 인경이 누나와 관련된 일은 다 그런걸거다. 그냥 그런 생각을 하니까, 숫기도 없는 놈이 설레는거다. 그것도 혼자서. 근데 혼자서 설레는 주제에 티는 또 다 난다. 이번에는 그래서는 안될 거 같다. 그리고 이런 멘탈 상태로 동아리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을리도 없다. 어줍잖게 섞여들었다가 괜히 동아리 사람들에게 내 이미지도 망치고, 동아리 분위기도 망칠거다. 그래서, 도망쳤다. 


이대로, 동아리에 얼굴도 제대로 내비치지 않는 상태로, 그들 기억속에 아, 그런 또라이새끼가 한 명 있었지, 하는 수준이 되면 나는 만족할까. 섹션을 완전히 버린 나에게 있어서 동아리는 거의 광적인 집착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집착하면서 동아리와의 관계를 탈탈 털어내버린 것 또한, 나였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나는 왜 그 때 그렇게 행동했을까. 사실 가장 겁나는건, 과연 원래의 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위로는 항상,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서 온다. 내가 그토록 집착하던 사람들에게서, 단 한 마디의 위로조차 받지 못할 때, 내가 내 손으로 관계를 포기한 이들에게서 위로를 받고 힘을 낼 기회를 찾는다. 아, 내가 내 손으로 포기했던 관계인데, 그 사람들은 참 좋은 사람들이었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어쩌면 그 관계를 버려서는 안됐다. 겹쳐서 못나가는게 아니라, 나는 섹션을 내 손으로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 쪽에 몰두하자는 것도 있었지만, 나의 부족한 대인 관계 기술로는 섹션처럼 큰 단위에 섞여들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스스로가 한심했다. 작은 일에 멘탈은 가루처럼 탈탈탈 털려나갔고, 그러다 찾은 돌파구, 피난처, 도피처가 바로 동아리였다. 그리고 이제 그런 동아리의 관계까지 이렇게 탈탈 털어내버린거다.


털어내? 과연 나는, 털어낸다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관계를 만들기는 했던 것일까. 너무나 얕았고, 관계를 엮으면서도 너무나도 살떨렸던, 너무나도 두려웠던, 그런 시간들이지는 않았는지. 매 행동 하나 하나를 나름대로 조심하면서도, 내가 그렇게 살떨리며 그어놓은 선을 나는 자꾸 넘나들었다. 그리고 내가 넘나들었던 선 하나 하나는 나에게 상처가 됐다. 아, 내가 그 때 왜 그랬지. 아, 사람들은 날 어떻게 생각할까. 아, 아, 아, 아, 아,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모두에게 당당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대다수의 나, 그리고 중학생 때의 나를 스스로 부러워하면서, 나는 왜 이렇게 소심해져버린 것일까를 다시 생각하지만, 아마도 답은 없다. 그냥 그렇게 성장했다. 그게 답이다. 동아리는 그랬다. 내가 학교를 즐겁게 다닐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했고, 아마도 반 이상은 사실일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가장 힘들게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왜냐면, 섹션은 그냥 버리면 됐지만, 동아리는 그럴 수가 없었으니까. 한마디로 결국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집착했기 때문..이었다.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 인간관계가 어디가 그렇게 잘못된 걸까? 물론 고등학교 때라고 해서 대단히 훌륭하고 깊고 넓은 인간관계를 만들었던건 아닌데, 하다못해 술이 먹고 싶으면 술먹자고 불러내볼 친구라도 있었는데. 재수 때부턴 그렇지를 못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성취감이 없었다. 항상 모든걸 대학 뒤로 미뤄왔는데, 대학에 와서는 더 심했다. 섹션에는 제대로 적응을 못했다. 과민반응했다. 


애정결핍이다. 오래전부터 해온 생각인데, 나에겐 애정결핍의 면모가 있는 것 같다. 그건, 과거부터 이어져 온 애정결핍을 지금 해결하려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애정으로만 가득했던 상황에서 자라나, 이제 더 이상 애정을 받지 못하고,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특별하고 누군가에게 손꼽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생각이다. 그런 집착을 하면 할 수록 관계맺기는 힘들어지고 새로운 조직에 섞여들기는 벅차졌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말로 관심병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멘붕 타이밍이 너무 나빴다. 동아리에서 조용히 사라졌다가 조용히 다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때였으면 좋았을텐데. 홈커밍데이랑 겹친게 문제였다. 얼굴을 내비치면 안될 타이밍에 얼굴을 내비쳐야했다. 내 관계의 기술은, 내 처세술은, 그런 상황을 웃어넘길 수 있는, 그런 상황에 딱 맞는 가면을 쓸 수 있는 능력이 못됐다. 


모든 발단은 내 소심함이었을까. 그렇다면, 그 소심함을 버려야겠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도 소심하게, 과연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가 되어버린 것일까하고 고민한다. 매번 하는 생각이지만,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관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할 때인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인간관계를 쌓아왔고, 어떤 사람이 되어있었는지. 모여야할 때 내가 없다면 누군가 날 불러줄 정도의, 최소한의 인간 관계는 쌓아온 것인지.


그냥 스스로가 비참하다.

정리가 필요한 때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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