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해질 수 없음

대학에 와서 처음 놀랐을 때는 찾아보자면, 운동권을 만났을 때였다. 솔직히 말하면 운동권에 대해서 전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고, 그래서 처음엔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고 생활했었다. 그러고보면 나란 사람, 되게 이중적인 면모를 지탱하며 살아왔던 모양이다. 나름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하면서도, 진보주의 운동에 뛰어들 생각은, 대학에 와서도 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 대학생들이 너무 놀고 먹는데 치중하는게 아닌가 하면서도 결국 내가 대학에 들어가서도 그렇게 되었다. 나란 사람, 그랬다. 말 그대로 순수해질 수 없음, 그 자체다.


지금은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그래서 운동권 선배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있어서 나름 컬쳐쇼크였다. 나 스스로를 솔직하게 돌이켜볼 기회가 되었다고나 할까. 솔직히 운동권이라는 단어는 가치중립적인 단어이면서도, 사회에서 다뤄질 때 상당히 부정적인 어감을 내포하고 있다는 기분이라서. 어쩌면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부모님이 딱히 보수도 아니고, 사실 진보에 가까우신 분들이지만, 부모님은 세대가 세대인지라 자신들의 자녀가 이런 쪽에 나가기를 원하시지 않았을터다. 나도 블로그를 하면서 그런걸 조심해야된다는 소리를 몇 번 들은 적이 있고. 그러니까, 아직도 이 사회는 아직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한창 우리 학교에서 시끌시끌한(정확히는 당사자인 우리끼리만 시끌시끌하고, 학생들의 관심은 별로 없다는게 느껴질 정도지만) 자보 사건도 그렇다. 누군가 계속해서 자보를 뜯어내고 있는 것이다. 운동권은 그에 대항해서 자보를 떼지 말라는 자보를 붙였고, 그 분은 자보를 떼지 말라는 자보를 뗐다. 이 무슨 말장난같은 상황인가, 하면서도 뭔가 곤란하다.


자신의 정치 성향은 소중하다. 아직도 내가 분명하게 견지하고 있는 생각은 이거 하나 정도다. 그러니까 내 주변에 보수주의자가 있다는 사실이, 솔직히 실제로 그렇다면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다. 나에게 나만의 논리가 있고 나만의 사상이 있듯이, 그들에게도 그럴터다. 그들이 믿는게 타당하다면, 굳이 그들을 진보주의로 돌아서게 만들 생각도 없다. 전향이라는 말은 별로 안좋아하거든. 보수주의자였던 진보주의자보단 꾸준하게 보수주의인 사람이 좋다. 물론 그 보수주의가 용납범위 안에 있을 때에 한해서. 그런 사람이, 조금 더 순수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정서적으로 그렇게 느낀다는 거고, 진보진영에선 전향자를 더 좋아하겠지. 보수주의를 공격하기에 써먹기도 좋고, 당장 진보의 승리라고 살갗에 느껴지는 효과가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대학에 와서 미리 정치를 접해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내가 재수학원 때부터 숱하게 느껴온 사실 중 한가지는, 우리 나이대에 정치에 대한 관심이 없는게 아니라, 정치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는거다. 저 사람들이 할 건데 왜 우리가 시끄럽게 그러느냐, 뭐 그런 느낌. 사실 운동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여기에 있을 것 같고. 하지만 대학에서 정치를 먼저 접해보는 것은,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든 그 사상이 현실과 제대로 맞닥뜨리는 첫 기회다. 나처럼 그 과정에서 순수하지 못한 스스로와 직면할 수도 있는거고.


서강대에 와서 느낀건, 의외로 학교가 정치적이었다는 거다. 아니, 정확히는, 학교 자체는 지나치게 매우 보수적이고(보수적인 정치 사상을 가지고 있는게 아니라, 학생들이 진보든 보수든 정치와 관련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학교 분위기다), 내부에서 학생들끼리 정치적인 대립각이 서있었단 소리다. 나도 이 쪽에 발을 살짝이라도 담그기 전엔 전혀 몰랐던 사실이니, 사실 외부 학생들은 알 수가 없다. 그렇다. 아니 누가 어느 단과대 성향은 진보적이고 어느 단과대 성향은 보수적이라더라, 트라이파시(학교 응원단) 성향이 어떻다더라, 누가 누구랑 어떻게 손을 잡았다더라 하는 생각을 하겠는가. 여튼간에, 세상은, 현실은 참 살아볼 일이고 겪어볼 일이다. 내가 우호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참 좋다고 생각하는 그 누군가가 나와 정반대의 위치에 서서 나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참, 겉만보고는 알 수 없다는게 무슨소린지 이제 알것만 같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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