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과 종이책

1.

   항상 어느 정도의 텀을 가지고 관심을 가지는 기계가 바뀐다. 스마트폰에서 태블릿, 그래도 나름 글쓰는 사람이라고 키보드까지. 과외를 시작했을 때는 돈이 조금 남아서 그런 기계를 원없이 사본 적도 있었건만 지금은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서 그러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 기계도 그냥 눈여겨만 보고 있는데, 바로 아마존 킨들이다. 여러가지 모델이 나왔고 구모델 킨들의 가격은 밑바닥을 쳤지만 그래도 아직 손에는 쥐고 있지 않다. 일단 배대지를 써야하는 불편함이 제일이고, 그 다음으로는 원서밖에 볼 수 없다는게 두 번째 이유다. 원서를 부담없이 읽을만큼 영어에 능통하지도 못할 뿐더러 아직 원서에 뻗칠만큼 우리말 책을 많이 보지도 못해서.



2.

   킨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건 정말로 전자책을 위해서 태어난 기기구나..하는 점이다. 실물은 아직 본 적도 없고 인터넷에서만 몇 번 구경해본 게 다이긴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위해서 태어난 기계는 범용 기계보다 항상 매력적이다. 물론 아마존이라는 플랫폼에 완전히 종속되어있어서 리디북스나 여타 우리나라말로 된 전자책을 볼 수 없다는 단점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계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고 나 또한 그렇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기계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소위 '독서가'들이 전자책을 대하는 자세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전자책은 책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글이라면 형식은 상관없다!'는 사람들이다. 나같은 경우는 전자에서 점점 후자로 넘어가고 있는 편인데, 이는 킨들까지는 아니고 아이패드를 통해서 이뤄진 결과였다. 어쨌든 광활하기 그지없는 22인치 모니터보다는 10인치 짜리 아이패드의 집중도가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책의 가장 큰 매력인 뒹굴뒹굴거리면서 넘겨보는 재미도 생겼고. 물론 전자에 한동안 몸을 담그고 있었으니 전자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전자책을 사고 또 보면 볼 수록 느끼는 건데 전자책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는 책을 '어떤 고귀한 것', 독서를 '어떤 의식에 가까운 것'으로부터 단순히 컨텐츠를 소모하는 것으로 끌어내리는 경향이 있다. 좋은 의미에서는 독서라는 행위에 있어서 벽을 허문 것이고, 단말기 하나로 훨씬 가볍게, 훨씬 편하게, 훨씬 많은 글을 읽을 수 있께 되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나쁜 의미로는 독서를 가볍게 만들었으며 책을 단순한 컨텐츠, 데이터 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나같은 인스턴트식 독서가들이 많이 양산된 것도 사실일 것이다. 이는 단순히 전자책의 문제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컴퓨터로 글을 쓰고 인터넷에 게시하는 순간부터, 그리고 그 글이 소모되는 순간부터 이는 어쩔 수 없는 필연에 가깝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전자책 열풍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결코 가격적 메리트도 없고 실물을 손에 쥘 수도 없는 전자책에 사람들은 왜 열광할까. 그건 말할 것도 없이 편한 독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형식이 무엇이든지간에 독서가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양서를 편안하게 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전자책은 어느 정도의 단점을 감수할 여지가 있을 정도로 편리하다. 조금이나마 어쨌든 종이책보다 저렴하다. 책을 보는데 훨씬 가볍고 여러권의 책을 가방에 담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 많은 독서가들이 책을 사모으고 있고, 책을 사모으다보면 언젠가 부족해지는 것이 곧 책장이며, 이 부족한 책장에 책을 쌓아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리라. 그러나 전자책은 100권이든, 1000권이든 단말기 속의(정확히는 인터넷 속의) '서재'에 담아두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전자책 시장이 굉장히 협소한 우리나라에서는 전자책의 한계가 더더욱 뚜렷하다. 전자책으로 존재하는 책보다는 존재하지 않는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 구간 서적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당장 새로 나오는 신간이라고 하더라도 전자책으로 출판되지 않는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 아니, 그 정도 단계를 넘어서 전자책으로 출판되는 것이 특이한 케이스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거기다 서비스가 통일되지 않고 이리저리 난립하다보니 곧 망해 없어지는 서비스도 하나 둘 생겨나고 있고, 그 때 내가 산 전자책들에 대한 권리는 내가 주장할 수가 없다. 이러다보니 전자책의 가격은 훨씬 더 비싼 것처럼 느껴진다.


   즉 이런 것이다. 책이라고 한다면 출판사가 망해서 없어지고 절판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계속 내 것이며 내가 필요하다면, 내가 보고 싶다면 언제든지 다시 열어볼 수 있다. 그러나 전자책은 그렇지 않다. 유통하고 있는 업체가 망한다면 내가 사 모은 책들이 공중으로 증발한다. 다른 컨텐츠(예컨대 블루레이와 굿다운로드, 음반과 음원서비스)와 달리 실물 컨텐츠가 존재하고, 그 실물컨텐츠와 전자컨텐츠의 가격차이가 크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불안정성은 전자책시장의 확장을 사로잡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4.

   그러나 분명 전자책은 좋은 아이디어다. 나는 아직도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훨씬 선호하며, 전자책 시장이 아무리 커지더라도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결코 종이책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 전자책이 출판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편이다. 그렇지만 한 번 경험해본 전자책은 더없이 매력적이다. 조금 더 시장이 커지고 안정적인 업체가 안정적으로 다량의 컨텐츠를 공급할 수만 있다면 결코 전자책 시장이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즉 전자책이 '돈 내고 다운로드 할 수 있는 컨텐츠'의 한계를 넘어서 정말로 하나의 '책'이 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에는 읽고 있던 종이책을 한 쪽에 치워두고, 아이패드로 읽기 시작한 <오만과 편견>을 읽어야겠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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