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 마술은 속삭인다

1.

 솔직히 말해보자. 내 독서편력은 굉장히 얕기 그지없다. 좋아하는 카테고리를 말해보라고 한다면 역시 일본소설, 국제정치학, 법학 정도이지만, 그 중에 국제정치학이나 법학은 좋아할 뿐이지 이렇다할 읽은 책이 없고, 일본소설도 꽤 많이 읽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 깊이가 깊지 않다. 일본 소설을 좋아한다면 많이들 읽어봤을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 나에게 낯설었던 이유다. 굳이 꼽으라고 한다면 아주 옛날 고등학생 시절에 읽었던 스텝파더스텝 정도가 있으려나. 왠지 요즘 자주 느끼게 되는, 내가 그동안 해온 얕은 독서에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뭐, 소설을 읽으면서 얕고 깊고, 반성하고 어쩌고를 따지는게 더 이상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2.

 이 소설에서 마술의 의미는 '최면'이다. "마술은 속삭인다"라는 제목은 판타지소설같은 느낌을 강하게 준다. 마술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강해서일터다. 사람들마다 거기에서 느끼고 떠올리는 이미지는 다르겠지만, 예컨대 나에게 있어서도 마술이라는 단어는 판타지로 곧장 이어진다. 물론 그건 나스 기노코의, 흔히 말하는 '나스월드'를 오랫동안 보고 즐겨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최면이라는게 얼마나 잘 검증된 것인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내가 그 쪽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따라서 배경지식도 없기 때문에. 그러나 이러한 점은 그다지 당황스럽지도, 답답하지도 않다. 오히려 이 부분은 이 소설의 흡인력을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정말로 범인은 마술을 부리는 걸까? 정말로 사람들은 마술에 의해서 조종을 받고 있는 것일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결말을 향해 달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쨌든 한 가지 분명한 건, 독자들에게 하여금 트릭을 생각하게 하지만 결코 살마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트릭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정통파 추리소설(?)들이 취하고 있는 독자와 작가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 "트릭을 독자가 먼저 알아낼 수 있을 것인가?"하는 문제는 이 소설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그건 히가시노 게이고를 비롯,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소설들이 대개 다 그렇다. 아무래도 추리소설로서의 트릭의 치밀함같은 부분 보다는 소설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드러내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다.


3.

 이 소설에서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되는 문제는, 과연 누가 선인이고 누가 악인인가 하는 문제다. 요즈음의 소설에서는 그다지 찾아보기 어렵지 않은 문제인데, 즉 선인이 악인이 되고 악인이 선인이 되는,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문제인 셈이다. 그건 '연애사기'를 저질렀던 가즈코를 비롯한 4인방의 문제이기도 하고, 마모루를 도와주던 요시타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 때 큰 잘못을 저질렀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것 때문에 죽음의 위험에 처했으며, 그들 나름대로는 반성을 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과연 사람의 잘못은 뉘우치고 반성하는 것을 통해 어디까지 용서될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는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요시타케를 보자. 요시타케의 마모루 모자에 대한 애정은 그릇되고 왜곡된 것이다. 자신이 한 집안의 가장을 죽이고 유기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파멸로 이끈 것이나 마찬가지다. 소설에서 요시타케가 말하는 것과 같이 '변명의 기회조차도' 뺏긴채, 횡령범이라는 오명과 함께 실종처리되어버린 마모루의 아버지는, 요시타케가 마모루 모자에 대해 어떻게 애정을 쏟고 요시타케가 어떻게 반성을 하는가와 무관하게 결코 돌아올 수 없다. 그렇다면 요시타케는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인가?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그리하여, 이렇듯 사람이 모여 살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될 복수의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가 찾은 해결책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사법체계일터다. 사법체계는 '정의의 실현'이며, 동시에 '사적 복수를 공적 징벌로 대신하는' 시스템이다. 막말로 말하자면 복수를 대행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사적 복수가 아닌 공적 징벌은 그 선을 분명히하며, 사회의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과 피해자의 구제, 나아가서는 가해자의 구제까지의 절충점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절충점은 결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듯, 우리의 사법체계도 그러하며, 결국 이 소설에서처럼 '사적복수'를 택하는 것이다. 결국 이 소설이 담고 있는 일련의 사건은, 마모루의 가족과 소중한 것을 지키면서 자신의 과거를 되짚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사적 복수를 택한 한 노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사적 복수를 긍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적 복수를 시도한 이들에 대해서도 한 사람의 가해자로써 (물론 정상 참작이 있겠으나)엄한 문책이 따르는 것처럼, 사적 복수에는 여러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노인은 이러한 사적 복수를 통해 공적 징벌을 대신 한다면서 네 명의 여성을 모두 죽여버렸지만, 이 과정에서 작가 한 명을 죽음으로 내몰았으며(그의 복수에 그가 죽어야할 필요는 없었다) 한 명의 택시 운전사를 살인범이 되는 문턱까지 끌고가 또 하나의 가정을 파탄으로 내몰뻔 했다. 결국 그도 아래에서 말할 '악인'의 한 명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듯 사적 복수는 결국 또 하나의 괴물을 탄생시킬 뿐이다.


 그러나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사적 복수를 택한 노인의 이유는 "우리나라(노인에게 있어서 일본!)의 사법체계는 너무 약하다!"라는 이유에서였다. 우리는 실제로 종종 목도하게 되지 않는가? 국민의 법감정과 실제 재판의 과정이 어긋나는 모습들을. 우리는 이러한 사법체계 앞에 어떤 표정으로, 어떤 자세를 취해야할 것인가? 법을 공부하려는 이들에게는 이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4.

 앞서 말했듯이, 이 소설은 흔히 말하는 사회파 추리소설이다. 소설 그 자체의 매력도 있지만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려고 하는 점이 더더욱 크다. 그렇다면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물론 앞서 말했듯이, 선인과 악인의 도치 문제도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 가지고 있는 메시지의 중심에는 "몇 명의 악인이 평범한 삶을 영위해나가고 있는 일반인들의 삶을 어디까지 파멸로 이끌 수 있는가?"라는 부분에 있다. 앞서 말했뜻이 요시타케는 마모루의 가정을 완전히 파괴했다. 완전히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마모루 모자에게 악인의 갖고이라는 이름을 벗을 기회조차 빼앗아간 셈이다(마모루의 아버지는 자수하려했다).


 연애 사기를 저질렀던 4명의 여성은 또 어떠한가? 결국 가즈코는 한 사람의 미래가 창창한 청년을 죽음으로 내몰게 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이 돈을 벌기 위해서였고, 그 과정에서 귀찮게 들러붙는 청년을 치워버리기 위해서였다. 앞서 요시타케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드디어 광명을 찾은 자신의 인생에 오점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렇듯이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과 안위를 위해서 아무렇지 않게 악인의 가면을 쓴다. 아니, 악인의 가면인지, 아니면 선인의 가면인지조차 알 수 없다. 과연 사람은 악하게 태어나는가, 선하게 태어나는가하는, 윤리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악인이 되고, 괴물이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하나의 괴물은 손 쉽게 사람들의 인생을 파탄으로 내몬다.


 생각해보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자신의 선택을 강조한다. 자신의 선택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사회가 져야할 책임까지도 개인의 선택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사회는 점점 더 개인의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기 어려워지고 있따는 느낌이다. 이러한 범죄의 피해자들도 그렇다. 자신이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왜 누군가는 죽어야하고 누군가의 인생은 또 파탄의 나락으로 떨어져야하는가? 


5.

 메시지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소설 자체는 미야베 미유키라는 이름이 겉만 번지르르한게 아니었다는걸 확신하게 한다. 소설은 잘 쓰여졌고 흡인력도 있고, 소재도 흥미롭다. 그녀의 다음 책을 안심하고 고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소설 자체는 일본 소설 특유의 느낌을 가지고 있는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것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그것이 조금 더 남성적이고 거칠며 그러면서도 세련된 것이라면, 미야베 미유키의 것은 더 여성적이고 부드럽지만 중후한 느낌이다. 역설적인 표현이겠지만 머릿속에서 막연하게 그런 이미지가 있다. 어쨌든 마음놓고 고를 수 있는 작가가 또 한 명 생겨서 기분좋은 날이다.




마술은 속삭인다

저자
미야베 미유키 지음
출판사
북스피어 | 2006-11-0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일본 추리서스펜스 대상 수상작 한 사람은 맨션에서 뛰어내려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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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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