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명, <THAAD(싸드)>



애증의 작가, 김진명

나에게 있어서 김진명이라는 작가는 누구인가. 어릴 때, 김진명의 소설을 재밌게 읽었더랜다. 정작 그를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아마 <바이코리아>와 <황태자비 납치사건>를 재밌게 읽고 나서 그에게 빠져들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그의 작품을 많이 접했는데, 사실 최근에는 자주 안읽어서 <고구려>도 읽지 않았지만 그 전까지는 꽤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나서 내 독서에 있어서 암흑기라고 부를만한 수험생 시절, 정말 필요한 책들만 골라 읽었고 그러다보니 소설은 자연스럽게 뒤로 미루게 됐다. 미뤄진 소설에는 김진명의 소설도 섞여 있었다. 수험생 생활을 끝내고 나서 처음으로 접한 소설이 그의 <천년의 금서>였는데, 사실 그 작품이 김진명이라는 작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되는 결정적 계기였다. 내용은 산으로 가고, 말도 안되는 내용을 끌어다 쓰고, 나아가서 소설로서의 재미도 별로였다. 나머지 작품은 (물론 어릴 때의 기억이라 더욱 그렇겠으나) 소설로서의 재미는 있는 편이었는데, 이 작품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런데도 굳이 이번에 싸드를 뽑아든 이유는 첫째로 리디북스에서 만년 1위를 지키고 있는 이유가 궁금해서였고, 둘째로는 그래도 믿고 보는 작가 중 한 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결과적으로는 싸드는 평작 정도였겠지만.


소설 <싸드>

소설 싸드는 '종말 고고도 지역방어체계(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를 다루고 있는 정치이야기다. 사실 소설 안에서도 미살이라고 에둘러 말해질 뿐 싸드의 디테일한 면에 대해서는 잘 가르쳐주지는 않으니 큰 상관은 없는 이야기고.. 소설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크게는 이러한 싸드의 한반도 배치를 놓고 벌이는 중국과 미국의 알력다툼과 그 과정에서 죽은 리처드 김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의 전개 자체는 사실 그렇게 나쁘지도, 대단하지도 않다. 소설은 필연성을 알 수 없는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변호사, 그리고 도인과 같은 변호사에게 모두 넘겨주면서 마치 고전소설의 조력자같은 존재를 만들어놓았다. 즉, 주인공의 능력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일을 해결하는 것도 아닌, 그냥 천재 조력자가 있어서 그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간다는 이야기다. 읽으면서 아주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훌륭한 구성이라고는 차마 말하기 어려울 것 같은 그런 구성이다. 

물론 소설만으로 보자면 아예 재미없는 소설은 아니다. 그냥 소설이겠거니... 생각하면서 읽으면 읽을만하다. 사실 나도 글은 이렇게 썼지만 오며가며 재밌게 읽었다.근데 인터넷에서 보니 김진명의 소설을 양질의 정치서(?)로 여기고, 교양인이라면 꼭 읽어봐야한다거나 한국인이라면 꼭 읽어봐야한다는 표현을 많이들 쓰는데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다. 지금까지 계속 이야기했듯이 그렇게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작가도 아니고. 물론 읽다보면 생각할 기회를 주고 그런 의미에서 가치있는 소설이기도 하지만, 그건 그저 과정의 문제일 뿐이고 이 책 자체를 정확한 팩트를 담은 책으로 보는 자세는 경계해야 마땅하다. 팩트와 픽션을 합쳐 팩션이라고 하지만, 그래봤자 결국 팩션도 픽션의 일종일 뿐이라는거다.

언제나 김진명의 소설이 그랬듯이 이야기보다는 자신의 주장,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주력한 것 같은 모습이 보인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프로파간다 문학에 가까울 정도다. 물론 프로파간다 문학이라고 말하면 조금 어폐가 있겠으나 어쨌든 이번에도 철저하게 음모론에 입각한 소설이라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사실 내가 싸드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어서 이건 다 음모론이야, 하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왠지 그의 지금까지의 행보에 따르면 그럴 것 같다는 느낌.

결국 메시지는 미국도 중국도 다 나쁜 놈이야... 근데 미국이 특히 더 나쁜 놈이야! 하는 느낌이다. 결국 미국에서 자신들의 싸드의 문제점을 은폐하기 위해서 리처드 김을 죽였다는 이야긴데 소설은 뭔가 찝찝하고 미완의 소설인 것 같은 느낌으로 끝을 맺는다. 결국 리처드 김의 문제를 완전히 파헤쳐서 해결을 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싸드의 문제를 해결본 것도 아니고. 김 변호사 이야기를 완전히 풀어 헤친 것도 아니다. 뭔가 풀어놓은건 많은데 완전히 풀어 헤친건 없다. 마치 십자리본에서 한 줄만 풀어놓고 다음상자 풀고 다음상자 풀고를 반복한 것 같은 찝찝한 느낌.


태프트리포트

그런데 이 소설에는 사이 사이에 태프트리포트라는 챕터를 넣어서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솔직한 내 첫인상을 말하자면 "자기가 뭔데?" 싶은 생각도 들고.. 작가로서 조금은 금기시될 법한 행동을(정치를 아예 소설로 완전히 끌어내렸다!) 한 김진명의 평가가 궁금하기도 했다. 문제는 그 평가마저도 팩션... 즉, 픽션이라는 소리다. 그 평가의 과정에 있어서 여러가지 일화들이 나오는데 그 진위여부는 하나도 검증되어있지 않다. 아마 픽션일 확률이 높을 터였다. 작가는 그러한 내용을 정치인들의 실명을 언급하며 직접 들고 나선 것이다. 그것도 현직 정치인을.

현직 정치인의 이름을 거리낌없이 쓴 그 용기와 자세는 높게 평가해야 맞을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을 생각하건대(물론 난 읽으면서 그런 생각은 전혀 못했지만) 아마 왜 미국이 싸드를 지금 정권에 꼭 배치하려고 하는 것인지에 관한 당위성을 부여하고자 넣은 챕터인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넣지 않는 쪽이 소설쪽으 완성도 면에서도 더 높아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군데 군데 흩어진 '리포트'라는 이름의 김진명의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는 소설과 어우러지지 않아 굉장히 부자연스럽고, 이야기를 조금 산만해지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챕터 사이 사이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이야기와는 전혀 연관성이 없다!). 굳이 픽션에 현실 정치인들의 이름을 꾸역꾸역 집어넣어가면서까지 '태프트 리포트'를 집어넣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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