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볼



아마 꽤 유명한 영화일텐데... 브래드 피트 주연의 <머니볼>이다.


얼마전에 말했던 것처럼 휴가 하나를 통째로 망해먹고나서... 꿀꿀한 기분을 뒤로 하고 보기 시작했던 영화다. 그냥 문득 갑자기 보고 싶어졌던 영화. 사실은 어떤 영화인지도 잘 모르면서. 사실은 얼마전에 페이스북에서 <왓챠> 페이지에서 추천으로 나왔던 영화라고 솔직히 고백함..


인터넷에서 대중의 평가를 보니 스포츠 영화에 철학을 담았다느니, 사상을 담았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내 이해력이 부족한건지 뭔지 그런게 크게 느껴지진 않았고 그냥 재밌는 영화.. 정도였다.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빌리 빈'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인데.. 인터넷에서 조금 찾아보니 이 영화의 이름대로 '머니볼'이라는 소자본 구단 운영의 방식을 확립해나가는 과정... 을 담은 영화라고 한다. 


그런 배경지식 없이 보자면 이 영화는, 구단주로부터 큰 지원도 받지 못하고 위기에 처한 애슬레틱스 구단을 '피터 브랜드'의 세이버 매트릭스 이론으로 살려내는 이야기다. 사실 야구에 관심이 있어서 세이버 매트릭스에 대해서 들어보긴 했지만 자세히는 모르고... 기본은 '야구는 통계다'에 입각한 내용인 것 같다. 솔직히 말하건대 직관적인 타율, 방어율, WHIP에 세이버 매트릭스 지표(??) 중 하나인 OPS 등등까지... 이런 내용은 별다른 공부없이 금방 알 수 있는 내용이지만 많은 세이버 매트릭스 지표들이 공부를 필요로 해서..


어쨌든 빌리 빈의 '머니볼'은 이렇게 세이버 매트릭스를 통해 나온 선수들의 평가 지표를 가지고, 그동안 전통적으로 내려온 평가지표들에 의해서 평가 절하된 선수들을 저렴하게 사들여 선수로 활용한다는 개념이다. 즉, 돈이 안된다면 가성비로 승부하겠다는 것. 프야매에서 자주 보던 '코성비'(코스트 성능 비, 코스트 대비 성능)와 가까운 것이라고 하겠다. 즉 과대평가된 선수, 실제 실력보다 더 많은 돈이 드는 선수는 버리고, 가격 대비 성능으로 승부하겠다는 것이다. 


빌리 빈과 같은 인물을 우리는 뭐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모습은 좀 거창하게 말해서 혁명가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솔직히 보고 있으면 조금 싱숭생숭한 기분이 든다. 잘은 모르지만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고, 생각해보면 많은 '혁명가'들이 사실은 독선적인 인물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빌리 빈 역시 당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감독 '아트 하우'와 첨예한 대립을 하면서, 자신의 이론에 반대하는 많은 스카우터들의 의견을 묵살하면서 팀의 개혁(리빌딩)을 진행한다. 피터 브랜드를 제외하면 그의 의견에 동의한 스카우터는 아무도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으나 그는 그대로 추진한다.


생각해보면 결국 독단이다. 과연 이런 독단은 무엇이라고 평가해야할까. 일단 떠오르는 생각은 '필요악'이다. 이런 독단이 없다면 많은 보수적인 의견(영화에서는 자신들의 '직관'과 '감'을 통해서 평가하는 것)에 가로막혀 있었어야할 수많은 개혁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빌리 빈이 스카우터들과 타협하고 피터 브랜드의 이론을 포기했다면, 그런 개혁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개혁을 우리는 뭐라고 평가해야할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아무리 좋은 말로 '우리는 결과만큼이나 과정을 중시해야한다'라고 말을 하더라도, 결과가 절대적인건 무시할 수 없다.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쿠데타(봉기)가 되는 것처럼. 우리 일상 생활 속에서의 혁신, 혁명도 결국은 성공하면 혁신이라는 이름을 얻겠지만, 실패하면 독선적이고 독단적인 실패라고 평가될 것이다. 이 영화속에서도 구단주 빌리 빈의 초창기 실패는 그런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 영화에서는 그 실패의 원인으로 아트 하우를 꼽지만.. 결국 생각해보면 빌리 빈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는 과정에서 아트 하우라는 인물도 악역으로 만들어져버린 것은 아닌가 싶다.


야구는 좋아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KBO고, MLB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나라서(더불어 야구 전반에 대한 지식이 짧기도 해서) 사실 이 영화의 내용이 얼마나 실화에 잘 기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일단 간단하게 10초정도 검색해보니 바로 이런 글이 나오긴 하는데...


ㅍㅍㅅㅅ :: 머니볼은 '아론 소킨'의 사기극이다


글을 읽어보면 전적으로 실화에만 잘 의존하여 그린 것은 아닌 모양이다. 물론 저는 이 영화를 다큐로 받아들일 생각은 전혀 없고, 따라서 이 영화가 얼마나 실화에 의존했는가는 큰 관심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고 나서 같이 읽어보는 건 괜찮은 글이라 생각되어 덧붙여 본다. 다큐도 아니고 그냥 상업 영화인 <머니볼>만을 놓고 보면, 실화와는 무관하게 잘 만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도 지루하지 않고, 스포츠 영화라는 생각과 달리(<머니볼>의 원작이 스포츠와 관련된 '경영/경제' 서적이었다는 점과 같이!) 스포츠를 메인으로 세우지 않고 그 것의 운영 방침을 메인으로 세워 스토리를 진행하기 때문에 야구팬이 아니라도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한 편으로는 그만큼이나 야구팬들이 원할만한 영화는 아니라는 것도 되지만.


영화는 전반적으로 조금 미묘한 구성을 갖추고 있었던 것 같다. 조금 미묘하다는 건, 마지막에 갑자기 극적인 홈런 장면을 넣음으로써 그동안 유지했던 담담한 분위기를 갑자기 클라이막스로 끌고 나간다. <퍼펙트 게임>에서 이름없는 포수의 갑작스런 홈런처럼, 뜬금없이 등장한 극적인 장면이 전반적으로 담담했던 이 영화를 보던 중에는 생소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물론 이 영화도 러닝타임의 끝을 찌겅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느 2시간 내내 담담하게 유지할 수는 없는 이야기고, 또 말도 안되는 결말도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무언가에 열정적이라는 것은 이렇게 어렵다. 이 영화는 빌리 빈의 머니볼을 설명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지만 빌리 빈의 생애를 그리는 데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빌리 빈의 인생은 조금 미끄러졌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야구에 열정적인 그의 모습에서는 가히 '광적인 무언가'까지도 느껴진다. 무언가에 열심히라는 것은 이 만큼이나 멋있고, 또 이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기록을 정리한 수첩이 잔뜩 쌓여있다는 김성근 前 고양원더스 감독이 생각나기도 했다.


요즘은 그런 게 많이 보인다. 무언가에 열심히인 사람들. <한자와 나오키>의 은행원들, <머니볼>의 스카우터들. 많은 자료를 쌓아놓고 그 자료와 씨름하면서, 무언가를 해내는 사람들. 나도 행정병으로써 나름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데, 과연 그만큼 열심히 하고 있는지. 아마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한동안 광적으로 '열심', '성실', '근면'에 빠져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런 근성이 또 근질근질한 것인지 무엇인지. 하지만, 내가 요 몇 년간 뼈저리게 느낀건, 결국 사람은 만족할 수 없다는 거다. 미친듯이 열심히 하면 언젠가 나가떨어져 무작정 쉬고 싶을 때가 오고, 무작정 쉬고 있으면 또 근질근질하여 무언가 미친듯이 열심히 하고 싶은 날이 오게 된다는 것.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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