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콜린스, <헝거게임> 시리즈

 

 

수잔 콜린스의 헝거게임 시리즈입니다. 처음엔 각 권이 옴니버스 형태로 스토리가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라서 생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들여 읽었습니다. 군대 간 친구가 찾아 읽을 정도길래 도대체 뭐하는 책인가.. 싶었었는데 다 보고 나니 확실히 재밌긴 하네요. 오랜만에 한국/일본을 벗어난 외국 소설을 읽은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사실 소설의 내용은 굉장히 단순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 '게임'이 펼쳐치는 것은 주로 1권인 <헝거게임>에서고, 그 이후는 그 헝거게임을 끝낸 우리의 주인공들, 캣니스와 피타, 그리고 그 외의 여러 사람들이 다시 헝거게임을 하고, 반군이 되고, 결국 판엠을 뒤엎는, 그런 이야깁니다. 사실 제가 알고 있던 것보다는 이야기가 훨씬 커졌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지금은 절판된 <배틀로얄> 소설과 영화를 모두 괜찮게 봤기 때문에 <헝거게임>을 보면서 비교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야기 전체를 두고 보면 전혀 비슷한 이야기가 아니네요. 굳이 말하자면 영화판 <배틀로얄2>까지를 합치면 그나마 좀 유사한 플롯이 될까 말까한 이야기.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소설이 주목하는 바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배틀로얄 vs 헝거게임 - 공통점과 차이점

 

그렇지만 이 소설을 설명하는데 <배틀로얄>과의 비교는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설정 자체가 비슷하니까요. 적어도 1편에 국한해서는, 배틀로얄과 헝거게임의 진행은 나름 비슷합니다. 물론 디테일한 면에서는 차이점이 많죠. 예컨대 배틀로얄은 학생들이 수학여행길에 그대로 납치되다시피 하는 거고, 헝거게임은 공식적으로 선발되서 아예 스타일리스트와 팀까지 갖춰줄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전체주의적이고 폐쇄적인(판엠과 배틀로얄 속의 일본은 모두 쇄국주의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고 굉장히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하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국가에서, '광분'이 '헝거게임'과 '배틀로얄'이라는 말도 안되는 소년, 소녀들의 살육게임을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또 시민들도 거기에 대해 인정하는 상황은 두 소설이 비슷한 메시지를 던져줄 수 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또한 게임의 목표 역시 공통적인데, 이러한 게임은 모두 '반란을 막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물론 접근하는 방식은 조금 다릅니다. 이 <헝거게임>은 '공포'가 중심입니다. 동시에 이미 일어났던 캐피톨(수도)에 대한 반란에의 처벌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습니다. 일종의 효시인 셈입니다. 너네가 반란을 일으켜? 그럼 이런 미친 게임을 해주지. 이래도 너네가 반란을 일으킬 수 있겠어? 하는 느낌. 반대로 <배틀로얄>은 '불신'이 중심이죠. 여기에서 두 게임의 가장 큰 차이점이 나타나는데, 바로 "내가 싸워야하는 상대는 지인인가?"하는 문제입니다. 배틀로얄에서는 모두가 지인이기 때문에(즉, 학우이기 때문에) '공포'보다는 서로에 대한 '불신'이 강조됩니다. 실제로 배틀로얄 소설 속에서 그런 불신을 이용해 승리에 접근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즉, <배틀로얄>은 믿어도 되는 걸까?하는 문제가 있지만, 애초에 <헝거게임>은 믿을 필요가 없다는 전제를 깔고 가는 셈입니다.

 

사실 두 게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배틀로얄에서 적은 모두 안면식이 있는 학우들이다라는 점은 이 소설에서 가장 큰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주인공들은 각자의 이름, 얼굴, 성격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알고 있고, 동시에 그들을 죽인다 = 친구를 죽인다라는 부담감을 안고 있습니다. 반대로 헝거게임은 같은 구역에서 뽑힌 이성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 안면식 하나 없는 모르는 사람, 타구역 사람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살기 위해 죽일 수 밖에 없다라는 상황이 정당화되기 쉽습니다. 실제로 작품 속에서 배틀로얄은 게임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는 인원이 상당히 되는 반면, 헝거게임은 상대적으로 빨리 적응하고 대부분 자신이 살기 위해 타인을 죽이는 데 거부감이 적은 것으로 묘사됩니다(물론, 주인공인 캣니스는 거기에서도 갈등을 겪지만!)

 

단순히 작품 속에서의 게임 룰의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지만, 소설의 전개되는 속도는 이 소설이 무엇에 집중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배틀로얄은 상대적으로 많은 수로 시작해서, 비록 주요 인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각자의 죽음에 대해 비교적 분량을 할애하는 편입니다. 반대로 헝거게임은 시작부터 몇 명씩 죽고, 주요인물이 아니면 아예 묘사 자체도 나오지 않습니다. 주요인물만 가지고 스토리를 진행하고, 이러다보니 게임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아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한편 배틀로얄은 남은 생존자수의 표시, 3인칭 시점, 그리고 이렇게 비교적 균등한 분량 할애를 통해 게임 자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이야기 진행은 물론 배틀로얄에 참가한 학생들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전반적인 전개는 제3자의 눈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이야깁니다. 오히려 이 쪽은 대놓고 '게임'이란 표현이 붙지 않았는데도 '게임'에 가깝습니다.

 

그에 비해 헝거게임은 캣니스와 그의 주변 인물들에게 철저하게 주목합니다. 1편에서 카토나 쓰레쉬같은 쟁쟁할 것 같았던 인물들이 생각보다 쉽게 탈락(=사망)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입니다. 1편에서는 캣니스와 피타, 2편부터는 캣니스 그룹, 그리고 3편에 이르러서는 반군(그것도 캣니스 주변만!)에만 철저하게 주목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다보니 게임 자체에 주목하기 보다는 캣니스라는 개인에 주목하는 소설이 됩니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표현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그것이 던지고 있는 메시지의 무게를 다르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한건 <배틀로얄> 쪽입니다. 현재의 일본을 표현한 '대동아 공화국'을 비롯하여 비교적 현실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객관적인 3인칭 시점에서 배틀로얄이라는 상황을 그려냄으로써 그 메시지가 강조되는 느낌입니다. 그에 비해 <헝거게임>은 (물론 지금의 미국 땅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 판엠은 어디에 붙어있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추상적으로 묘사되고(배틀로얄보다 이러한 세계관을 더 직접적으로 써먹고 있는데도 말이죠. 물론 배틀로얄과 달리 미래의 시점에서 진행되긴 하지만) 캣니스만을 중심으로 진행되다보니 메시지보다는 스토리에 주목하게 된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스노우 VS 코인, 극과 극은 통하는 바가 있다?

 

아무래도 시리즈 이름 자체가 <헝거게임 시리즈>이니만큼 이 작품에서 헝거게임을 빼놓을 수 없고 또 그만큼 인상깊었던 부분이라 많은 분량을 할애했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헝거게임>의 메인은 애들이 헝거게임을 한다. 서로 죽인다. 이런 미친 세상...이 아니라(배틀로얄은 차라리 이쪽에 가깝다!) 애들이 헝거게임을 한다. 죽일 놈의 캐피톨. 캐피톨을 죽입시다. 캐피톨은 나의 원쑤라는 느낌입니다. 2권에서부터 징조가 보이더니 3권부터는 아예 헝거게임의 ㅎ자도 나...오긴 하지만(마지막에!) 주된 내용은 캐피톨 VS 13구역을 중심으로 한 반군들이라는 구도로 그려집니다. 장르가 갑자기 전쟁물로 바뀌는 셈입니다. 솔직히 1, 2편과 3편의 분위기는 완전히 딴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개인적으로 만족도는 1권>2권>3권 순입니다)

 

3권에서 이야기의 핵은 물론 캣니스지만, 세력의 핵은 캐피톨의 스노우 대통령과 13구역의 코인 대통령입니다. 전체주의 국가의 수장, 잔인한 헝거게임과 숙청을 통해 권력과 체제를 유지하는 판엠의 대통령. 그리고 거기에 맞서 싸우는, 구역 반군의 중심인 13구역의 대통령. 어떻게 보면 서로 극과 극입니다. 그렇지만 극과 극은 통하는 바가 있다고 했던가요. 이 소설은 결국 13구역도 다를 바 없다는걸 알게 합니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캣니스를 포함해 완벽한 사람이 등장하지 않거든요. 코인은 승리를, 빨리 전쟁을 끝나기 위해서 뭐든지 하려고 하고, 판엠이 무너진 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캣니스가 죽는 게 더 낫다는 냉정한 결정을 내리는 인물입니다. 뭐, 말이 좋아 냉정이고, 사실 이 정도면 그냥 막 나가자는 거지요? 싶게 말이죠. 결국 모두가 자신의 이익에 의해 움직이는 인물들 뿐이었다...라는 씁쓸하다면 씁쓸하고 현실이라면 현실인, 뭐 그런 결말. 그 대가는 캣니스의 화살이었구요.

 

그러고보면 판엠이라는 시스템은 절대 깨질 수 없을 것 같았는데도 생각보다 쉽게, 허망하게 무너져내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피를 봤지만요. 그 과정에서 캐피톨의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었지만 크게 애도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헝거게임'을 바라보면서 웃고 울던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결국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진짜 '죽음'을 앞에 둔 게임을 자신들도 경험한 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등장인물 막 죽이기

 

니시오 이신 작품 이후로 이렇게 등장인물이 막 죽어나가는 작품은 처음입니다. 뭐, 그래도 니시오 이신 만큼은 아니지만... 피닉이나 프림이 죽었을 때는 조금 어안이 벙벙한 기분이었습니다. 다들 마음에 드는 캐릭터였으니까. 그래도 니시오 이신과 다르게 주인공 커플은 쌩쌩하게 잘 살려줬습니다. 피타와 게일, 캣니스 모두 살았습니다. 아참, 헤이미치도 살았죠. 3부 전체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를 고르라고 한다면 단연 피타, 헤이미치, 피닉이었습니다. 반대로 이상하게 캣니스나 게일에게는 크게 호감이 가지 않더군요. 실제로 캣니스-게일 커플링보다는 캣니스-피타 커플링을 응원하기도 했었고 말이죠. 멍청할 정도로 착하고 캣니스만 바라봤던 피타에겐... 살아있지만 묵념.. 아무래도 주인공이긴 하지만 캣니스는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는 힘든 캐릭터입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캣니스는 절대 완벽한 주인공이 아니거든요. 사실은 결함 투성이, 이기주의자..라고 평가해도 무방할 겁니다. 그런 캣니스에게 피타는 너무나도 아깝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해피엔딩은 좋았네요. 사실은 둘이 이어지는 해피엔딩 자체보다도 피타가 조금씩 제정신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너무 기뻤지만!

 

어쨌든 영미소설 치고 오랜만에 재미있게, 오랫동안 붙들고 읽었던 책인 것 같습니다. 정말 3권짜리 책에 푹 빠져있었던 몇 주였던건 자랑! 근데 이 3권 읽느라고 못 읽고 쌓아둔 책이 산더미같다는건 안자랑...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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