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뒷담화

  나는 뒷담화가 싫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뒷담화를 안하는 성격인건 아니지만, 어지간하면 안하려고 노력은 한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딱히 내가 착하다거나 도덕적이서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그게 언젠가 그 사람한테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다. 왜 화법이나 인간관계를 다루는 책들에 흔히 나오는 "긍정의 에너지"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딱히 그렇게 거창하게 표현할 건 없지만, 그 사람이 정말로 완벽하게 공공의 적이 아닌 이상은 남 앞에서 제3자를 나쁘게 말하는건 제3자에 대해 아직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리지 않은 사람에게는 부정적인 선입견을 주고, 혹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사람에겐 반감을 사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걸 항상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다른 이유라고 한다면 나 자신이 미움 받는걸 실어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이게 위에서 이야기한 "그 사람한테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거랑 일맥상통하는 이야긴데, 어쨌든 내 이야기가 다른 사람 귀에 들어가면 그 사람과 사이가 틀어질건 뻔하니까. 아무리 마음에 안들더라도 기왕이면 좋은게 좋다고, 그렇게 사이를 확 틀어버리거나 소위 말하는 "쌩까버리는" 건 하는 것도 당하는 것도 도저히 익숙해지지도 편해지지도 못하겠더라고. 


  왠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의미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사람들은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등학교는 왠지 모르겠지만 보이지 않은 선이 확실하다. 공격의 대상은 항상 공격의 대상이 된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다. 친구의 친구와 사이가 엄청 나빴던 경우도 있었다. 내 성격이 틀어진 성격이라 그런지, 단지 걔와 내가 맞지 않는 타입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한 번도 연락해본 적도 없다. 모임 자리에 걔가 있다고 하면 불편해서(안친해서 불편하고, 내가 걔를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았기에 한 번 더 불편했다) 나가지 않기도 했다.


  대학에 와서는 이런 경우를 2번 봤다. 한 번은 섹션에서. 이야기는 간단하다. 그 때가 아마 개강조차 하지 않았을 때였을텐데, 새내기의 설렘이 학교를 지배하고 있던 때다. 아니 학교를 지배한다기 보다는 우리 주위를 지배했던거겠지. 어쨌든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섹션과 그다지 잘 융화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2월까지는 섹션을 완전히 포기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름 열심히 나갔었는데, 개강 직전에 한 아이에 대한 평가를 들었었다.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술 깨자고 이야기하던 도중에. 자세히 기억은 안나는데,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이상하다,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다, 대화를 못하겠다(대화가 자꾸 끊긴다), 기타 등등. 걔와는 수업 하나를 가까운 자리에서 들으면서 아주 조금이라도 친해졌는데(나야 강의실-동방-강의실-동방.. 루프 생활을 했으니 그 이상 친해질 수가 없었다) 그 때 받았던 선입견 때문인지 처음에는 그렇게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은 종강할 때까지. 지금에 와서야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착한 애였다고 말하는 편이 맞을거다. 


  지금에 와서 하는 생각인데 섹션에서 내 평가도 그 아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나는 낯을 굉장히 심하게 가리는 편이었고 정시합격자라서 1차 신환회 및 1차 신환회와 2차 신환회 사이에 있었던 끼리 끼리 모이는 자리에도 합류하지 못했었다. 당시에는 그게 너무 아쉬웠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사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섹활을 하지 않고 동아리에 올인하게 될 줄을 아예 몰랐으니까). 어쨌든 그래서 그다지 친해지지 못한 상황에서 2차 신환회를 날리다시피 했고 OR도 비슷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섹션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 동아리에서야 조금 지나치다시피 오바하면서, 거의 '깝치면서' 놀고 있지만(이것도 정말 흑역사감이다.. 여러모로 기억하기 싫은 1학기다..) 섹션에선 그러지도 않았다. 아마 굉장히 소심하고(맞는 말이지만) 말도 없고(맞는 말이지만) 제대로 놀줄 모르는(맞는 말이지만ㅋㅋㅋㅋ) 캐릭터가 되어있지 않을까. 실제보다 더더욱.


  한 번은 아는 형에 관한 주변 사람들의 평가. 사실 나도 그 형 첫인상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는데(지금 생각해보면 처음보는 사람이 기분나쁘게 들을 수 있는 화법이라는 느낌이기도 하고) 어쨌든 자주 얼굴을 보았으니 나름 잘 따르는 편이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부정적인 평가가 굉장히 많이 나왔다. 그리고 뭐랄까, 전반적으로 그 형에 대해 칼을 들이밀고 있는 기분이랄까. 나까지 섬찟할 정도로. 역시 그 정도는 아니지 않았나 싶다. 둘 다. 위의 아이도, 이 형도. 기분 나쁠만한 포인트가 사람마다 다르니 있었을 수도 있고, 그게 여러사람에게 공감대를 형성했다면 그게 보편적이기도 하겠지만, 내 경험상 부정적인 선입견에서 시작해 모든걸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한 거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두 케이스가 다른 점이라면, 하나는 그래도 좀 숨기려고 했고, 하나는 좀 대놓고 한다는 느낌이었다는거. 어떻게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둘 다 썩 좋은 일은 아니니까. 그렇지만 동시에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글쎄, 어떨까. 사실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는 저런 이미지가 되면 안되겠다, 하는 생각. 부끄럽지만, 정말로 그런 생각도 했었다. 본질적으로 나는 속물이니까. 하지만 역시 아쉽다. 인간관계란게 원래 호불호가 있을 수 밖에 없지만. 어쨌든 나는 조심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속물적이지만 계속 할 수 밖에 없다. 뭐, 어찌됐든 그런게 인생이지 않겠는가.*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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