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와 쓰기

  우리 학교에 중핵필수 과목(중필 선택 말고)은 2과목이 있다(맞나?). 읽쓰계열 과목과 영어계열 과목. 뭐 세세하게 나누다보면 <읽기와 쓰기>, <계열별 글쓰기> 등 2과목을 들어야하고, <(기초/고급)영어1·2>도 필수다. 나야 영어1과 읽기와 쓰기까지만 들었고. 읽기와 쓰기 과목은 남미정 교수님 수업을 들었는데, 거기서 수업 들으면서 들었던 말이 하나 기억난다. 그땐 메모하고 끼적대는걸 꽤 오랫동안 멈췄던 때라서 따로 적어둔건 아니지만, 문득 기억이 났다. 문득.


  교수님이 하셨던 말을 대충 요약하면 이렇다. "여러분은 이미 일상 속에서 충분히 많은 글을 쓰고 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거 없다." 사실 글쓰기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주고 싶어셨던 거였겠지 싶다. 요즘은 내 나이 즈음(그러니까 대충 대학 1학년 언저리인가 보다) 사람들이 '의식하고' 글을 쓸 기회가 많지 않다. 그건 그것 나름대로 조금은 아이러니라는 생각도 드는데, 옛날에 비해 글쓰기는 정말 편해졌는데, 글을 쓰는 사람들의 수는 정말로 많아졌는데, 정작 학생들에게 글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만 같은 아쉬움(실제로 나는 이제 컴퓨터가 없으면 거의 글을 쓰지 못한다. 워낙에 성격이 급해서, 손으로 쓰는건 머리로 생각하는 속도를 전혀 못따라간다고나 할까? 물론 손으로 쓸 때만의 느낌, 손으로 쓰는 것의 소중함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편해졌는데 안하게됐다니, 아깝잖아.


  사실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말에 대한 많은 반응은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많은 경우 나한테 소설같은거 쓰냐고 물어봤었거든. 미안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난 소설같은 거창한걸 쓸 능력이 안되서 실제로 소설은 중학교 즈음에 접었다. 내 한계에 직면해서. 내가 쓰는 글은, 바로 이 글같은 글이었다. 어디까지나 쓰기 위해 쓰여진 글이고, 황정은 작가님의 말을 빌리자면 다른 누군가에게 필요했다라기보다는 나에게 필요했기 때문에 쓰여진 글. 기억하기 위한 글이고, 많은 글들이 독자로 나 또는 나와 가까운 몇 사람만을 상정하고 쓰는 글이라서, 어쩔 수가 없다. 그렇지만 어쨌든, 가독성은 둘째치고, 나는 글에 대한 거부감이 꽤 적은 편이다. 아니, 적은 편이라고 생각해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거다. 그게 어떤 글이 됐든 나는 끼적대는걸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거기서 교수님이 예로 드셨던게 페이스북과 트위터였다. 트위터는 그렇게 폭넓게 쓰는 것 같지는 않지만, 페이스북은 성공적으로 싸이월드를 대체해 우리나라의 간판SNS가 되었다. 아니,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만들었단 소리가 아니고,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이 쓰는 SNS. 나도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이긴 한데 트위터야 아예 글자수에 제약을 두고 있지만 페이스북은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은근히 페이스북에 긴 글을 남기는 사람이 많다. 나같은 경우는 한 단락 짜리 글도 제대로 못쓰지만, 어쨌든 페이스북은 확실한 독자층이 확보되고, 잘 풀어낼 수만 있다면 좋은 수단이 될지도 모르겠다. 뭐 흔히 감성페북이라면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 근데, 그 접근이 꽤 신기했다. 페이스북같은건 많은 사람들이 하는데, 그럼 글쓰기는 내가 생각하는만큼 사람들과 멀어지지는 않은 것이 아닐까.


  옛날에, 한창 트위터가 유행을 타기 시작할 즈음, 그런 말이 자주 나왔다. 나도 공감했던 말인데, "블로그에서 트위터로의 유행 변화는 현대인의 글쓰기 방식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라는 내용의 글. 오, 그거 매력적인데. 그렇게 생각했었다. 왜, 실제로 꽤 매력적인 설명이지 않나? 주로 그런 내용이었다. 이제 긴 글은 생명력을 잃었고, 점점 더 빨라지는(실제로는 급해지는) 세상에서 짧은 글 속에 내용을 잘 버무린, 그러니까 트위터처럼 140여자 정도의 글이 대세가 된다는. 지금에 와서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럴싸한 설명이었다. 나도 그럴듯하다는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조금은 조급증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트위터의 유행과 스마트폰의 보급이 우리 생활에 일으킨 또 하나의 변화는 상시 연결된 환경, 유비쿼터스 환경 속에서 앞만 보고 달리게 되었단거다. 나도 그런 생활을 했다. 꽤 재밌게. 어느 순간, 딱 지치기 전까지는. 그리고 실제로 지쳤다. 이거, 은근 힘든 일이다. 그래서 조금은 느리게 살아보기로 했고, 페이스북 계정도 비활성화하고, 카카오톡 알림도 꺼놓고. 그렇게 살고나니 한결 머리가 깨끗해진다. 바로 그 느낌. 긴 글이 생명력을 잃었다기 보다, 짧은 글이 그런 조급증 속에서 '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옛날같았으면 하나의 글이라고 평가될 수 없을 정도로 짧았던 글들이, 이젠 하나의 글로 인정받는다. 그리고 실제로 개중에는 마음을 울리는 것들이 있다. 그 안에 수많은 문제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140자는 어디까지나 140자란거다. 140자에 아무리 많은 내용을 담아도 140자다. 아직까지도 나는 140자의 글과 1400자의 글 중 하나를 고르라면, 1400자의 글을 고르겠다. 아직까지도 나는, 1400자가 제대로 된 '글'에 가깝다고 생각하니까.


  요 글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매몰되어 글쓰기가 부실해져가는 요즘에 대한 신세한탄. 이 글을 보라고. 이렇게 쓸모없는 글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그런 시대인거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보급은 글을 사장시키기도 했지만, 이렇게 글 쓰기 편해지고 글 쓰기 좋아진 것도 컴퓨터 덕분인거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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