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기록해야하는 걸까




그렇게 무언가를 자꾸 끼적이는 습관이 강하게 잡혀있는 사람은 아닌데, 기록 자체에 대한 미묘한 동경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터다. 에버노트에서 상품 홍보에 사용하는 문구인 'Remember Everything'에 가까운 것도 있다.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 아니, 모든걸 기억한다기 보다는 모든걸 어딘가에 적어두고 싶다는 생각. 지금 지나가는 시간이, 보낼 때는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면서도, 되돌아보면 그 시간이 너무나 아까운 시간이라는 것을, 4년여의 수험생활을 통해 배웠기에. 


무언가를 쓰는데 맛을 들인건 초등학교 때, 인터넷 카페(판타지열풍이라는 작은 소설 카페였다. 다음에 있었던..)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 때는 기록이라는 개념이 아니었다. 그냥 무언가를 자꾸 써내려가고 있었던, 철저하게 글쓰는 데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는 과정이었다. 목적이 없었다고나 할까. 목적의식같은 거창한 것을 가져다 붙이지 않더라도, 그냥 쓰는데에만 열중했었다. 그게 무언가를 기록해서 가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뀐건 아마 고등학생 쯤. 뭐 그 자체의 동기라기보단 그걸 더 강하게 들게 해줬던 건 몇가지 있다. 스카이림이라던지, 공의 경계라던지... 세세하게 설명하자면 한도 없이 길어지지만, 뭐 몇 가지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내가 무언가를 기록하고자 하는 데에는 시간에 대한 소유욕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시간은 흘러가고 내가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걸 기록해서 무언가 '유형의 것'으로 만들어보고자 하는 생각. 위에 사진에서 써먹은 몰스킨의 반듯반듯한 단정함에 한동안 빠져있었던 것은(비록 사지는 않았지만) 아마 그런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블로그나 지금 MS워드에 써나가고 있는 일기는 유형(有形)이라고 부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니까. 내가 자꾸 손으로 무언가를 기록하려고 하는 것도, 손으로 쓰는 것에 대한 집착이라기 보다 그 결과물이 분명하게 남는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Remember Everything이 과연 좋은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저런 소유욕의 시작은 내가 무언가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것일터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기록 자체보다 역시 기록의 관리가 중요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런 관점에서 손으로 쓰는 기록은 애로사항이 너무 많다. 기록을 없애고 보존하고하는 관리는 물론이고 필요할 때 그 기록을 찾아보기도 어렵고.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메모를 다시 핸드폰으로 하고 있는데, 역시 미묘한 아쉬움이 남는다. 자주 해왔던 '수단'의 문제에 봉착하는데... 난 한 번도 여기서 명확한 답을 내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일기는 MS워드로 밀고 나가는 것은, 올해 3월부터 가끔 기억날 때마다 써온 일기가 19페이지 정도 쌓여있는데, 이걸 버릴 수가 없어서. 이것만 제본해서 가지고 있기엔 너무 얇아서 제본 자체가 어렵고. B5로 바꿔도 28페이지 정도 밖에 되지를 않아서. 그런데 생각해보면 블로그랑도 자꾸 부딪힌다. 일기를 나 혼자 보는데에다 쓰니까, 블로그에는 일상에 관련된 글을 거의 안쓰게 되고, 그러다보니 블로그 자체에 대한 흥미를 조금 잃어버린 것 같달까. 너무 신변잡기적이라 블로그에다가 막 쓰기도 그래서 그걸 블로그에는 차마 못쓰겠고. 겹치는 내용을 다른 글로 적는 데에는 의욕이 또 안나고... 근데 이걸 블로그에다 쓰고 있으니 이건 또 뭐람..


[사진출처] 플리커 serdar님 - 해당 사진 링크 (CC BY-NC-ND 2.0)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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