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식 - 헌법의 풍경

헌법의 풍경
김두식

경북대학교 법학부 교수 김두식. 처음들어보는 이름이었다. 헌법의 풍경이란 책도, 아직 로스쿨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기도 전에 쓰여진 책이다. 그렇기에 그가 이 책 안에서 대안으로서의 로스쿨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리라. 꽤 오래된 책이지만, 법, 그 중에서도 헌법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었다.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무슨 내용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나의 섣부른 판단으로는 헌법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검사가 되며, 미국까지 가게 되고, 거기에서 코넬대학교에서 법학 석사를 받은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는지에 대해 알았더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추측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추측은 완전히 틀렸다. 헌법 그 자체를 변론해주는 것이 아니라, 법조인으로서 수많은 법조인들이 왜곡하고 뒤흔들어놓은 헌법의 본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헌법뿐만 아니라 형사소송법과 같은 많은 법률이 따라 나온다. 실용 법률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진지하게 쓰고 있지만, 법학이라는 학문으로서 접근하기보다 실생활에서 적용되는 방향에서 헌법에 접근한다. 그게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책은 너무나도 많은 요소를 다루고 있고, 덕분에 나 역시도 할 말이 많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기에 그걸 줄여서 어떻게, 얼마나 말해야하는지도 모르겠다. 우선 꼭 하고 싶은 말이라면 반드시 읽어보라는 것 정도. 그리고 의외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법률상식이 많았다는 사실. 우리가 누구나 하게되는 잘못된 법에대한 생각을 헌법의 기본 정신(저자가 말하는 바대로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에 입각하여 일깨워준다.

그가 책에서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거듭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묵비권, 즉 말하지 않을 권리다. 그는 임의수사와 강제수사를 나누어 설명해주고, 임의수사에서 피조사자는 누구나 말하지 않을 권리를 가지며, 말하지 않을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그것이 진실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질문 자체를 무효화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누군가에게 질문을 했을 때 거기에 대해서 답변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맞으니까 대답을 못하지, 하고 쉽게 말하게 되는데(물론 그 역시도 작품 내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통해 실생활과 법정에서의 다른 상황을 가정하여 말하지만) 그것이 법정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검사들에 의해 짓눌려온 우리 최대의 방패이자 최대의 무기인 말하지 않을 권리는 되살아나야한다, 이것이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요체다. 그리고 그는 그 실효성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큼지막한 사건에서 말하지 않을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해온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변호사 출신, 즉 법조인 출신이라는 사실으로써.

사실 법정은 왠지 경직된 느낌을 준다. 그것은 곧 일반인보다 법조인들을 한층 더 높은 계층으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된다. 법정은 경직된 전문가, 엘리트, 스페셜리스트라는 느낌을 주는 검사와 판사 그리고 변호사의 각축장이다. 거기에서 법률적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끼어들 곳이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법률을 일반인이라고 해서 배울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회 역시 곳곳에 열려있긴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그것은 기성 법조인들에 의해서 보이지 않는 방해로 가로막혀있다. 대표적인 것이 실생활과는 서로 다른 의미로서의 용어의 사용이다. 국어사전에 없는 뜻으로 논문에 쓰이고 그것이 거듭되어 사용되다보니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해낸 대국어사전의 내용까지 뜯어고쳐버리는, '법조인의 힘'이자 법률이 어려운 이유. 물론 그것 뿐만은 아니다. 하지만 정의의 수호자가 되어야할 검사와 구제자가 되어줘야할 변호사, 공정한 심판이 되어야할 재판관이 한통속이 되어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싸워오는 모습을 지금까지 너무 자주 봐왔고, 지금도 또한 그러한 모습을 보고 있으며(사법고시 패스생 vs 로스쿨 변호사시험 우수성적자(현재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저자 역시 그 부분을 강조한다.

그는 로스쿨을 배심원제나 사법일원화와 함께 법조 개혁의 하나의 길로 보았다. 그가 바라던 로스쿨이 지금과 같은 형태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가 상상했던 로스쿨이 지금과 같은 형태를 취하지는 않았었으리라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로스쿨의 등장이 과연 얼마나 지속될지 그 자체에도 의문을 품고 있는 나지만, 이러한 형태의 개혁은 혼란을 가속시킬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다. 단체로 자퇴를 하고, 이제 기성 법조인이 될 사법연수원 수료생들이나 이미 법조인의 신분이 되어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법조인의 진입을 가로막으려 하는 모습은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물론 그들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를 알기에 부분 공감이 되기는 하지만. 로스쿨의 가장 큰 장점은 현실적인 사법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저자가 로스쿨 제도를 사법개혁의 한 요소로 본 이유는 법 교육의 다원화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현행 사법연수원 체제에서 각교 로스쿨 체제로 건너가면서 "변호사가 판사가 선배고 검사가 후배인" 상황, 즉 인맥 중심의 법정 상황을 개선할 수 있으리라 본 것이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중 한권으로 손꼽히는 『불멸의 신성가족』에서도 소위 말하는 '사법 패밀리'를 까고 있지만, 이 책에서도 법조인들에 대한 그의 부정적인 시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선후배 관계로 뒤얽힌 법조인들의 관계에 개혁의 필요성을 말했다. 지금까지 검사들이 '관행적으로' 행해온 탈법적, 불법적 수사 등을 철저하게 파헤쳤고, 그들이 가르쳐주지 않으려고 애쓰는 국민들의 자기 보호 수단을 공개했다. 기형화된 국내 법조계를 소개하는데 3장, 4장, 5장 등 3개 장을 할애하고 있다. 결국 '돈'을 벌기 위한 법조인이 되어버린 현실, 그가 가장 답답했던 것은 그런 요소일런지도 모르겠다. 그가 검사체질이 아니라고 휘리릭 미국으로 떠나버린 이유도 그런 것일지 모르겠고.

사실 책의 논점은 묘하다. 검사로서의 경험은 자신이 검사들을, 법조인들을 비판하는 제1의 근거가 되고 있지만 동시에 자신이 검사로서 겪었던 힘든 점들까지 제시하면서 사법 개혁의 방향을 제안하고 있다. 그는 지면 전반에서 현재의 법률 체계는 지나치게 고가를 요구하며 희소성이 큰 형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점점 늘어나는 연 법조인 수에 대해서는 이러한 희소성을 낮추어 법의 생활화를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물론 미래의 법조인들에게 그것은 곧 생활의 어려움으로 직결된다는 문제점은 있지만.

그리고 법률구조공단! 법률구조공단이 법무부 아래 있으면 안되는 이유나 공단과 국민권익위원회 등의 여러가지 한계를 볼 수 있었다는 점도 포인트. 돈이 없더라도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사회, 어쩌면 그것이 모든 버조인들이 추구해야할 진정한 법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법은 국민을 제약하는 것보다 보호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김두식이라는 사람, 그냥 글을 좋아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건대 글을 굉장히 잘 쓴다. 책은 그만 쓰고 싶다면서도 책도 계속 나온다. 자신의 분야에 충실하고, 글까지 잘 쓰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나에게 유시민이 그랬고, 정재승이 그랬다. 그리고 이제 김두식이라는 사람도 그러리라.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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