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지편집부 이야기

 본래 나는 교지편집부 소속이 아니다. 정확히 교지편집부가 어떠한 시스템하에 굴러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각주:1] 꽤나 역사도 깊은 부서고 사건 사고도 많았던 것 같다(과거지만). 우리반에 교지편집부에 속해있는 친구[각주:2]가 있었고, 백범일지 독후감 쓰기 대회에서 입상했을 때 알게 되었던(물론 심화반 수업에도 들어오고 계셨다. 그땐 그냥 '이과 문학 선생님'이었지만) 선생님이 담당 선생님이라서 나도 글을 한 편 싣게 됬다. 가끔 헛된 망상으로 문창과를 꿈꿔보기도 하는 사람인지라, 거기다 글 쓰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즐겁게 한 편 썼다. 블로그에도 포스팅할 백의 그림자 독후감이 바로 그 것. 나름 분량 조절하면서 글이 어색해지더라도 어쩔 수 없지- 라는 생각으로 썼는데, 다 쓰고 나니 길면 길 수록 좋은 것이었던 것은 비밀(...)

 어쨌든 그 글을 싣는 과정에서, 선생님의 부탁을 듣고(물론 부탁하지 않으셨더라도 기회가 있었다면 했으리라) 교지편집 교정에 뛰어들었다. 물론 나는 공식적으로 교지편집부 소속도 아니고해서(1학년 때 선택 하지 않았었고, 1학년 후반기 때 새롬에 가입했었다) 교지를 만드는데 아주 크게 공헌한 것은 없다. 취재도 작성도 대부분 교지편집부가 담당했고[각주:3], 나는 거기에서 오탈자 좀 보고 어색한 부분만 바로잡는 수준이었다. 교정이란건 생각보다 재밌는 작업이기 때문에. 어쨌든 첫 날은 7시부터 8시 20분까지 있는 야자 1교시를 빼고 교지편집부에 가서 학교 화젯거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것을 베껴적은 것들을 바로잡았다. 사실 실제로 내가 그 토론에 참여했던 것도 아닌데 이렇게 바로잡아도 되나 싶긴 했지만(...) 담당 선생님의 OK 싸인을 받고 광란의 작업으로 수정. 욕심을 부리다보니 1시간 내내 그 글 하나만 하고 나왔다.

 사실 나는 그런 교내 학업외 활동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라, 꽤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기회만 되면 야자를 빼든 뭘 빼서라도 빠져나오려고 하는 이유도 그런 곳에 있을 것이다. 자습시간을 빼버리면 안그래도 상대적으로 자습시간이 부족한 나에게는 큰 타격이 된다는걸 알면서도 자꾸 그러고 있는걸.

 어쨌든 다시 도와드리러가서는 오후자습 2교시에 있는 국사 보충까지 빼고 돕기 시작. 작업 자체는 4시 10분 경에 스타트를 끊었는데, 정말 밥 먹는 시간 빼고 미친듯이 했는데도 작업이 끝나니 곧 학교가 끝나는 9시 50분이었다(...) 마감으로 교지편집부 사이에서 어색어색하게 사진도 찍고, 뒷정리도 하고, 선생님 딸한테 인사도 해주고(답인사는 못받았다. ㅠㅠ) 개운하게 나왔다. 나오면서 후회한건, 역시 교지편집부라도 가입할걸 그랬어, 정도였을까. 형들(3학년 선배들) 합격수기 좀 바로잡고, 다른 학생이 쓴 글도 몇 개 검토만 하고, 제목 붙일만한 글들에는 제목도 붙여주고 하면서 정신업이 시간을 보냈지만, 그런 것 자체가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들어 자꾸 드는 생각은, 과연 내가 대학이 눈 앞에 닥치고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학창시절을 허비해버린 것은 아닌가 싶은 것이다. 사실 내게 있어서 대학에 합격만 하면 놀 수 있다는 그런 로망은 이미 산산조각 난지 오래고[각주:4] 물론 안 놀 지는 않겠지만, 우선 내 계획대로라면 군대를 포함해서 여기 저기 바쁘게 살 것 같으니, 지금이 아니면 이런 여유를 언제 느낄 수 있겠느냐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부모님의, 선생님의, 가족들의, 어른들의 보호 아래에서 이렇게 마음 편하게, 건강하게, 청춘으로서 지낼 수 있는 날은 지금뿐이 아닐까 싶은 알 수 없는 걱정에 빠져있다고나 할까. 글쎄, 어떨까?
  1. 아마도 C.A.에 활동하는 동아리 형태로 유지되고 있는 것 같은데 [본문으로]
  2. 교지편집부는 왠지 문과일 것 같은데, 2학년에서 문과라곤 그 친구 밖에 없다! 이과세상 교편! [본문으로]
  3. 물론 글 대부분은 학생 기고 [본문으로]
  4. 로스쿨을 꿈꾸고 그러는 과정에서 로스쿨 폐지까지 걱정해야하는 사람으로서는.. [본문으로]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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