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지 히토나리 -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오랜만에 소설책을 잡았다. 오랫동안 소설책과는 담을 쌓고 살고 있었다. 학업이네 뭐네 하는 핑계를 잔뜩 등에 업고, 시간이 있더라도 문학과는 묘한 담을 쌓아버렸다. 그 사이에 몇 권을 억지로 읽어내긴 했지만 그 느낌이 없었다. 점점 읽는 책은 무미건조한 자기계발서나 교양서적 등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시는 읽지 못하더라도 소설만큼은 계속해서 읽는 사람이 되는 것, 남 앞에서는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하지만 '나는 문학을 좋아한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건 굉장히 묘한 일이었다. 그런 것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는데도 어찌할 바가 없었달까. 그건 시간의 여유와는 다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시간의 여유라기 보다는,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는게 더 옳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하도 오랜만에 읽은 일본소설. 그렇지만 새삼스레 와닿는 내용은 많았다. 아직 공지영씨가 쓴 것은 읽지 못했지만, 공지영 씨가 쓰신 것은 다시 '홍(베니)'의 입장에서 전개되는 모양이다. 앞부분만 봤는데 뭔가 훅 다가온다. 서로 다른 작가가, 각자 하나의 시점을 가지고, 한 이야기에서 두 개의 이야기를 파생시킨다는 것은 꽤나 매력적인 일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준고와 '그녀', 홍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의 이름에는 묘한 울림이 있었다. 나에게는 일본식 이름은 아직도 어색했다. 준고와 베니(홍)라는 이름은, 왠지 모를 문화, 언어의 장벽이, 우리와 일본 사이의 바다보다도 더 두껍게 막아서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 벽을 허물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준고의 한국식 발음인 윤오, 그리고 홍, 이라고 하는 이름은, 실제 글자도 그러지만, 왠지모를 둥글둥글한 느낌, 그리고 입에서 가볍게 울리는 소리가 있었다. 주인공의 이름을 듣는 순간 이미 나는 이 책을 빠져나오지 못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몇 년은 더 자라서, 사라잉라는 걸 해보고 나서 읽어봐야만 이 책의 진정한 무언가를 느낄 수있는게 아닐까. 짝사랑은 해본적이 있지만 사랑은 단 한 번도 해본적이 없는 나에게는 이 책에서, 작가가 건네는 말을, 윤오와 홍과 칸나가 서로에게 건네는 말과 행동의 무게를 온전히 느낄 수 없었다. 그저, 뭐라고 해야할까, 아바타라도 뒤집어쓰고 읽고 있는 느낌이라고 하면 옳을까.

나도 홍이도 자신들이 사랑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매료되어 영혼을 빼앗기고 있었다. 기쁨의 절정이라는 말이 그때의 우리에게는 딱 맞았다.
그들은 결국 젊음이라는 방패를 쓰고 어려운 사랑을 시작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일본과 한국, 그 어느나라보다 가깝지만 그 어느나라보다 멀기도 한 나라라는 사실은 여전하다. 오랜 역사에서 이 둘은 사이가 좋았던 때도 있었고 사이가 나빴던 때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사이가 좋았거나 전혀 교류가 없었던 기간이 오히려 길었다. 우리나라는 굳이 일본과의 교류를 피하지 않았다. 중국에 행한 교류와 달리 일본을 비롯해 다른 나라에 행한 무역에는, 조선시대의 표현을 빌리자면 '교린'이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저 거기에 있기 때문에 교류를 하고 있었던 것 뿐.

역사적으로 이웃한 것은 사이좋기가 어렵다. 그것은 국제관계도 그렇다. 지금도 일본과 끊임없는 경쟁을 하고 있지만, 그렇게 평화와 화합을 외치면서도 일본과 진정으로 화합할 수 없는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전쟁과 일제강점기라는 선조들의 피묻은 기억이 고여있다. 누구도 그것을 버리라고 명령할 수는 없다. 경제적 국제적 실리를 포기하고 그런 감정에 휩싸여있는 것이 누군가의 눈에는 어리석에 보일지는 몰라도, 우리 민족과 국민들에게는 더없이 아픈 상처였다. 너와 나의 문제가 아니라 너희 선조와 우리 선조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더 깊고 치유되기 어려웠다. 그리고 일본은 그런 피묻은 기억과 상처를 씻겨주고 치유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왔다. 결국 작중에도 등장하는 「혐한반일」이라는 말은, 일본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가해자'다. 결국 무릎꿇어야하는 것은 항상 가해자여야한다. 굳이 피해자인 우리가 일본을 향해 무릎꿇을 필요는 없는 셈이다.

그런 역사적 장벽, 언어와 문화의 차이, 그 모든 것이 홍과 윤오에게는 문제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사랑'에 빠져있었다. 사랑의 깊은 나락에 빠져 영혼까지도 빼앗기고 있었다. 그렇다, 영혼을 빼앗기고 있었다라는 표현만큼 그것을 잘 표현해낼 수 있는 말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음 순간, 바람이 일어 내 육체는 홍이의 잔상에 기대어 그녀가 남기고 간 것들을 주워 모았다. 그 추억 속에는 희망이 있고, 조금이지만 내일이 그리고 미래가 있다. 모래사장에 웅크리고 앉아 모래를 긁어모으듯 나는 홍이가 남기고 간 방대한 정보를 끌어안게 된 것이다.
운명과도 같은 7년만의 재회. 윤오의 생각처럼, 그것은 신이 그들에게 내린 마지막 기회일 수도, 신의 잔혹한 장난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다시 만났다라고 하는 사실 하나 뿐이었다. 윤오는 지금까지 7년동안 칸나를 거부해왔다. 그것은 얼마나 아픈 사랑이었을까. 자신을 좋아하며 아파하는 것을 알면서도 윤오는 칸나를 받아주지 못했다. 칸나는 윤오가 홍을 마음에 담아두고 아파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포기하지 못했고, 그의 연인이 되어 그 상처를 치유해줄 수도 없었다. 홍은 어땠던가.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떠났지만 더없이 괴로워하며 7년을 보내고 있었다.

7년. 얼마나 아득한 시간인걸까. 지금의 나로 치자면 초등학교까지 내려가게 되는 그 긴 시간동안 그들은 서로를 잊지 못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분명 윤오와 홍이었지만, 숨은 주인공도 있었다. 앞서부터 계속 언급해왔던 '칸나'였다. 한 남자를 중심으로 한 오묘한 삼각관계, 그 삼각관계에서 주인고이 아닌 여자는 다른 소설들의 전형적인 '악역 구도'와는 다른 역할을 맡았다. 조금은 개연성잆어 이윤오를 포기하며 그의 행복을 빌어주고 그를 홍에게 보내주는 그녀, 그녀의 모습은 또다른 '피해자'일 뿐이었다.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자면 이 이야기에서 가장 나쁜 것은 가장 아파한 인물 중 하나였던 윤오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전략)……하지만 그건 침략 전쟁이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내가 아무리 일본을 좋아한다 해도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은 지워지지 않아요. 그러나 나는 일본을 그리고 일본인을 좋아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일본 문학을 소해애 오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지금 일본과 한국 관계의 현실이다. 일본이 우리에게 너희 자꾸 그럴거냐, 60년 전의 일을 가지고... 라고 하는 것에 우리가 울분을 터트리는 이유는, 우리라고 해서 그 60년이 길지 않다고 생각해서도 아니고, 우리가 그저 바보이기도 아니고, 과거에 얽애며있어서도 아니다. 일부 '국가 의식'조차 망가져버린 사람들이 나타나는 부작용을 안고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일본 음악, 소설, 영화, 드라마 등을 즐기는 층이 나타났고(여기도 있다), 그 층은 점점 확대되어 '서브컬쳐 매니아'라는 하나의 두터운 집단을 형성했다. 그것은 친일, 반한, 매국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일본은 그저 매력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일 뿐이고, 역사에 앞서 일본을 다른 나라와 같이 취급을 할 뿐이다. 거기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렇지만, 비록 60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사과조차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그들의 태도는 우리를 분노케 만들었다. 현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데 그러면 자신들의 것을 포기하면서 해야지 남에게 피해를 줘놓고 사과조차 하지 않으면서 현실의 이익이네 뭐네 하면 외면받을 수 밖에 없다.

이 소설은 한일우호의 해를 맞이해 쓴 소설이라고 한다. 이 소설은 그만큼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사랑조차 순탄하게 넘어갈 수 없는 역사의 장벽, 문화의 장벽을 츠지 히토나리는 그의 문체로 굉장히 잘 담아냈다. 결말까지 홍과 윤오의 사랑은 완성되지 못한 채로, 완성될 기미만을 보이며 끝을 맺는다. 홍의 약혼자인 민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찌되든 윤오와 홍이 맺어지길 바라는 것은, 또 하나의 이기적인 마음인 것일까.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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