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쇼트(The Big Short)

 

 

   갑자기 영화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것도 10,000원은 부담되니까, 아침은 한산해서 좋으니까, 혼자 볼건데 사람 많은 시간에 커플들에 둘러싸이고 싶지 않으니까, 별이별 이유가 다 들어 조조가. 아침에 잘 일어나지는 못하는 편이지만 또 해야하는 일이 있으면 못일어나는건 아니라서 금요일 아침에 보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데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근데, 와, 일어나보니 엄청나게 춥다. 에라이, 영화를 포기하기로 한다. 두 시간 뒤, 다시 정신을 차린다. 영화 보러갈걸, 늦은 후회를 한다. 그래, 이건 다 내 의지문제야... 하면서, 토요일 조조 표를 예매한다. 그리하여 드디어 오늘, 역시나 아침에 일어나 가기는 싫었지만 예매했으니 가야한다는 의무감에 떠밀려 극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힘들게(?) 만나본 영화가 바로, 빅쇼트다.

 

   빅쇼트가 다루고 있는 것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다. 정확히는 그것보다 몇년 전, 미국의 부동산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되어있으며, 이것이 부실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더욱 더 과열되고 있음을 미리 눈치채고, 그것의 반대(즉 부동산시장이 폭락하는 것에 투자함)에 투자하여 큰 돈을 벌어들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원작은 국내에도 <빅숏: 패닉 이후, 승리자들은 무엇을 보는가?>라는 이름으로 출판된 논픽션이다. 내가 크리스챤 베일을 좋아해서인지 나는 크리스챤 베일이 분한 마이클 버리 박사에게 집중했지만, 네 명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괴상하고, 하나같이 통쾌하며, 하나같이 씁쓸하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지만, 논픽션을 영화화한만큼 다큐멘터리적인 성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다큐멘터리의 '재연 영상'을 초호화 캐스팅 버전으로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나 이것은 영화의 단점이 아니다. 감독은 오히려 이러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영화 곳곳에서 다큐멘터리적 기법을 사용하는데, 예컨대 모든 등장인물들이 계속 움직이고 있는데 인물 한 명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관객들에게 나레이션해주고, 개념을 설명해주기까지 한다(심지어 재밌는 비유까지 동원하여!).

 

   물론 이러한 다큐멘터리적 성격이 이 영화의 단점이 될 수도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영화의 평점이 갈리는 것은 그러한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극적인 포인트가 크지 않다. 부동산 패망에 돈을 걸어, 이들은 '괴상한 사람' 혹은 '바보같은 투자자', '능력없는 펀드매니저' 따위의 취급을 받다가, 종국에는 이를 이용해서 큰 돈을 번다. 이들이 투자한 상품인 신용부도스왑(CDS; Credit Default Swap, CGV 영화 자막에서는 신용부도스와프였던 걸로 기억함)이다. 이것은 간단히 말하면, 자신이 특정한 채권이 부도가 날 때 이익을 보게 되는 상품이다. 이 영화에서는 한창 MBS(모기지저당증권)에 바탕한 CDO(부채담보부증권)가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 그에 대해 거꾸로 투자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렇다보니 이들은 시종일관 무시를 당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큰 성공을 거둔다. 그런데도 이 과정에서 통쾌함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마이클 버리는 계속 마이너스 수익율을 적던 화이트보드에 막대한 수익율을 고쳐넣고, 펀드를 접는다. 이 장면에서 엄청난 금액, 엄청난 수익에 사람들은 약간의 통쾌함을 느끼지만, 영화 자체는 이를 그다지 극적으로 묘사하고자 하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이들의 성공을 극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완전히 붕괴된 미국경제와 그 피해자들에 초점을 맞춘다.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매우 간단하다. 잘못은 월가를 포함한 몇몇 부자들, 투자자들, 은행들이 했고, 그 모든 피해는 전 미국인, 나아가서는 전세계의 사람들이 나누어 졌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잘못한 월가의 사람들은 국가의 막대한 구제금융을 통해 구제받았다는 것이다. 영화는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주의의 실패를 선언하지만, 정작 국가와 사회, 그리고 전세계는 이러한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잘못된 방법으로, 잘못이 없는 사람들을 담보로 하여 연명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크레딧에서, 2015년 CDO와 거의 같은 상품이 출시되었음을 말하는 문구가 뜬다. 결국, 역사는 반복되고, 실수는 되풀이된다. 아무리 큰 피해를 봤더라도, 아무리 크게 데였더라도, 사람들은 권위를, 월가를 믿고 같은 투자와 같은 대출과 같은 대응을 반복하는 것이다.

 

   영화는 이런 내용을 실화에 바탕하여 전달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혹자에게는 조금 지루할 수도 있겠다. 어려운 용어도 반복해서 나오고, 사실 엄청나게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지만 이 영화는 그런 장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다큐멘터리와 진지한 내용, 이와 어울리지 않는 위트있고 재치있는 인물과 행동을 담아냄으로써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뭔가 다이나믹한 스토리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최근의 '레버넌트'보다 훨씬 좋았던 영화다.

 

 

*

   "MBS에 바탕한 CDO가 한창 잘 나갈 때 CDS에 투자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사실은 잘 모르는 상태로 영화관에 가게 되면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영화에서는 MBS나 CDO, CDS같은 내용들에 대해 적절한 예를 들어가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그 모든걸 파악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 정도는 간단하게 찾아보고 가는 것이 영화를 보는데 보탬이 된다. 간단한건 나무위키에서 찾아봐도 대충은 알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런거다. 은행들이 주택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준다(모기지). 이런 모기지는 대개 장기간에 걸쳐 원리금을 회수하게 되는데, 이는 은행에게 있어서 별로 재미가 없다. 상환율은 높지만, 원리금을 완전히 회수하는데 몇십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행들이 생각한 것이 바로 모기지저당증권, MBS다. 이들은 이러한 채권들을 모아서 이를 담보로 한 증권을 발행하고 이를 투자은행 등의 투자자에게 판다. 그러면 물론 몇십년간 받아야할 원리금보다는 적지만, 목돈을 한 번에 얻을 수 있게 된다. 은행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유동성(liqudity)'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헤지펀드나 투자은행들은 이러한 채권들을 모아 다시 증권을 발행한다. 결국 이들이 손에 쥐고 있는 모기지가 장기간에 걸쳐 돈을 회수해야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채권들을 모으고 모아 부채담보부증권, CDO를 발행한다. 그리고 다시 이걸 투자자들에게 판다. 다양한 CDO를 산 새로운 투자자는 이 CDO들을 모아 새로운 CDO를 만든다. 즉, 최초의 CDO를 CDO-0라고 했을 때, 이 CDO-0들을 모아 이들을 담보로 한 CDO-1을 만들고, 이러한 CDO-1들을 모아 담보로 해서 다시 CDO-2를 만들고... 이런 과정이 반복된다. 결국 처음 시작이었던 모기지저당의 규모에 비해 훨씬 큰 파생상품이 만들어진다. 막대한 수익률을 자랑하지만, 원래의 모기지가 부실화되고 부도된다면 모두가 연쇄적으로 망하는 구조의 파생상품들이다.

 

   그런데 중요한 부분이 있다. 이 CDO의 수익율이 커지면서 전세계의 돈이 CDO로 몰리게 되었는데, 이 CDO를 만들려면 그 뿌리가 되는 '모기지'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통상의 엄격한 대출심사를 통과하여 돈을 빌릴 수 있는 신용우량자(Prime)는 그 수가 제한되어있고, 결국 동이 나기 마련이다. 그러자 은행은 기존의 엄격한 심사기준을 점차 완화하게 되고, 종국에는 영화에도 나오는 '닌자대출(NINJA대출; No INcome, no Job & no Asset. 수입없음, 직업없음, 자산없음. NINJA 대출이라 함은 이들처럼 신용을 담보할 수 없는 이들에 대해까지서도 무분별하게 이루어지는 대출을 의미함)'이 성행하게 된다. 이렇듯 신용등급이 우량하지 못하여 회수율이 낮다고 판단되는 이들을 서브프라임(Subprime, sub-는 -보다 작음을 의미하는 영어의 접두사)이라고 하는데, 이들이 대량의 대출을 받게 되었지만 집값 상승이 둔화됨에 따라 채무불이행(Default, 앞서 살펴본 신용부도스왑 CDS의 D와 같음, 즉 부도!)을 선언하게 됨에 따라 은행의 유동성이 위협받게 되고, 이에 의해 촉발된 금융위기가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및 그에 뒤이은 글로벌 금융위기인 것이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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