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사제들 - 엑소시즘 장르의 한국적 재해석

 

 

들어가며

   일단 하나 고백해야할 게 있다. 나는 호러 영화를 굉장히 싫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엑소시즘 영화를 굳이 찾아봐야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 그런데 또 아이러니한게, 교황청과 그로부터 내려오는 천주교적 구조와, 그 과정에서 엑소시즘(영화속에서 구마驅魔)을 다룬 이야기는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이야기 중 하나다. 사실 그러한 이야기는 호러와는 무관하게 좋아하는 사람이 꽤 많은데, 종교집단이자 그 자체로 한 때 세계를 주물렀고, 군사력을 동원하기도 했고, 아직까지도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로마카톨릭은 사람들의 숱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소재가 된다. 이런 분위기는 사실 일본에서 먼저 유행했던 것 같다. 숱한 판타지 장르가 자신들의 세계관에 교황청이나 그와 유사한 무언가를 끌어들였다. 그 자체를 주제로 삼기도 했다. 미완작으로 남고 만 트리니티 블러드교황청과 성당교회라는 가상의 집단을 끌어들인 타입문의 월희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종교에는 그런 부분이 있다. 미신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것의 경계에 서있다. 그러한 상황에 대해서 영화 속의 김신부는 '필요할 때만 이성을 따진다'라며 맹렬히 비판한다. 그렇지만 현대인의 관점에서, 종교를 가지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의문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과연 신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걸까? 그렇다면 신과 대척점에 서있는 이들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들의 존재는 어떻게 은폐되고 있는 것일까? 교황청이나 그 아래에서 활약한다는 숱한 작품들의 '가상의 조직'들에 대한 상상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이 작품, 검은 사제들도 그렇다.

 

평범한 엑소시즘 영화

   내가 엑소시즘 영화에 대해서는 아는 바는 많지 않다. 원래 선호하지 않는 장르였기 때문이다. 비록 이러한 장르의 세계관은 좋아한다고 할지라도, 아무래도 엑소시즘을 다루는 영화는 공포영화 그 자체를 표방하는 경우가 많았고, 덕분에 내게는 흥미보다는 공포가 앞섰다. 단 한 편도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굉장히 평범한 엑소시즘 장르의 영화라는 것은 왠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도 일단 이와 일치하는 것 같다. 크게 색다를 것은 없지만,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라는 평가.

 

   스토리 상으로 그다지 특이한 것은 없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김신부와 최부제가 함께 영신의 몸 속에 깃든 12형상 중 하나를 쫓아내기 위한 과정을 그리고 있고, 결과적으로 성공한다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감독의 의도적인 한국적 재해석과 상상력이 엿보이는데, 예컨대 12지신을 끌고 들어온 점(후에 보니 12형상도 12지신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던데, 일단 로마카톨릭에서 부제를 찾으면서 '호랑이 띠'를 찾는다는 점에서부터...)이 눈에 띈다. 장재현 감독이 인터뷰에서 '사람들에게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장치'로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게 그런 작용을 충분히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의외로 어색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잘 녹아들었다.

 

   그리고 한국영화답게, 영화는 계속 진지한 분위기가 아니라, 유머러스한 분위기와 진지한 분위기를 계속 오간다. 영화 초반에는 섬뜩한 분위기만을 주면서 신비감을 자아내지만 주된 분위기는 김신부의 괴팍한 성격과 자유분방한 최부제의 성격에서 오는 유머러스함이다. 그렇지만 영화의 이야기가 본격적인 흐름을 타기 시작하면, 영화는 한없이 진지하다. 한국영화에서 보기 쉬운 구성인데, 아무래도 2시간의 스크린 내내 귀신이 어떻고, 엑소시즘이 어떻고, 12형상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 상업영화로서 부담되기 때문인 것 같다. 비슷한 장치를 '사도'에서 사용해서 진지한 영화 분위기에 번잡하게 방해되었다는 평가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사도보다는 검은 사제들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 생각보다 더 유머코드는 적절하게 잘 절제되었다는 느낌. 아무래도 공포영화를 못보는 나에게는 계속 진지하게 엑소시즘만을 들들 팠다면 중간에 나와버렸을지도 모를 일이기도 하고. 

 

   엑소시즘 영화가 원래 이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영화 자체가 엄청나게 무서운건 아니다. 그동안의 한국적 코드를 사용한(주로 원혼을 소재로 하는) 공포영화들에 비하면 빙의한 영신의 모습도 어느 정도 봐줄만은 하다. 그렇지만 영화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섬뜩하고 베일에 쌓인 '12형상'의 이미지는 관객들에게 공포감을 불어넣어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박소담 양이 직접 연기했다는 빙의한 목소리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괴기스럽다. 특히 최부제와 대화하는 모습이 압권. 한국말로 해도 충분히 섬뜩한 이야기를, 라틴어와 중국어를 섞어 사용함으로써 괴기스러움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아쉬운 결말과 해석의 여지

   그러나 결말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 영화에서 결국 구마에 성공한 이들은 악마가 깃든 돼지를 죽임으로써 구마의식을 끝내고자 하고, 최부제가 그 돼지를 맡아 한강에 던지는 역할을 맡는다. 그가 한강에 이르기까지는 물론 고난의 연속이지만, 의외로 한강에 돼지를 던지고 걸어 나오기까지는 비교적 순탄하다. 아무도 죽지 않고, 마지막에 박소담이 분했던 영신이 손가락을 움찔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냄으로써 그녀가 살아있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김신부는 잡혀가지만, 썩어가던 그의 몸은 깨끗이 나았으며, 최부제 역시 한강에 뛰어들었지만 멀쩡하게 살아돌아온다. 마지막에 갑자기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해피엔딩으로 달려드는 것은, 뭐 어떤 의미에서는 좋은 결말이기도 하지만 뭔가 찝찝함이 남는다.

 

   물론 나름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고 볼 수도 있다. 과연 영신은 살았을까? 최부제가 한강 밖으로 나올 때 한강 둔치에 이미 놓여있었던 신발은 어떤 의미일까? 과연 구마는 성공적으로 끝난 것일까? 숱한 해석의 여지가 남아있지만,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부분도 너무 크다. 썩어가던 김신부와 최부제의 몸이 깨끗해졌음은 구마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봐야할 것이다. 사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한강 둔치에 놓여있었던 신발인데, 인터넷에서 해석의 여론은 그냥 한강의 분위기를 위해 배치해놓았다는 것인데 과연 그렇게 깔끔하게 보고 지나가도 될런지.

 

 

강동원, 김윤석, 그리고 박소담

   영화에는 그렇게 많은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중심 인물이라고 한다면 김신부(김범신 베드로 신부/김윤석), 최부제(최준호 아가토 사제/강동원), 이영신(박소담) 정도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굉장히 캐릭터성이 강한 영화다. 사실 뻔하다면 뻔한 스토리에 캐릭터성과 스타성 있는 배우를 끼얹어 완성해낸 영화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영화의 주역은 강동원이다. 수단(사제복)을 입은 강동원의 모습은 게임이나 영화 속에서 그려지던 전형적인 사제의 그것이다. 사제복의 핏을 몸으로 살려낸 강동원.. 물론 거기서 그치지 않고, 김윤석이 연기해낸 김신부라는 캐릭터도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다. 자칫하면 진지하고 무거워질 수 있는 영화 분위기를 적절하게 끊어주는 역할을 하면서도, 자신의 역할에는 한없이 진지한 캐릭터다.

 

   그리고 박소담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새로운 스타의 출연? 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굉장히 특색있고, 경력이 적은 여배우에게는 힘들 수 있었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다 보고 나서 나중에 알고 보니 사도에도 출연했었다고. 그 때도 (누군지는 몰랐지만) 굉장히 특색있는 배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 영화에서 주연급 배우를 훌륭하게 소화해내는걸 보니 확실히 핫한 배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왠지 응원하고 싶은 배우다.

 

 

엑소시즘과 미스터리 사이에서

   이 영화는 엑소시즘 장르에의 도전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캐주얼한 미스터리 영화로서의 매력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엑소시즘이라는 행위를 한국적으로 잘 풀이해냈다. 그 결과 앞서 말했듯이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엑소시즘 장르의 영화가 탄생했다. 영화는 굉장히 흥미롭고, 캐릭터는 매력적이며, 이야기는 자연스럽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원래 엑소시즘 장르나 호러물을 좋아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일반적인 엑소시즘 영화보다 훨씬 '대중화'되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토리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지도 않았고, 묘사에서도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절제했다는 느낌이 역력하다. 마니아 장르로서의 엑소시즘이 아닌 대중 장르로서의 엑소시즘을 그려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영화가 엑소시즘 장르 특유의 특색을 많이 잃었다고 풀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대체적인 평가는 수작보다는 살짝 아래인, 탄탄하게 잘 만들어진 평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 같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검은 사제들'은 굉장히 의미있는 영화다. 우리나라에서도 동양적인 감정에 초점을 맞춘 공포물에서 벗어나 구마, 엑소시즘, 로마카톨릭같은 서구의 소재를 적극적으로 가져온 호러 장르가 성공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는 비록 강동원이라는 캐릭터가 조금은 너무 크다 싶을 정도로 큰 자리를 자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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