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네자와 호노부, 야경



들어가며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은 매력적이다. 한국 문단의 소식에도 어두운 내가 일본 문단의 현 상황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라이트노벨이라는 장르는(나 또한 좋아하는 장르임에는 분명하지만) 문단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대체로 완전한 순수문학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고 있지만, 적당히 애매하게 일반문학과 라이트노벨의 사이에 걸리는 장르들(주로 추리물이 주를 이루는 것 같은데) 같은 경우에는 그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짐과 동시에 일반문학이 라이트노벨화 되는 경향도 있다. 옛날에는 일반문학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소재가 일반문학을 표방하고 나오는 경우도 옛날보다 훨씬 더 빈번해졌다.

 

   그런 작가 중에 한 명이 요네자와 호노부였다. 본인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으나, <고전부 시리즈>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그의 소설은 라이트노벨과 아닌 것의 가운데 어딘가에 애매하게 떨어져있다. <고전부 시리즈>는 오히려 라이트노벨에 한없이 가까운 장르라고 생각되지만, 사실 그의 다른 작품들은 순수 추리물에 가깝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셜록홈즈같은 정통 추리물과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은 아니다. 고전부 시리즈에서와 마찬가지로, 요네자와 호노부 만의, 이것이 추리물의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까지 한 편의 추리물로 바꿔놓는 점이 눈에 띈다. 이번 단편집 '야경'도 마찬가지다. 여섯 편의 이야기는 서로 유기성 있게 얽혀있는 것은 아니지만, 요네자와 호노부의 특징적인 면모를 잘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야경

   지방 파출소에 일하는 한 남자를 소재로 하고 있는 추리물. 핵심적인 메시지는 '경찰에 맞지 않는 인물'이다. 비단 경찰 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위치, 어딘가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예단하고 다른 사람이 그를 그 자리에서 몰아내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일까. 야경의 주인공은 몰아냄으로써 한 명을, 몰아내지 않음으로써 또 한 명을 죽음에 처하게 만들었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자신이야말로 이 경찰이라는 자리에 맞지 않는 인물인 것은 아닌가에 대해서 고민한다.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도 쉽게 볼 수 있는 이야기다.

 

   사람에게는 적성이 있다. 그런 적성을 일괄적으로 무시하는 자리(대표적으로 군대)가 아니라면, 사람은 자신의 적성에 맞는 곳에 가는 것이 본인에게나 주변 사람에게나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야경 속의 인물은 총을 쏘는 것을 좋아할 뿐이지 경찰에 걸맞는 인물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를 경찰자리에 앉혀놓을 수 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그는 죽음을 맞았다.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서 너무 큰 일을 벌인 결과로 말이다.

 

   작품 자체는 말 그대로 '적당한 소설'이다. 원래 책의 제목이 '만원'이었다가 '야경'으로 국내에서 바뀌어 나왔는데, 확실히 타이틀로 삼기에는 이야기가 조금 약하다. 전반적으로 적당하다는 느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색깔은 강하게 묻어나고, 굉장히 흥모리운 이야기지만, 과연 이 여섯 편의 이야기를 묶어내는 제목으로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 아마도 출판한 엘릭시르에서는 맨 앞의 이야기이고, 제목의 '느낌'이 괜찮아서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제목만 보면 6가지 이야기 중 제일 그럴싸하다.

 

사인숙

   죽으러 오는 여인숙에 관한 이야기. 이번 단편집에서 그나마 가장 가벼웠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전반적으로 책이 무거운 편은 아니지만). 따로 크게 할 말은 없다. 흥미롭지만 역시 주력이 될만한 소설은 아니었던 것 같고.

 

석류

   보자마자 생각난게 있었는데, 중학교 때 한창 열심히었던 Sound Horizon 덕질에 입문하게 해줬던 다섯소녀 이야기 중 YIELD다. 은근히 요즘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불륜을 넘어서서 부모와 자식이 이어지는 금단의 사랑. 보기 불편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그 이상으로 불쾌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데, 이번 '석류'에서도 그런 색깔은 숨기지 않고 뿜어져 나온다. 전반적인 묘사는 그런 목표로 자신의 어머니를 재판에 지게 만드는 딸을 조금은 광란적인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어쨌든 비정상이다. 일종의 엘렉트라 콤플렉스(Electra complex)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끝까지 어머니에게 반감을 품지 않는다는 점에서 조금 구분될 수도 있다. 소재 자체나 이야기의 전개는 아주 새롭지는 않지만 이야기는 흥미롭게 잘 이끌어나갔다.

 

만등

   개인적으로는 가장 마음에 들었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 이야기다. '나는 심판받고 있다.' 역시 소재가 크게 새로울 것은 없다. 설정도 우리에게 그다지 어색한 것은 아니다. 짧은 이야기로 압축해 다른 메시지를 많이 담아내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이야기 자체는 사람을 죽인 뒤에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던 사내가, 사실은 그가 콜레라였을지도 모르고, 그것을 신고하면 자신이 범인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꼴이 되고 말아 결국 심판받고 있다고 느낀다는, 그런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결국 주인공은 싸이코패스다. 사람을 죽였다는 것에는 큰 죄책감을 품지 않지만, 그것으로 인해 자신이 직접적으로 심판받아야할 상황에 이르러서야 공포에 떤다. 그렇다면 싸이코패스거나, 이 사회 곳곳에 숨어있을 전체주의자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둘 다 별로 곁에 두고 싶지 않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문지기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가상의 도시전설, 괴담같은 이야기였다. 오히려 추리 자체보다는 곳곳에 드러나는 작가로서의 고민들에 대한 흔적이 엿보이는데, 요네자와 호노부의 직접적인 고민이든 아니든 글쓰는 것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시사하는 바는 크다. 팔방미인이 되지 말라. 결국 주인공은 팔방미인이 되는 과정에서 죽음에 이른다. 여기서 말하는 팔방미인은 무엇이든 적당히 잘하는 사람, 글로 줄이면 자신의 특기분야 없이 모든 글을 적당히 잘 쓰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 사람은 프로로 나설 수 없다. 그런 설명을 보면서, 내 글도 조금은 그런 부분이 있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든 글에 자신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특출나게 잘 쓰는 분야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만원

   원서가 나왔을 때의 제목이었던 작품. 그래서인지 작품에는 기합이 바짝 실렸다. 가장 요네자와 호노부다웠던 소설이기도 하고. 전체적인 이야기는 자신을 아껴주었던 다다미 가게의 다에코 부인의 변호를 하는 한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부인의 모습도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다. 결국 그녀가 지켜낸 것은 자신의 가문의 기풍, 가문의 보물처럼 여겨지는 족자였을 뿐이다. 그녀는 모든 것을 잃고 그것을 지켰다.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거룩하고 고귀한 일이지만, 현대 사회에, 그 룰에 맞지 않는 방법으로 그것을 지켜내는 방법은 기묘하다.

 

마치며

   소설에는 다들 나사가 하나씩 풀린 인물들이 나온다. 뭔가 2% 부족한 사람들이 나온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은 사건보다는 사람 한 명 한 명에 주목한다는 느낌이 강한데, 이번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사회파 소설인 것은 아니다. 평범한 소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조금은 캐주얼한 소설이고, 더군다나 단편이라서 분량 자체도 짧아서 큰 메시지를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그 안에서 여러가지 메시지를 발굴해낼 수 있는 이야기들도 있지만(대표적인 작품이 만등), 작가는 그런 사회파적 측면에는 큰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추리는 지적유희이며, 소설은 즐거움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 바탕해 쓰여졌다. 그런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소설은 한 편 한 편은 크게 나쁜 부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번역해져 나온 뒤에 그다지 좋은 결과를 거두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요네자와 호노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나는 그 이름을 좋아하면서도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아서인지 나름 만족스러웠지만. 나는 오히려 6개의 소설이 왜 이렇게 묶여나왔는지에 대한 유기성의 결여가 더 컸다고 본다. 물론 단편소설집이 그 이야기들이 모두 유기성있게 얽혀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뜬금없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까지도 있었다. 뭔가 습작집을 보는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가볍게 보기에는, 물론 나쁘지 않았다. 요네자와 호노부라는 이름에 먹칠할 정도의 책은 아니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이미지 맵

    서평/소설 다른 글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