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슬란 전기 1. 왕도의 불길(왕도염상)

 

 

#1.

   다나카 요시키라고 하면, 역시 대표적인 작품이 <은하영웅전설>이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작품을 쓴 것 같지만, 본 작품과 은아형웅전설이 공유하는 가장 큰 공통점은 '전기물' 혹은 '역사물'이라는 점이다. 공의경계에서 '신전기'라는 이름으로 이름붙였듯이, 이제 가상의 전기물은 하나의 장르로서 충분히 정립되고 있다. 이는 대체역사물의 한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저자의 여러가지 이념이 깃들기 마련이다. 역사는 정치적이고, 작가 역시 사람으로서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이미 정립된 역사조차도 자신의 입맛에 따라 해석하고자 하는 여러 사람들이 자신의 학파를 만들고 있는 세상에, 대체역사물이 그러지 못하리란 법은 당연히 없다. 안타깝게도, 대체역사물은 정치 그 자체다. <백년법>이라는 하나의 정치드라마에서 워낙 심하게 데여본 탓에, 이 작품에 대한 평가도 일단은 뒤로 미뤄둘 수 밖에 없겠다.

 

   나는 유럽의 역사나 신화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인터넷에서 여기저기를 참고해보고, 저자후기를 살펴보니 대충 페르시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는 모양이다. 사실 나는 페르시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저자의 말로는 침략해오는 이들이 우리에게 유명한 십자군이며, 그것을 막아내는 이들이 바로 우리가 흔히 배웠던 이교도들이라고 하니, 조금은 역사를 뒤집어볼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

   아직까지는 전형적인 소설이다. 대부분의 전기물이나 역사물은 앞서 말했듯이 정치적인 색깔이 짙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메시지를 품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1권까지의 아르슬란 전기는 파르스가 지나치게 압제적인 정권이었으며, 이것이 루시타니아인들에 의해 무너지는 것은 오히려 권선징악적인 측면도 강하다. 왕이었던 안드라고라스 3세가 충직한 무장인 다륜을 자리에서 쫓아내는 장면에서 이미 예고된 모습이었다. 아마도 그렇게 다륜을 쫓아내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이러한 파르스가 무너지는 모습의 전조를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는 배치일 것이다. 한편 이것은 새로운 왕위를 추구하는 아르슬란의 행동에 의도치않은 정당성까지도 부여하고 있다.

 

#3.

   찾아보니 이후로도 그럴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 소설의 긴장감은 크지 않다. 긴장감이라기보다는 통쾌함이 훨씬 더 크다. 주인공인 아르슬란을 비롯하여 다륜이나 나르사스는 모두 먼치킨적인 인물이다. 절대 지지 않고, 뛰어난 무술과 지략, 냉엄한 판단력, 거기에 붙여 주인공 보정에 가까운 운까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인물설정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명제를 되새기게 하는데, 생각해보면 역사는 결국 승자가 이긴 좋은 이야기, 승리한 이야기로 점철되기 마련이고 비극적인 패전이나 장수의 죽음은 천인공노할 것, 분노와 탄식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이 소설 속에서도 딱 마찬가지라, 전반적으로 역사책을 보는듯한 느낌도 든다.

 

   즉, 장르가 소설의 치명적인 단점을 어느정도 정당화시켜준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역사책이라는 컨셉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라고 고려해봄직한 것이다. 동시에, 역사체 특유의 말투를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파르스력 몇년, 어떤 일이 일어나다. 형식의 문장) 이 책은 가상이기는 하지만 하나의 역사서이며, 이 이야기들은 모두 역사의 한 장면임을 지속적으로 어필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이야기에 빠져들면서도, 묘하게 다시 그 이야기의 밖으로 밀려난다. 즉, 주인공과 완전히 하나가 되지 못하고, 시간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힌, 역사책 특유의 단절과 '거리두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이러한 전기물이나 역사물 특유의 장르적 특성으로서 그 색채를 더욱 강화시켜주고 있다.

 

#4.

   십이국기와 비슷한듯 다른 소설이다. 동양적인 색채가 강하고, 비일상적이고 판타지적 요소가 짙었던 십이국기와 달리, 아르슬란 전기는 서구적인 색채가 강하며, 십이국기에 비해 미신적이거나 판타지적인 요소를 거의 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그리하여 아르슬란 전기는 십이국기에 비해 비교적 사실성을 더 많이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아르슬란 전기는 서구의 역사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십이국기는 우리에게 친숙한 배경이었던 점과 대조된다. 즉, 사실성을 확보하면서 우리에게는 또 한 번의 '거리두기'가 일어나는 셈이다.

 

   한편 십이국기보다는 훨씬 더 소설다운 소설이다. 십이국기를 보면서 가장 경탄스러웠던 점이라면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세밀하게 짜여진 설정들이었다. 거의 가상의 한 나라를 그려낸 것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에 비해 '아르슬란 전기'는 그러한 부분은 소설답게 적당히 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만기장의 자리는 만들어두었지만, 그 만기장 아래의 구조나 등용절차, 나라의 전반적인 통치구조에 대해서는 일절의 설명이 없다. 이러한 점은 십이국기에 비해 역사물로서의 색깔은 비교적 더 옅음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르슬란 전기는 십이국기 시리즈에 비해 훨씬 더 서사에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고, 이는 한 권 한 권 끊어지는 구조가 아니다보니 읽어나가다보면 더욱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5.

   너무 전형적인 이야기라 아직은 내용에 대해 이야기할만한게 없다. 그간의 건국신화나 영웅담 등으로 보건대 지금의 단계는 '조력자와의 만남' 정도 일 것이다. 주인공은 아르슬란은 훌륭한 조력자 다섯을 얻었다. 이제 여섯 명이 되었고, 이들은 망국인 '파르스'를 재건하기 위해 이제 여정을 떠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인 '왕도의 불길(왕도염상)'은 적절하다. 1권은 말 그대로 망국기이다. 아르슬란 일행의 여정의 시작이다. 이야기는 이제부터인 것이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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