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 솔로몬의 위증2

1.

   책이 생각보다 두껍고 호흡이 길다. 재미는 있고 잘 따라가고는 있는데 내 독서에 대한 열의와 집중력이 많이 바닥난 느낌이다. 아무리 두꺼운 책이라고, 아무리 바쁘다고 이 책 한 권을 잡고 2주를 고군분투하게 될 줄은 몰랐다. 뭔가 책을 읽는게 예전같지 않다. 예전에는 책을 읽고 싶어서 읽었는데 점점 책을 읽고 싶어서 읽는다기 보다는 읽어야할 것 같아서 읽는 것 같다. 나는 과연 올바른 독서를 하고 있는가.


   물론 책 자체도. 책은 흥미진진하고 충분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풀어놓는데 그 가운데 미묘한 담담함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담담함 때문일까, 아니면 왜일까. 일단 한 번 손에 잡으면 오래 잡고 있을 수 있지만 자연스러벡 손이 가는 것 같은 느낌은 조금 덜하다. 그래서 더더욱 진도를 못나가겠는 책이기도 하다.


2.

   법조인을 꿈꾸고 있는 나에게 이번 책에서 주인고읃링 보여준 '교내 재판'의 모습은 굉장히 흥미롭다. 한 명의 검사, 검찰사무관, 변호인 등이 되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묘하게도 짠한 느낌을 주지만, 동시에 그들의 열의가 부럽기만 하다. 나는 지금까지 매일같이 법조 법조 하면서 도대체 무엇을 해보았던가. 경험의 전무함에 직면하니 또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소설 속에서처럼 진짜 사건을 바탕으로 하지는 않겠지만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모의법정과 같은 것을 적극적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법에 대해서 아는 건 없지만 적어도 법이 멀고 어려운 것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단순히 법정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물론 일본에서도 이런 광경이 흔하거나 보편적인 광경은 아니겠으나 적어도 우리나라만큼 천편일률적이고 입시의, 입시를 위한, 입시에 의한 학교이지는 않지 않을까. 


3.

   자, 이런 나의 개인적인 넋두리는 저 멀리 치워두고. 2권은 학생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재판이라는 형태를 취했다. 다른 여타의 미스터리 소설처럼 갑자기 천재적인 탐정역할을 하는 학생을 툭 던져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어른의 관점에서 그 문제를 밟아나가는 것도 아니다. 탐정역할은 아니지만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누군가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끊임없이 제공하고 결국 해결해내는 그런 눈물겨운 이야기도 아니다. 물론 나름의 통찰력을 가지고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계속해서 제공한다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이 소설은 '추리'가 아닌 '재판'이라는 형태를 끌고 들어왔다.


   독자들은 '재판 속의' 범인이 누군지는 안다. 그러나 진짜 범인은 알 수가 없다. 스포일러를 당한듯 당하지 않은듯, 결말을 아는듯 알지 못하는듯한 상황이 계속된다. 1권에서의 논점이었던 '누가 죽인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죽은 것인가?'하는 문제는 이미 저 멀리로 치워진지 오래다. 2권에서는 과연 범인이 슌지인가 아닌가에 주목한다. 거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시선이 묻어난다. 어떻게든 재판 진행을 막아보려는 학교, 문제아인 슌지에 대한 우려와 동정 섞인 다양한 시선들, 피해자였지만 동시에 가해자가 되었고 반쯤은 그런 취급을 받고 있는 미야케 주리에 대한 시선까지. 이 소설은 소름끼칠 정도로 학교 안에서 '학생들 사이의 생태계'를 정확하게, 잘 캐치해냈다. 전형적이다. 불량함으로 가득찬 학생은 자기보다 약한 아이를 괴롭힌다. 공부를 어느 정도 하는 학생들은 그 지경까지 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괴롭힘당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안도한다. 나는 저 위치에 있지 않아서 다행이야.


4.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읽으면서 항상 하는 느낌이지만 이 책은 작가가 앞장서서 스포일러를 못해 안달이 난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대충의 사건의 흐름을 어렴풋이나마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끔은 대놓고 뒷내용을 끌고 들어온다. 가끔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나쁘지 않다. 


5.

   학교 속에서,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필터를 통해서 우리의 앞에서 펼쳐니는 학교는 굉장히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그리고 실제로도 저런 학교가 많을 것이다. 저번의 서평에서도 말했지만 학교는 그런 조직이니까. 그런 성향은 1권에서도 충분히 강했지만 2권은 1권의 배 이상이다. 2권 속에서 다카기 선생을 비롯한 몇몇 교사들에게 학교는 이미 하나의 조직이나 학교를 넘어서 지켜야할 가치, 윤리, 규범 그 자체가 되어있는 것만 같다. 저자도 그렇고 객관적으로 봐도 그렇지만 그런 교사의 모습은 한심하기 그지없으며, 철밥통 공무원의 그것과 별반 다를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실제로 경험했던 학교가 저 지경까지는 아니었고 좋은 스승도 몇 번이나 만났기 때문에, 그리고 그 외에 다양한 사유 때문에 그러한 묘사에는 일단 거부감이 든다. 학교가 꼭 저런 곳인 것은 아닌데. 단순히 사건의 배경이고 설정일 뿐인데도 그런 심정이 드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


6.

   겐이치가 안쓰럽다. 뭔가 나의 열화된 마이너 버전인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보고 있자면 자랑스럽기도, 짠하기도, 매력적이기도, 한심하기도 한 미묘한 캐릭터다. 전편에서 내가 이제는 더이상 주인공의 궤도에 있지 않다, 라고 평가했는데 그 말은 철회해야할 것 같다. 그는 분명한 주인공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페르소나마냥 감정이입하여 읽을 수 있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신비주의로 가득찬 간바라나 완벽한 엘리트라고 불러야할 료코보다는 적어도 이 쪽이 훨씬 더 공감가지 않겠어?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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