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시연, 흐리거나 비 아니면 호우(1권)




1.

 반시연 작가의 흐리거나 비 아니면 호우(이하 '흐리호우')를 다 읽었다. 웃기게도 2권부터 읽고나서 1권을 읽었다. 그 비하인드 스토리는 2권 서평에도 썼지만... 도서관에 2권 밖에 없어서... 사실 저게 2권인지 다 알고 먼저 읽었다. 그 책을 도서관에 신청한 사람이 나이기도 하고, 북새통 문고에서 이미 몇 번 보고 들었다 놨다 했던 작품이기도 하고. 덕심을 메인으로 타겟팅한 것 같은 여타의 라이트노블과 다르게, 노블엔진은 비교적 작품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아니, 그렇다고 해서 다른 소설들이 작품성이 나쁘다거나, 노블엔진의 작품이 무조건적으로 작품성이 좋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아니고. 왠지 이미지가 그렇다는 거다. 그래서 그 레이블을 달고 나오는 소설들도 이미지가 좋다. 이 소설도 비슷했다.


 사실 이야기나 작가, 시리즈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2권 서평에서 신나게 했으니 이만 접어두기로 하고.


2.

 흐리호우 하면 호우의 추론. 호우의 추론 하면 흐리호우다. 2권을 먼저 읽고 1권을 읽었는데, 2권 서평에서 찝찝했다고 했던 부분들이 많이 해소됐다. 역시 누가 뭐라고해도 이야기는 앞에서부터, 천천히 읽어야한다니까..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느꼈다. 그래도 뭔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렇게보니 뭐랄까 2권이 메인스토리인 것 같고 1권은 프리퀄을 읽는듯한 기분이라고나 할까. 특히나 2권의 본격적인 배경이 헤브닝이고, 1권은 사실상 그 헤브닝이 어떻게 성립되었는가에 관한 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해서 더더욱 그렇다. 2권을 먼저 읽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1권의 이야기는 애초에 처음부터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느낌이다. 뭐랄까, 이야기의 큰 틀에서 결이 약하다고 해야할까.


 하지만 그래도 프리퀄을 원한다. 어디에선가 이 소설의 1권은 느와르를 가장한 연애물이지만 2권은 조금 더 하드보일드한 느낌이 강하다고 했는데, 사실 2권을 먼저 읽으면서 이게 본격 하드보일드라고 평가될 정도면 1권은 얼마나... 싶었다. 실제로 읽어보니 1권은 정말로 연애물에 가깝다. 그다지 하드보일드한 이야기가 없다. 사실 읽는 재미라고 한다면 2권이 더 좋았다. 그래서 1권이 더 외전같이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고. 어쨌든 그래도 프리퀄을 원한다는건, 사실 비이가 어떻고 사야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는 다 좋은데, 그래도 나는 그것보다는 호우의 셔터시절 이야기가 보고 싶다는 거다. 소설의 그는 그 시절의 기억을 지우겠다고 그렇게나 아둥바둥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더 보고 싶은 이야기가 셔터 시절의 호우다.


3.

 어쨌든 1권을 통해서 비이, 사야, 고지, 그리고 호우 사이의 관계가 명확하게 그려졌다. 2권을 먼저 읽어서는 도대체 그 관계를 종잡을 수가 없다. 1권을 통해서 관계가 그려지고나니 좀 개운한 느낌. 저자가 2권 후기에서 사야는 마치 살아 숨쉬는듯한 캐릭터다, 비이는 한 장면 한 장면이 까다로운 캐릭터다라고 평가했는데, 실제로 그런 모습이 소설 속에서도 드러난다. 사야는 활달하고, 비이는 까다롭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2권의 그것에 비하면 1권의 것은 애들 장난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 정도? 


 1권에서 비이의 모습은 (아마 많지는 않겠지만) 2권을 먼저 접해서 2권의 비이만을 아는 사람이라면 상상하기 어렵다. 특히 편의점 알바 시절의 그녀는 완전 딴판이라는 느낌이 강하니까. 흐리호우의 캐릭터들은 대개 그런 면이 있다. 틀에 박힌 캐릭터에서 살짝 벗어나있다고 해야할까? 냉정하고 차분할 것 같은 캐릭터가 뜬금없이 따뜻하고, 뜬금없이 흥분하고. 물론 나쁘게 보자면 개연성도 일관성도 없다고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말할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점들이 톡톡 튀는 매력이 있는 캐릭터들을 살아 숨쉬는 것 같은, 왠지 우리 주변에 한 명쯤 있을 것 같은 캐릭터로 만들어준다. 


4. 

 2권과 주제가 비슷한데, 결국 1권은 셔터로서의 자신을 잃어버린 호우가 헤매다가 헤브닝에까지 흘러들어가게되는 이야기다. 셔터 시절의 이야기가 많이 나올 줄 알았는데 셔터 시절은 2권에서처럼 회상으로 몇 장면만 그려질 뿐이다. 1권에서 이미 그는 셔터로서의 자기 자신을 버린 이후다. 그것도 자기 자신의 손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상태로 완전히 망가지고 고장나서 방에 틀어박힌 채로 폐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그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헤브닝에 들어가게 된다는 게 1권, 그리고 그 정체성을 확실히 하고 헤브닝이냐 셔터냐의 기로에서 스스로 헤브닝을 택하는 게 2권의 주된 내용이라 할 것이다. 2권 서평에서도 평했듯이 별반 다를 바 없는, 진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로울 것도 없는 주제다.


 물론 읽으면서도 굳이 셔터시절의 자기 자신을 부정할 필요까지야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사실 2권을 읽으면서는 뭔가 엄청난 사건에 휘말려서 재기 불가능해진 줄 알았는데 1권에서의 묘사를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사실은 결정적인 의뢰를 실패했고, 그게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의 의뢰였으며 그래서 더더욱 큰 상처를 입었다...라는 납득가능한 이유가 만들어지긴 하지만, 1권과 2권을 마친 지금에도 그게 도대체 어떤 사건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셔터 시절의 자신과 헤브닝에 있는 자기 자신의 대립은 2권에서 끝을 내리지는 않을 모양이다. 그 많은 사건들을 하나도 풀어내지 않고 2권을 마쳤으니 다음 권에서는 거기에 대해서 무언가 풀어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5.

 3권을 예고한 모양인데, 어쨌든 기대가 된다. 다 덮어놓고 이것만큼은 명작이다!! 할 정도의 작품은 아니지만 그래도 믿고 우직하게 볼 수 있는 작품. 특히나 1권에 비하여 2권이 너무 좋아서, 점점 더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용도 그렇고, 글 자체도 그렇고, 호우의 추론도 그렇다. 등장 인물과 작가가 함께 성장하는 것 같은 작품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 작품은 매력적이다. 노블엔진이라는 레이블은 그래서 미묘한 부분이 많다. 인터넷에서의 반응을 보고 너무 기대를 하면 생각보다 실망스럽다. 왠지는 모르겠지만(아마 내 취향과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는 탓이 크겠으나) 노블엔진은 내 개인적인 평가보다 인터넷의 평가가 더 좋은 것 같다. 그렇지만 그만큼이나 다들 기본적인 수준은 되는 작품들이라 믿고 고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인생의 명작은 못만나지만 항상 만나는 작품마다 수작인 것은 분명하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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