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 <버티는 삶에 관하여>

1. 

 그의 텀블러의 제목. 글쓰는 허지웅입니다. 그 허지웅의 에세이. 솔직히 말해서 허지웅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그래서 오히려 더 책을 책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 않나 싶다. 솔직히 곳곳에서 허지웅에 대해 쓴소리를 늘어놓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니, '늘어놓는'이라고 말하니까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 같은데 뭐 딱히 그런건 아니고(허지웅을 내가 그렇게 엄청나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저런 평가 때문에 읽기를 꺼리다가 이번에 읽게 된 건데 생각보다 책은 훨씬 괜찮았다는 이야기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

저자
허지웅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09-26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글쓰는 허지웅""의 에세이""마음속에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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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몇몇 인상깊었던 글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글쓰는 허지웅입니다'였다. 솔직히 말해서 그가 과연 얼마나 글에 대한 애착이 강한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비꼬는게 아니고 진짜로 모르겠다) 어쨌든 괜찮은 말이다. 글쓰는 사람입니다. 사실 그 글에도 방송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글쓰는 사람이라는 데에 대한 자부감같은 게 이리저리 뒤섞여있어 뒤에 말할 '허세'의 한 종류로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에게도 그런 '허세'가 있다. 나 글쓰는 사람인데, 나 글쟁인데 하는. 그렇다고 그렇게 대놓고 말할 정도로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면서.


 내가 한동안 그렇게 말했던게 있지 않았나. "글로 돌아가다"라고. 유시민 씨의 책에 나오는 말이다. 이 글도 결국 비슷한 종류의 것이다. 얼핏 보면 글스는 사람들에겐 항상 글에 대한 자부심, 또는 글쓰는 사람임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그런 자부심이야말로 이들을 좋은 작가, 좋은 집필가로 이끄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왠지 모르게 나도 그 비슷한 종류의 것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자신있게 글쓰는 사람입니다, 라고 나 자신을 소개할 수 있을까. 단 한 번도 글쓰는 것을 내 천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다. 글쓰는건 언제나 좋았지만 단 한 번도 꿈이었던 적은 없다. 그러나 그런 것과는 별개로 유난히 요즈음은 글이 고프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이 에세이는 또 새로운 청량감을 준다. 뭔가 자극해주는, 그런 느낌이다.


3.

 개인적으로 글을 읽을 때 글 자체가 아닌 글쓴이를 대입해서 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도 사람이 사람이다보니 작가에 대해서 찾아보고 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감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분명하다. 예컨대 작가가 나쁜 놈이면 나도 좀 그렇고, 작가가 좋은 사람이면 나도 기분좋게 그 책을 마무리할 수 있고. 그런 느낌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책은, 정말로 내가 허지웅을 잘 몰라서 더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책이 아닐까 싶다.


 허세웅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의 글 곳곳에서는 허세가 묻어난다. 그것은 세간의 평가를 보지 않더라도 이미 내가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글쓰는 사람이라며 뭔가 올려놓는 거소가 동시에 자신의 유명세를 즐기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는 천직이 글쓰는 사람이고 방송은 어디까지나 부, 라고 말하고 있지만 내 눈에는 오히려 방송인으로서의 모습이 주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었다. 실제로 그렇지 않을까하는 생각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것도 나쁘지 않았다. 글에 묻어나는 허세는 나쁘지 않다. 물론 세간의 평가에서 말하는 허세는 방송에서의 허세를 말하는 것일 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단 한번도 봐본 적이 없다. 그가 출연한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인터넷을 달궜고 많은 사람들이 그에 열광했지만, 왠지 모르게 단 한 번도 봐본 적이 없다. 그래서 평상시 그의 모습은 모르겠고, 어쨌든 그의 책은 꽤나 매력적이었다.


4.

 어쨌든 글쓰는 실력은 누가 뭐라고 흠잡을 데 없다. 제목만 봐도 기가막히게 뽑아내지 않았나. "버티는 삶에 관하여"라니. 그런 의미에서 그의 천직이 글쟁이라는 데에는 확실히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사상이 어떻고 성향이 어떻고 사람이 어떻고를 떠나서, 분하든 그렇지 않든 좋든 나쁘든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간에 그의 글은 일품이다. 그만의 색이 묻어나면서도 잘 읽힌다. 솔직히 에세이치고 이렇게 잘 읽히는 종류의 것도 흔치 않으리라. 그의 글은, 적어도 글을 잘 모르는 내게는 적당한 호흡, 적당한 문장 그 자체였다. 오랜만에 글을 읽으면서 와, 글 진짜 잘쓰네, 하는 생각을 했다. 내용은 조금 별개의 문제겠지만.


 제목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어쨌든 이 책의 시작과 끝이 버티는 삶에 관한 이야긴데 에세이들의 전체적인 주제가 버티는 삶을 관통하고 있느냐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사실 기막히게 잘 뽑은 제목이라고 평가하기는 했지만 이 책 전체가 버티는 삶만을 다뤘다면 그건 또 얼마나 힘든 에세이가 됐으려나 싶기도 하다. 어찌됐든 이 제목은 그의 글솜씨와 만나서,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도 머릿속에 깨나 오래 남아있는 말이 된다. 여러분, 버팁시다. 버티다, 라는 단어에 그런 매력이 있는지는 또 몰랐지.


5. 

 여느 에세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이 에세이도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도, 고개를 절로 끄덕거리게 되는 내용도 많았다. 후술하겠으나 이 에세이는 여타의 에세이들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모습과 사상을 조금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그래. 툭 터놓고 말해서 이 에세이는 그의 정치적 성향부터 시작해서 영화적 취향과 그의 인생사를 아우르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건 어떤 에세이를 읽어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김동영의 <너도 떠나보면 알게 될거야>를 읽으면서 나는 그의 조금은 지나치게 프리한 마인드에 굉장히 불편했다. 그의 아무것도 숨기지 않으려고 하는 자유분방함이 오히려 나를 불편하게 만든 결과였달까. 그래서 오히려 에세이 속의 허지웅은 정당화되고 긍정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동의하지 못하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그래 이건 한 사람의 에세이야..라고 생각하면 용서되는 부분이 많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고나서도 허지웅이라는 사람이 그다지 싫어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좋아졌다고 해야되려나.


6. 

 책은 잡동사니 에세이다. 앞에서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늘어놓고, 중간부터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 소위 '정치적 테이스트'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더니,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다시 자신의 직함대로 영화 이야기를 한다. 나는 솔직히 영화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소양이 있는게 아니니 그가 쓰는 글들이 얼마나 옳은 소리고 얼마나 제대로 된 평론인지는 잘 모르겠다(인터넷에서 보니 그는 영화 평론가도 아니라는 글이 있길래). 이렇듯 세 권으로 나눠도 될만큼의 다양한 주제를 한 에세이에 담았다. 한마디로 허지웅의 글 총집합전이다. 뭐라고 해야할까.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에서처럼 잡문집이라는 느낌. 물론 그게 싫지는 않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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