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지 오브 투모로우



얼마전에 리뷰했던 사쿠라자카 히로시의 <All you need is kill>의 영화판이다. 물론 본격 SF 장르적인 면도 많았지만 동시에 라이트노블의 여러가지 특징들(예컨대 대표적으로 보이밋걸!)도 많아서 이걸 어떻게 영화화하려나 하는 생각도 컸다. 물론 일본에서의 영화화였다면 그 모든 특징을 살렸겠지만 이번 영화화는 할리우드에서 진행된 것이라서. 


결과물만 놓고 보자면 원작에서 아이디어와 주인공의 이름, 기본 설정만을 빌린, 거의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완벽하게 캐릭터가 일치하는 등장인물은 하나도 없으며, 당연히 배경도 일본군에서 미국군으로 바뀌었고 그에 맞춰서 거의 모든 설정이 바뀌었다. 심지어 줄거리도 거의 완전히 바뀌었으니 이 정도면 거의 '재해석'이라고 부를만하다. 



앞서 말했듯이 영화는 원작과 거의 다른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새로운 흐름을 타고 가기 때문에 차이점을 찾으면서 보는 재미도 있었다. 예컨대 '기타이'라는 이름은 '미믹'이라고 바뀌었고, 복잡한 설정은 대부분 걷어냈다. 2시간짜리 영화에 담을 수 있을만큼의 직관적인 최소한의 설정만을 남겼다. 스토리라인도 그런 면에서 굉장히 단순화됐다. 철저하게 루프를 빠져나가기 위한 진행에만 주목했고, 그 외에 주인공이 겪는 혼란 등을 표현하기 위해 장치되있었던 요소 대부분은 없어졌다. 타임루프와 관련된 복잡한 설정, '뇌에 변화가 생기게 되는 것'이라는 조금은 무리수적인(?) 설정 등도 대부분 납득할 수 있고 간단한 종류로 뜯어고쳐졌다. 주변 인물들도 굉장히 간략화되어 케이지와 리타를 제외한 나머지는 거의 부각되지 않는다.


한편 리타의 능력 또는 모습이 소설과는 꽤 많은 차이를 보이는데, 결정적으로 영화에서는 루프를 통해서 어떻게 어떻게 한 번 승리를 경험해봤을 뿐 그다지 최강자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 캐릭터인 반면에 소설 속에서의 리타는 말 그대로 먼치킨 적인 존재이다. 이런 배경에서 상대적으로 리타와 케이지 사이의 실력차이가 줄어든 것으로 묘사되었고 그만큼 둘의 관계가 비교적 수평적이 되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한편 소녀로 설정되었던 소설 속의 리타는 어쩔 수 없이 기계적으로 전쟁을 반복한다는 느낌이 강했다면, 영화 속의 리타는 비록 더 약해졌을지언정 오히려 '전투광'적인 면을 보여준다. 물론 좋아서 미치는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뛰어드는, 일종의 집착과 의무감 사이라고 하는게 맞겠지만.


한편 결말도 완전히 뒤집어졌는데, 왠일인지는 모르지만 결국 타임루프는 한 번 더(마지막일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발생한다. 그 결과 케이지가 최초로 파견가게 되는 장면으로 되돌아가 장교의 신분을 유지한 채 리타와 다시 만나게되는데, 나름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리타가 죽어야만 했던 원작과 달리 리타와 케이지를 모두 살렸으니까. 사실 그런 면은 타임루프를 벗어나게 되는 과정에서도 드러나는데, 원작소설이 결국 서로 싸워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한다는 전개에서 리타가 심하게 다쳤지만 다시 루프할 수 없어서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결론적으로는 같지만 훨씬 덜 비극적인 전개로 바뀐 것이다. 풋풋한 장면은 많이 없어졌을지언정 제작자가 리타와 케이지라는 캐릭터에 대한 애착은 꽤나 있었던 모양이다.



원작의 경우 라이트노벨이었던만큼 보이밋걸적인 면이 많았다. 즉 결국 리타X케이지 구도의 보이밋걸과 루프를 빱져나가기 위한 사투를 동시에 그려냈고 그 과정에서 풋풋한 장면도 많았다. 기본적으로 리타와 케이지가 어린 소년소녀로 그려지는 것도 거기에 일조하는 바이고. 반면에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그런 청소년학대(..)스러운 설정을 버리고, 케이지를 원래 장교 출신으로 바꾸고 나이대를 위로 끌어올렸다. 케이지의 경우 원래 그렇게 전투에 능한편은 아니더라도 '비겁하다'는 느낌은 주지 않았는데, (조작된 거긴 하지만) '탈영병'이란 설정을 붙임으로써 동료들에게 비겁자, 애송이 취급을 받는 위치에 놓이게 됐다. 


그 과정에서 앞서 말했던 풋풋한 장면들은 대부분 없어졌다. 식후에는 무료로 차를 준다, 라는, 타임루프 사이에서 어긋난 케이지와 리타를 연결해주는 대사도 당연히 그와 함께 사라졌다. 그보다 영화가 흘러가는 과정에서 로즈라는 리타의 중간명(미들네임)이 나오는데 이걸 '차'처럼 키워드로 삼았어도 괜찮았을걸...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 조금 더 여운이 있지 않았을까.



이상이 소설과 함께 본 <엣오투>였고, 이하 영화만 보자면, 역시 괜찮은 수작이다. 엄청난 대작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솔직히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다) 보는 내내 즐거웠던, 흡인력있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영화는 원작을 훌륭하게 재해석해냈다. 풋풋한 장면들이 많이 썰려나간 것은 아쉽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작소설을 그대로 영화에 담으려고 했다면 120분의 스크린으로는 역부족이었음은 물론이고 실망스런 작품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복잡한 설정에 기대고 있어 다 담기엔 영화가 아니라 모큐멘터리처럼 되어버릴게 뻔하고, 안 담자니 개연성이 떨어지지 않겠는가. 


물론 원작소설을 보고 보이밋걸 적인 장면을 기대한다면(내가 그랬다) 조금 아쉬울 수는 있겠지만, 영화에서는 또 영화에서만의 느낌으로 풋풋한 러브라인을 그려나가고 있으니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괜찮지 않은가. <All you need is kill>의 흥미로운 설정과 캐릭터들을 적절한 해석을 통해 그려낸 훌륭한 영화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으리라고 본다. 요약하자면 초대박은 아니지만 굉장한 수작. 별로 치자면 4개~4개반 정도.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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