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기간



가끔 그런 때가 있다. 나에게 딱히 별다른 일이 생긴건 아닌데, 끓어오르는 아싸 기질을 참지 못하고 세상과의 단절을 추구하게 되는 때. 조금은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사람들과의 접촉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이런 '은둔욕'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친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점점 더 친해져갈 수록 나는 안쪽 깊은 곳에서 조금씩 지쳐가고 있다...라는 느낌으로. 어쩌면 일종의 '수용량'같은 개념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인싸'처럼 지낼 수 있는 시기와 용량에는 제한이 있고, 그걸 넘는 순간 나는 그런 은둔욕을 폭발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니까 굉장히 어두침침한 것 같은데.. 내가 이런 은둔욕을 본격적으로 느끼기 시작한건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단 순간부터였다. 지금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대학교 1학년 1학기, 신입생으로서 맞이한 대학의 새로운 인간관계는 나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과에서는 거의 철저하게 아싸가 됐다. 사실 나는 이미 한 학기 이후의 군입대를 준비하고 있었고, '과'는 나에게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규모와 무관하게 과는 동아리나 다른 단위 들에 비해서 훨씬 적응하기도, 어우러지기도 쉽지 않은 곳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1학기는 아니었다. 어쨌든 과에서는 아싸가 되었고 반은 자의적, 반은 타의적 아싸로 과를 완전히 등지다시피 했다. 실제로 많은 과행사와 동아리행사가 겹치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행사도 동아리를 핑계로 피하기도 했다. 그 때는 내 나름의 치기어린 반항 비슷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렇게 과를 떠났고, 나는 3월부터 이미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건대, 지금도 이름만은 몸을 담고 있고 복학한 이후에도 돌아갈 동아리이긴 하지만, 우리 동아리 사정이 썩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동아리보다 뭐랄까... 훨씬 더 '생활'같은 동아리였다. 뭔가 시끌벅적하게 모여서 노는걸 좋아하기는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건대 우리 동아리는 그런 동아리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고학번 위주의 동아리이기도 했고.


각설하고, 말은 그렇게 하더라도 동아리에 적응해서 꽤 재밌게 잘 지냈다. 그러다 중간고사를 봤다. 아마 그 때쯤부터 생각이 복잡해졌던 것 같다. 별로 큰 사건은 아니고 사실 다른 사람은 '사건'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아주 사소한 일로도 힘들어하던 때였다(이렇게 말하니 굉장히 옛날 이야기를 하는 것 같군). 그 때쯤 한 1주일? 몸을 숨겼다. 수업만 끝나면 집에 바로 들어가는 생활도 해봤고. 뭐 그 이후는 별다른 일 없이 다시 동아리에 돌아왔고, 깨진 멘탈을 잘 수습하며 잘 지냈다.


아마 일종의 그런 거다. '수용량'을 넘어서버려서, 조금은 지쳐서, 스스로에게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그 때는 왠지 '혼자'라는 것이 싫을 때였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에는 지쳐버린,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에 부딪혀 나는 아예 문을 닫고 숨어버린 것이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그건 단순히 인간관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나는 그다지 성실한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1분 1초의 시간을 낭비하는데 큰 죄책감을 느끼는 편이라(아마 공부하던 때의 습관인가보다) 의외로 빠듯한 일정(물론 구체적인건 아니고 머릿속으로)을 짠다. 그런 식으로 몇 개월을 산다. 그건 어느 때도 변함이 없다. 고등학생, 재수생, 대학생, 군인. 항상 내 시간표는 뭔가 빠듯했다. 그런 상황이,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모종의 '고갈'과 결합되면 은둔에 빠지는 셈이다.


은둔에 빠지면 거의 모든 연락을 끊어버리곤 했다. 카톡도 안하고, 페이스북도 안하고, 그냥 조용히, 어떻게 보면 '나 자신에 파묻혀서' 지내는 1주일여의 시간. 그렇게 가바직 모든 연락을 끊어버리고, 소위 말하는 '잠수'를 타는 것이 결코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런 1주일여의 '은둔기'는 의외로 담담하지만 즐거운 기억들이다. 그리고 요즘 슬슬 지치고 힘든데, 한 번쯤 브레이크를 걸어줘야하는 때가 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즉, 이렇게, 나 스스로가 그 기간을 기다리게 되는 일이 있을 정도로, 그 시간은 결코 어두운 색으로 칠해져야할 시간이나 기억이 아닌 셈이다.


그렇지만... 이게 일종의 습관이랄까, 심리랄까, 뭐 그런건데. 옆에서 보기에는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는 습관이고(내 주변에 비슷한 사람이 있어서 나도 잘 안다.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결정적으로 '규칙적인' 생활이 만든 부작용인 주제에 그 '규칙적인' 생활에 의해서 구제되곤 했다. 의외로 이 습관에서 강제로 끄집어내진 것도 학교의 수업이라는 규칙적인 생활의 강요였고, 이 습관에 자주 빠져들지 않게 되었을 때는 군인으로서 모든 연락을 두절하고 숨어들 수 없는 때였다. 누누히 말하지만 계(戒)의 사람인 나는, 그런 규칙을 쉽게 져버릴 수 없으니까.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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