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1. 책 디자인은 정말 <국가란 무엇인가>를 쏙 빼닮았다. 느낌도 비슷하다. 무엇인가, 살 것인가. 어, 나만 비슷한가. 새삼 적고 나니 별로 안 비슷한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어쨌든 다시 글쓰기로 돌아가 지식소매상 역할이나 하겠다는 유시민 씨의, 자기 인생 이야기를 닮은 책이 나왔다. 오히려 이 책은 지식소매상이 되겠다는 포부는 잔뜩 밝혔지만 지식소매상답지 않은 책이었다. 그래서 더 가볍게 읽을 수 있기도 했고. 예컨대 내가 재수 끝나고 논술공부할 즈음 통원 지하철에서 보던 <국가란 무엇인가>는 이 책보다 훨씬 지식전달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게 뚜렷했던 책이었고, 그만큼 어려웠다.


2.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그냥 자기 이야기를 담담하게 묶어낸 책은 아니다. 어쨌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무언가를 던지고자 하는 책인건 분명하다. 에세이와 지식소매, 그 경계선상 쯤에 있다고나 할까. 내용은 어떻게 살 것인가, 를 메인 테마로 하고 있지만, 그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 속에는 동시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분명히 담겨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솔직히 말하면 딱히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다. 죽음이란건 그만큼이나 실감하기 어려운 거니까. 저자가 책 속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20대란 나이는 결코 죽음을 실감할 수 있을만한 나이가 아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평화롭고 평범하게 자라난 20대에게는 말이지. 책의 표지처럼, 정말로 이 책을 다 읽고 어떻게 살지 정답을 구할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길잡이는 되어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할지, 고민할 기회를 만들어주는건 분명하다.


3. 한가지 인상깊은 점은, 유시민 씨의 책 치고는 그의 정치성향이 매우 적나라하게 드러난 책이라는 거다. 그간 에둘러서 표현하거나 중립적인 자세를 견지(또는 견지하는 '척')했던 저자의 다른 책들과 달리, 이번엔 대놓고 자신의 진보적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을 확실하게 선을 긋고 이야기한다. 그가 서론에서 밝히기를, 드디어 "정치적 자기검열"을 하지 않게 되었다고. 좋은 일이다. 중립적인 글이 가지는 양면성이라는게 있으니까. 중립적이라는건, 어쨌든 자기가 이야기하고 싶은 걸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즉 스스로 검열해서 잘라내버린 부분이 존재한다는걸 의미한다는 소리니까.


아, 물론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던 수많은 책에서, 다만 성향을 드러내야할 필요성이 있는 대목에서 그랬다는거지 대부분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 자체가 진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었으니 딱히 완벽한 중립에 있었다고 표현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겟다. 다만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는 자신의 글에 대한 책임을 분명하게 질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간 정치인으로서 그 책임을 떠안아야하기 때문에 정치적 자기검열을 해왔던 그와, 지식소매상으로 돌아간 그는 다르니까. 그런 의미에서는 조금 부럽기도 했다. 나는 그렇지 못하니까.


4. 이야기는 비교적 루즈하게, 그러나 재미있게 읽히는 편이다. 잘 쓴 글이다. 유시민, 이라는 이름은 어느새 이름만 보고 고를 수 있는 저자 중 한 명이 된 것 같다. 소설이든 아니든, 문학이든 아니든 이름만 보고 고를 수 있는 저자가 하나 둘 늘어간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기다려야할 작가가 많고, 한 편이라도 글을 더 썼으면 하는 작가가 많다는 거니까. 한 편으로는 <청춘의 독서>에서 아주 얕게나마 훔쳐볼 수 있었던 저자의 학생시절, 더 넓게는 그동안 곳곳에서 부분부분 접해왔던 저자의 인생 이야기를 조금은 더 자세히, 자기 입으로 들을 수 있었다는 점도 좋았다. 그의 정치적 평가에 대해서는 내가 왈가왈부할 것도 아니요(그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던 노무현 정권은 당시의 정치를 평가하기에 내가 너무 어렸다), 사실 평가하자면 조금은 부정적으로 평가해야할 입장인 것 같다. 그에겐 정치적 승부사의 이미지가 부족하다는 것이 사실이니까.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이미지 문제고 나보다야 훨씬 승부사인 사람이겠지만.


그렇지만 그의 인생은 왠지 흥미를 끈다. 처음 읽었던 그의 책들 속 저자소개에서, 그리고 나중에 인터넷에서, 그리고 이번에 다시 저자소개에서. 참 연결이 안되는 특이한 경력도 다 있다, 싶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영문학과 철학을 공부할 것을 권했다. 그는 법학과가 있다는 이유로 서울대 사회과학대로 진학했다. 그리고 그는 전공으로 경제학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가 뛰어든 곳은 운동권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가 한 일은 활동가(Activist)가 아니라 글에 관련된 거였다. 그러다 다시 경제를 공부하겠다고 유학. 그러다 정치판에 뛰어들고, 다시 글쓰기로 돌아왔다. 이렇게 하나 하나가 서로 연결되지 않을 수가 없다. 철학, 영문학, 법학, 경제학, 운동권, 글쓰기, 정치. 그래서 그의 삶은 더 흥미롭다. 전공과 다른 삶을 사는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 일이라는게 참 알 수 없는 일이구나 싶은 것도 사실이고.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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