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스 쉬블리, <정치학개론: 권력과 선택>

나는 세계적인 정치학자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필립스 쉬블리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정치학엔 관심이 있지만 별로 공부해본 적도 없어서 사실 20세기의 정치학자들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기껏해야 수업으로 들었던 <정치학개론>에서 주워들은 이름 몇 개 정도일까. 사실 이 책을 고른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내가 들었던 허정수 교수니므이 저이학 개론은 교수님이 OT시간 때부터 이미 일반적인 정치학 개론보다는 정치사 쪽에 초점을 맞추실 거라고 말씀하셨던 수업이었다. 실제로 매우 재밌는 수업이었고 얻는 것도 많았던 수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쉬운 점은 정치학을 전반적으로 훑지 못했다는 점이다. 엄밀히 말하면 정치학 개론이라기 보다는 정치사상 개론같은 느낌이었다. 


뭐, 결과적으로 재미도 있었고 얻는 것도 많았고 학점도 잘 받았으니 불평할 수업도 아니고 불평할 생각도 없음. 어쨌든 정치학 개론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 책을 찾아다녔다. 그래서 발견한 책이 이 책과 <정치학으로의 산책>이었다. 한 권(<정치학으로의 산책>)은 우리나라에서 널리 사용되는 개론서, 그리고 한 권은 어쨌든 역자 설명과 추천사만 그대로 옮기자면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개론서라는 모양이다. 그 중 필립스 쉬블리의 책을 먼저 읽은 것에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도서관에 빌려왔던 책 중 그게 반납기한이 좀 더 빨랐을 뿐이다. 


사실 <정치학으로의 산책>이 비교적 일반적인 단행본 모양을 갖추고 나온데 비해 이 <정치학 개론>은 교재 이름은 물론이고 편집마저도 완벽하게 전공서적의 그것을 따르고 있었다. 사실 책이라는 관점에서만 따지면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책은 아니다. 우선 원본을 보지 못했지만 책의 편집 양식이 매우 불편하다. 2단 구성으로 되어있는데, 1단 구성일 때보다 확실히 텍스트가 빽빽하게 지면을 채우고 있다. 그런 시각적인 충격만큼이나 가독성도 떨어진다. 물론 가독성의 측면은 내가 2단 구성에 익숙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그런 점에서 조금 불편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번역도 그다지 훌륭한 번역은 아니다. 오탈자도 가끔이지만 눈에 띄고, 결정적으로 번역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런 문체로 번역이 되어있다. 벼다른 다듬기 과정을 거치지 않았거나 정말 어색한 문장만 손대는 정도로 다듬은 모양인데, 덕분에 매우 미묘한 자리에 부사가 들어가는 등 읽는데 턱턱 막히는 문장이 많았다. 물론 사이 사이 보이는 역자주가 정치학 서적은 정치학을 아는 사람이 번역해야한다는 사실에 동의하게 하지만, 그래도 전문 퇴고인 정도는 두고 조금 더 부드럽게 다듬어주었으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그런 것과 철저하게 별개의 문제로, 책의 내용은 개론서로는 매우 우수하지 않나 싶다. 사실 내가 처음 본 개론서이고 내 정치학 지식 수준도 개론 수준이지만, 이 책을 보게 만들었던 결정적인 평가(정치학을 보는 눈을 조금 더 트여준다)는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사실 정치학도지만 정치학 관련 수업을 하나 밖에 안들었던 나에게는 정말로 개론과 같은 책이었다.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예컨대, 저자는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해서 '경범죄에 연루'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 실상은 도청사건 및 이에 대한 조직적인 은폐 시도의 중범죄였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내가 우리나라에 익숙해져있어서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 많았던건 사실이다. 몇 년 인터넷을 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보고 느꼈던게 "니 상식이 세계 공용의 상식은 아니에요"였는데, 확실하다. 같은 민주주의, 같은 의원내각제/대통령중심제 하에서도 서로 다른 체제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부분이 소선거구 단순다수제(SMDP)와 비례대표제 부분과 판례법과 성문법, 대통령중심제와 의원내각제 같은 부분이었다.


개중에도 판례법과 성문법의 경우는 주목할만한데, 우선 판례를 통해 법의 집행 및 해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을 일종의 '법을 만드는 행위'로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였다. 아,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확실히 나는 생각도 못했던 방향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일정부분 '법에 안어긋나는데 뭐가 잘못이냐'는 반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문제기도 했다. 우리나라를 뚜렷하게 판례법 쪽에 분류해야하는지 성문법 쪽에 분류해야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사실 내가 공부가 짧아 정확히 분류가 되지 않지만), 그동안 내가 성문법계에 가깝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 확실한 것 같다. 법은 법전 그대로 이해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


아, 빨리 군대다녀와서 정치학 수업 본격적으로 들어보고 싶다.. ㅠㅠ 그걸 달래려고 잡았던 책인데 다 읽고나니 더 심해졌다.. 그리고 계속 국제정치 쪽으로 책을 봐서 국제정치 쪽에 마음이 기울었었는데 이 책 덕에 정치학 전반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우리 학교 정치학 수업 중에 국제정치 분야가 아주 많지는 않아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가능할 것 같음! ㅋㅋ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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