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전쟁 (2010)

학교에 들어와 세미나를 이것저것 하게 된 이후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 중 하나는, 생각지도 못한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는거다. 어느 경로로 어떻게 우리 손에 들어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번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도 그렇고, 이번 <당신과 나의 전쟁>도 그렇고, DVD 곽에는 비매품이라는 표시가 선명했다. 그런 영화를 이렇게라도 접할 수 있는건, 참 다행이라는 생각. 그리고 최근들어 문득 느낀건데, 다큐멘터리라는 장르 자체를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편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더 재밌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동시에 한없이 주관적으로, 내 주장을 하기 위해서 담을 수 있는 장르도 역시 다큐멘터리라고 생각을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이 영화 <당신과 나의 전쟁>은 쌍용차 사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영화다. 쌍용차 사태가 한창이던 2009년에는, 솔직히 큰 관심이 없었다. 나에겐 고등학교 1학년 때였고, 고등학교 생활에 정신없이 바빴다..라는 핑계로. 사실 생각해보면 내 고등학교 때 바빠서, 라는 말은 대부분 핑계였고, 이것도 마찬가지일거다. 애초에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을 안하면 생길 수가 없는 분야. 어쩌다보니 관심이 생겼어, 라는 말이 성립되기 어려운 분야가 바로 이쪽이다. 사회의 주류는 외면하는, 주류에서 밀려나 소수를 바라봐야하는 일.


어디까지나 이 다큐멘터리, <당신과 나의 전쟁>은 쌍용차 노동자들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다. 쌍용차 측, 즉 예컨대 안진회계법인[각주:1]이나 상하이차 등에게 마이크를 넘겨주면,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풀어놓을거다. 그게 의외로 논리적일 수도 있고, 설득력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봐온 사실로는, 그렇지가 않다. 쌍용차 사태의 논리는 주로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라는 이야기다. 다큐멘터리 안에서 들었던 가장 인상깊었던 말은 "시스템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데, 회사라는 시스템을 살리기 위해서 인간에게 죽을 것을 강요한다"라는 이야기. 이런 복잡한 이야기로 새지 않더라도, 표창원씨가 그의 인터뷰집(?)인 <표창원, 보수의 품격>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사태에 인간을 중심으로 놓고 보는 자세가 결여되있는거다. 결국 문제는 인간인데, 법도 제도도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건데, 그 인간을 짓밟으면서 그 위에 존재하는 법과 제도는,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사실 나는 보면서 울컥했고, 분노했던 것 같다. 고등학생 즈음부터 생각해왔던건데, 도대체 왜 세상은 이렇게 불합리할까? 왜 세상은 저런 짓을, 저렇게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걸까? 이 세상은 도대체 왜? 왜? 왜? 이런 생각을 고등학생 때부터 했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했고, 그게 왜 안고쳐지나 한탄했다. 이 다큐를 보면서도 비슷했다. 저런 무자비한 짓을, 인간같지 않은 짓을 저렇게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이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인걸까?


비판의 여지가 전혀 없는 다큐멘터리인 것은 아니다. 생각해볼 거리도 조금 있다. 항상 생각하는건데, 나는 정말 위태위태한 선상에 서있는 경우가 많다. 조금만 넘어지면 보수주의의 논리에, 반대로 넘어지면 진보주의의 논리에. 머리는 진보라고 생각하는데, 진보는 불편하다. 그 불편한걸 감수하고 넘어서는게 진보인데, 그러질 못하고 있다는 느낌. 논리도 그렇다. 솔직히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사측의 이야기도 조금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사실이다. 지나친 감성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는 다큐멘터리라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고. 첫 번째 이야기는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두 번째 생각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래서 뭐?"라고 대답해야할 문제인 것 같다. 지나친 감성주의, 그래서 뭐? 감성은 함정에 빠지기 참 쉬운 수단이다. 감성에 매몰되면, 이성을 잃기 쉽다. 그렇지만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감성주의의 그런 '힘'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설득시킬 때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그리고 굳이 설득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떤 사태를 분명히 인지시키는데에.


참... 보고나면 머리가 복잡해지는, 그런 다큐였다.

  1.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현재 쌍용차노조 측에서 말하는 '쌍용차 회계조작'의 당사자로 지목되고 있는 회계법인 [본문으로]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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