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크리스마스 (2011)



드라마 스페셜 연작시리즈 3탄, <화이트 크리스마스>. 

※스포일러 있음.


1. 핵심 등장인물은 다해서 11명이다. 학생 여덟, 선생님 하나, 연쇄살인범 하나, 스토커 하나. 처음에는 이 많은 애들을 다 어찌 외우나 싶었다. 연예인들 얼굴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편이라서.. 그나마 아는 얼굴은 이솜씨 한 명 정도(유령 때 신효정 역할로 나오셨던 분..). 물론 두세편 본 시점에서 드라마에 과몰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몰입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름 못외울 걱정은 할 필요도 없었다. 위 포스터 기준으로 '조염병' 조영재, 이재규, '대천사 가브리엘' 윤수(성이 윤 이름이 수. 처음엔 왜 윤수만 저렇게 친하게 부르나 싶었다), '매뉴얼맨' 박무열, 유은성, 양강모, '미친 미르' 강미르, 최치훈. 저 이름을 측면 얼굴만 보고 술술 불 수 있다니, 정말 열심히 보긴 봤구나. 아직 이름이 안나온 사람들은 순서대로 선생님 윤종일, 연쇄살인범 김요한, 스토커 오정혜.


2.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전체 주제의 핵심은 편지가 아니지만,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1부격이 되는 앞 4편, 박무열에 의해 나레이션이 진행되는 파트에서 이야기의 핵심은 단연 '검은 편지'다. 

계속해서 생각해봤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너는 나를 비참하게 물들였고

너는 나를 구석괴물로 만들었고

너는 네가 아는 걸 침묵했어

너는 내 가망 없는 희망을 비웃었고

너는 내가 가진 단 하나를 빼앗아 목에 걸었고

너는 내가 내민 손을 잡았다가 놓아 버렸고

그리고 너는 눈앞의 나를 지워버렸고

마지막으로 너는 나를 가로챘어

Merry Christmas Happy New Year

8일간의 휴일이 지나고

느티나무 언덕길을 올라와 시계탑 앞에 서면

죽어 있는 누군가가 보일 거야

아기 예수가 태어난 밤에 나는 너를 저주한다

아직도 왜 저 편지를 받았다고 해서 남아야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애초에 '자신의 죄도 모르는' 학생들이 단순 장난으로 치부하지도 않았고, 결정적으로 남으라는 말도 없었는데 왜 남아있는지를 모르겠다) 결국 저 편지 때문에 학교에 남게 된 아이들이 겪는 이야기다. 저 편지의 원본은 김진수가 죽기 바로 전날 남긴 일기다. 이재규는 김진수가 죽고 나서 전학왔기 때문에 그의 죄는 원래 편지엔 없었고, 자신이 보냈음을 숨기기 위해 덧붙인 것이다. 또한 느티나무 언덕길을 올라와~ 이 부분은, 원래 시계탑이 아니라 교문이었다. 교문이 옮겨진 후 전학온 이재규의 실수.


2부에서 게임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핵심이기도 하지만 저 편지의 내용 자체는 핵심으로 부각되지 못한다. 앞 네 편에서도 편지의 내용에 대한 탐구보다는 "누가 보냈는가?"에서 발생되는 학생들 사이의 긴장감에 주목한다.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저기에 김진수의 죽음에 어느정도라도, 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죄를 지닌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비참하게 물들였고, 구석괴물로 만들었고, 아는 걸 침묵했어>는 어떻게 죽음으로 연결되었는지 고리도 잘 안생긴다. 오히려 김진수의 피해의식에 가깝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물론 <희망을 비웃었고, 단 하나를 빼앗아 목에 걸었고>는 김진수의 죽음과 직결될 수도 있겠지만 나머지도 영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3. 2부에서 이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하는데, 이 이야기의 핵심은 역시 앞의 내용보단 바로 이 '심리게임'일 것이다. 심리학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까지도 심리학이라는게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됐을 정도니까. 정신과 의사인 김요한은(드라마 중간에 임상심리사라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두 자격증을 모두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두 개가 서로 같은 직업은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아이들을 적절하게 몰아붙여가면서 게임을 채찍질한다. 아이들 사이에 배신을 종용하면서, 아이들 속의 '괴물'의 알을 깨내려고 한다. 그는 <괴물은 태어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에 대해 답변을 찾기 위한 실험이라고 말하지만 그의 행동이 보여주듯 그의 가설은 괴물이 만들어진다는 쪽에 있다. 그에 대해서 드라마가 보여주는 모습은 전혀 희망적이지 않다.


만약 이게 밝고 명랑한 청소년 드라마라거나 만화였다면, 물론 이런 소재를 택하지도 않았겠으나, 아마 다들 괴물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결론은, 그의 가설이 맞다는 쪽이다. 수신고 학생들은 자기 자신들은 당신(김요한)과는 다르며, 괴물이 되기 보다는 사람으로서 죽는걸 택한다(윤수)면서 김요한에게 패배를 선언한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김요한을 떠밀고, 그를 충분히 살릴 수 있는 기회에 그를 방관함으로써 김요한을 살해한다. 그리고 김요한은 "내가 이겼어"라며 득의에 찬 미소와 함께 추락사한다. 결국 그들은 모두 괴물이 되어버렸다. 솔직히 괴물이 될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최치훈이 살아있다는 점에서 결국 아무도 죽지 않고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모두 괴물이 되었고, 윤수는 결국 죽어버렸다.


4. 김요한은 싸이코패쓰일까?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평상시에 우리가 떠올리는 그런 광적인 싸이코패스적 기질은 아니지만, 죄의식같은 부분에서는 싸이코패쓰적인 기질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자기 자신을 괴물이라고 칭했던 것 같기도 한데... 정확한 건 유은성이 김요한을 '괴물'이라고 불렀다는 점. 애초에 제작의도 자체도 싸이코패스와 관련된 이야기로 시작하는 걸 보니 김요한은 싸이코패스라고 보아야하려나.


5. 그나저나 워낙에 남자들이 쏟아져나오는 드라마이다보니 홍일점..이라고 하기엔 좀 암울하긴 했지만, 어쨌든 유일한 여자 캐릭터인 유은성은 분명 돋보였다. 실제로 드라마에서 핵이 되는 인물이었고. 강미르를 포함한 8명의 학생들 중에서 가장 먼저 괴물이 된 것도, 사실 윤수가 아닌 그녀가 아니었을까. 김요한이 뒤흔들어놓기 전에 유은성은 이미 어딘가 망가져있었으니까. 결국 드라마 8편 대부분동안 유은성은 굳은 표정이었다. 감정이 없다기보다 좋은 감정 전체를 나쁜 감정으로 바꾼 느낌. 그래도 아이들이 뛰어노는 몇몇 장면에서는 유은성도 밝게 웃으며 노는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설정구멍인지 그냥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짧게나마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캐릭터와는 별개로 이솜씨는 웃는 모습이 참 예쁜데 거의 안나왔음. 아쉬웠어.


6. 이 드라마는 제작까지는 오만 고생을 다 했다고 하는데, 정작 방영된 이후로는 두터운 매니아층을 형성했다. 원래 16부작 대본이었다가 8부작으로 축소 촬영되었고, 8부작 드라마를 재편집한 감독판 DVD에 16부작 당시의 대본이 포함되자 굳이 많은 사람들이 그걸 열심히 샀을 정도로. 나도 대본집이 너무 너무 보고 싶다. 11만원이란 돈이 부담되서 아직 지르지 못하고 있긴 한데... 한정판이라는데... 이를 어떡해야한단 말인가.. 


경계선 위에 서지마라. 그것은 동서양 공통의 오래된 터부. 선은 이쪽과 저쪽, 안과 밖을 구분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안과 밖, 이쪽과 저쪽을 몸안에 품고 있다. 그리하여 선은 혼돈. 그러니 경계선 위에 서지마라. 혼돈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라. 열여덟. 이 시기의 아이들이 불안한 것은, 경계선 위에 서있기 때문이다. 경계선 위의 아이들을 가늠할 수 없는 것은, 그 자체가 혼돈이며, 터부이기 때문이다. 

──E07 김요한 나레이션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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