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에 무언가 남기기

1. 여기저기에 무언가 남기는 데에 집착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애초에 무언가를 쓴다, 읽는다, 기록한다라는 데에 미묘한 로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관심은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게 집착의 선으로 넘어왔다. '버림'이나 '비우기'의 미학을 잘 모른다. 일단 내가 쓴건, 내가 끄적인건 무조건 가지고 있고 싶은 마음.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걸 자주 돌이켜보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작가나 수필가가 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 지나가는 일상을 조금이라도 잡아두고 싶다는, 뭐 그런 생각? 블로그도 시작할 때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그런 게 됐다. 


2. 그에 비하면 트위터는 뭔가 좀 아쉽다. 트위터는 내가 끄적인게 금방 트윗의 강물 속에 빨려 들어가버리 느낌. 내가 쓴게 보존된다기 보다 말 그대로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린다. 그런게 트위터의 재미고 미학이며 실제로 그걸 즐기면서 트위터를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역시 뭔가 아쉽다. 트위터를 시작한 이후로 블로그에 옛날같은 애정을 쏟아붓지 못하면서도 블로그를 없앨 수 없는건, 그런 트위터의 아쉬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옛날처럼 꾸준한 포스팅은 못하고 있고, 지금도 내가 글 쓴 날짜들을 되짚어 나가면 옛날처럼 일상 속에 블로그가 중심이 되고 있다기 보다 기억 나면 한 번, 갑자기 땡기면 한 번, 이런 식이다.


3. 물론 그 모든게 트위터 때문은 아니다. 아마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여기 저기에 무언가 적는 공간이 많아졌다는 것 때문이다. 계속 수첩을 쓰다가 올해는 아예 작정하고 프랭클린 플래너로 넘어왔다. 작년부터 다시 열심히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내 블로그는 철저하게 일상 블로그였고, 일기가 중심이었지 무언가 '읽을만한 거리'가 중심이 되는 블로그는 아니었다. 텍스트큐브닷컴이 내세웠던 '블로그+SNS'라는 개념으로 블로그를 오랫동안 써먹었다. 사실 블로그를 언제 시작했나- 하고 되짚어 올라가면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최초의 블로그는 07년 1월 8일 개설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내 나름 블로그의 '전성기'였다. 물론 나만의 전성기는 아니었고 블로그라는 매체 자체의 큰 전성기였다.


4.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여기저기에 남긴 기록들을 보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있는 기록들은(물론 나는 내가 블로그에 쓴 글을 다시 읽는 경우 자체가 별로 없지만) 항상 누군가에 읽힌다는 것을 전제로 쓰고 있었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은 쓰지도 않았고 쓰게 되더라도 나름의 편집이 필요했다. 그러다보니 기록에 구멍이 숭숭 뚫리기 시작했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이후로 그럴 걱정은 좀 덜었고, 그래서 블로그보단 일기에 더 열심히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일기라고 해서 모든걸 적어내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는 굳이 나중에 보기 위해 적는다기 보다 적는 순간의 즐거움을 중시하긴 하지만, 그래도 결국 내가 기록에 집착하는 이유는 언젠가 이 기록들을 다시 살펴보면서 아, 이랬던 때도 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지는걸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할테니까.


5. 최근에 쓰는 글들을 보면 알겠지만, 내가 블로그를 어떻게 쓸지를 고민하고 있다. 블로그를 버리기도 아깝고, 살려두기에도 벅차다. 블로그를 내 나름의 '글 공개 장소'로 써먹자는 용도는 내가 블로그를 방치한 사이에 나와 교류할만한 블로거 분들이 많이 떠나가버리셔서 별로 의미없게 됐다. 일기와의 뚜렷한 차이점을 찾을 때까지는 계속 이렇게 어정쩡한 블로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함. 아예 설치형 블로그로 넘어가서 검색봇 거부해놓고 사용할까도 생각하고 있고. 그냥 일기로 만족하게 되면 블로그는 그대로 방치될지도 모르겠고. 옛날처럼 글쓰기가 즐겁지 않은건 아니지만, 벅찬건 사실이다. 무언가를 보고나서도 아 이거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이나 써볼까... 하면서 하루, 이틀 지나가다가 그대로 잊혀져버리는 경우도 잦아졌고.  뭐, 언젠가 어떻게든 되겠지.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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