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또아리 - 청바지를 입은 파우스트


※이미지는 동 연극의 프로그램북 표지 스캔


청바지를 입은 파우스트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부 연극학회 극단 또아리
2012. 12. 28


친구가 뜬금없이 자기가 연극학회에 속해있다며 뮤지컬이나 보러 오라길래 보게 된 뮤지컬. 재수 초에 대학로에서 뮤지컬 몇 편 본 이후로는 정말 오랜만에 본 뮤지컬이었던 것 같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대학교에서 학생분들이 하시는 뮤지컬이기도 했구요. 유명한 작품이라고 하던데 저는 처음들어봤던 작품, <청바지를 입은 파우스트>입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거운 내용을 갖고 있던 탓에 즐겁게 보기보다는 진지하게 볼 수 있었던 뮤지컬이었던 것 같습니다. 분명 문학시간에(그러니까 고등학교 때) 현대극 공부하면서 들었던 여러가지를 볼 수 있었던 것 같은데 거기에 사용되었던 용어들이 기억이 안나서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그 뭐였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그런거요. <낯설게하기>였던가. 


사건선이 2개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내용의 핵심이 되는 부분은 S대 P교수(...)인 왜 F교수가 아니지 파우스트인데 파우스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이죠. 친구한테 들어보니 뒷부분은 각색을 통해서 결말이 바꿨다고 하는데 기회만 된다면 <청바지를 입은 파우스트> 원작 각본을 봐보고 싶기도 합니다. 어쨌든 각색하시 분도 원작자 분도 의도하셨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밖의 이야기도 여러가지로 생각해볼만한 부분을 많이 던져줬다고 생각합니다. 뭐 생각해보면 이제 진부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논쟁이지만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아마 계속될 것 같은, <작가는 어떤 글을 써야하는가>에 대한 논쟁. 뭐 저는 작가도 아니고(아니 애초에 쓰는 글이 문학작품이 아니고)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어디까지나 제가 재밌어서 하는 거니까 언제나 자기만족적인 글을 쓰지만, 그게 관객을 상대하는 극작가, 독자를 상대하는 작가에게는 항상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따는 거죠.


이러면 곧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인가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지는데, 예컨대 흔히 말하는 <대중문학>과 <순수문학> 중 어느것이 더 좋은 것이냐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모범답안처럼 우열을 가릴 수 없다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글을 쓰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고(또는 글을 쓰지 않을 '때'의 이야기고) 정작 내가 글을 쓰게되면 그게 아니라는 것이죠.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자기가 담고 싶은 것만을 담아내는 것과 그걸 읽는 사람에게 어필하는건 동시에 챙겨가기 어려운 부분이니까요. 


다른 한 부분은... 뭐 조금 거창하게 말해보자면 김두식 선생님이 <욕망해도 괜찮아>에서 말하셨던 계의 사람이 그 계를 넘는 것...에 관련된느게 아닐까 합니다. 극 중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의 유혹에 넘어가서 자신이 그 '계'(물론 극 내에서 계라는 말을 쓰지는 않지만)를 넘어버렸다고 말하는데, 메피스토가 말하듯이 결국 그건 파우스트 본인의 선택이었고, 결말도 그렇게 지어집니다. 결국 파우스트는 자신의 첫사랑,  그레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죠. 원작과는 다르겠으나 극단 또아리의 <청바지를 입은 파우스트>에서는, 그러나 파우스트는 그레첸을 구하지 못하고 결말지어집니다. 


사실 파우스트가 느끼는 권태감이나 안정된 생활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욕망은 그러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느낄지도 모릅니다. 흔히 '무언가 일상에 활력소가 되어줄만한 짜릿한 것'을 찾는 사람들은 항상 많죠. 그런데 그게 어느 정도 선을 벗어나면, 외부로부터 비난을 받게 됩니다. 적절하게 계를 넘으려면, 바로 그런 비난이 쏟아질랑 말랑한 포인트를 찾아야할텐데, 그게 또 쉽지 않습니다. 결국 파우스트는, 극에 직접적으로 나타나진 않았지만, 법정에 출두함으로써 자신의 교수직을 잃을 것이고, 가족도 잃겠죠. 문득 계를 넘는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과연 외부의 비판을 두려워하며 계를 지키고 사는 삶이 지니는 가치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요. 자신의 욕망에만 순종하며 살 순 없지만, 그렇다고 외부의 시선이나 평가에만 목을 매며 살 수도 없는 일이니까요. 여러모로 여러가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떤 뮤지컬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본 뮤지컬은 대체적으로 밝고 활기발랄한 종류였는데 말이죠. 마지막으로 좋은 뮤지컬 볼 수 있게 해주셨던 극단 또아리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막공하셨을텐데 수고하셨습니다. :-)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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