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식 - <불편해도 괜찮아> : 무엇이 그리도 불편했나?


동아리 책이었다. 그래서 읽기 시작한 책이, 바로 이 『불편해도 괜찮아』였다. 저자인 김두식씨(라고 해야되나?)에게는 이미 『헌법의 풍경』에서 받은 이미지가 있었다. 뭐라고 해야할까? 이단아, 라는 표현은 조금 어긋난 것 같고, 어쨌든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 공익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 그리고 그 이상으로,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검사보다는 변호사가, 변호사보다는 교수가 잘 어울리는 사람. 법학과 교수=법학자라고 해도 되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내가 상상했던 법조인의 이미지──이성적인 법조인 이상으로따뜻한 법조인──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그렇지만 이번 책에서도, 『헌법의 풍경』에서도 그의 논리는 정연하고 날카롭다. 그것은 그의 글이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논리적 허점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빈약한 글은 아니다. 내가 처음 그의 글을 접했을 때, 그러니까 법과 관련된 책이 막연히 읽고 싶었고, 그러면서 읽게 되었던 『헌법의 풍경』은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는 느낌 이상으로 현실고백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가 법조인이라는 틀 안에서 자유롭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 그러나 꼭 한 번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는 느낌이었다. 『헌법의 풍경』이 2004년에 출판된 책이니까 이제 6년이 넘었고, 그도 이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지성인 중 한 명이 된 느낌이다. 2004년에 출판된 책은 2007년에도 2010년에도 끊임없이 여러 기관, 여러 언론이 선정하는 '이달의 책'이나 '이주의 책'같은 곳에 선정되곤 했다.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헌법의 풍경』이 여전히 훌륭한 책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책 자체가 잘 쓰여진 책이긴 하지만, 그 이상으로 우리의 법조계 현실은 6년간 큰 변화를 맞이하지 못했음을 의미할 것이리라.

김두식씨는 이후로도 <불멸의 신성가족>(2009) 등을 써서 계속 법조계를 비판해왔다. 그는 본인이 법을 공부했고 한 때 법조인이었기에 더욱 더 법조계를 비난할 줄 아는 사람이다. 법조계가 지나치게 폐쇄화되었고, 그러면서 자기 성찰이 부족한 집단이 되어간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 깊이 생각해보아야할 부분이기도 하다. 결국 김두식씨처럼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그러한 법조계의 '변두리'까지 와서야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변두리라는 어휘 선택이 적절한지는 모르겠는데, 법적인 실무를 보는 변호사, 검사, 판사 등의 자리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쨌든, 이렇게 날카롭게 현실을 비판했던 저자가 들고 온 책은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책이다. 제목만 보고 그 내용을 뽑아내기는 좀 어렵다.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이야기, 라는 부제를 들으니까 아, 하는 생각이 든다. 불편하다, 라는건 인권 이야기인 모양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고 김두식씨가 글로 담아낸 인권 이야기다. 특별히 예상 독자층을 딱 정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학생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재밌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대단한 영화광이었다는 저자가 그간 봐온 영화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집어내 비판하는 내용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사실 하고 싶었던 많은 이야기는 동아리 내 독서 토론에서 이미 신나게 해버린지라 무어라 말을 해야할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영화를 주제로 해서 인권에 접근했다는 것이다. 영화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또는 다뤄진 영화들을 이미 본 사람이라면 인권이라는 막연한 개념이 좀 더 머릿속에서 잡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리라. 영화 선택도, 물론 오래된 영화나 구하기 어려운 영화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가 접할 수 있었고 현재도 접할 수 있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부분 부분 파고들기보다 인권 그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내가 꽤나 인권을 편협하게 바라보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우리가 당연히 평등하다라고 하는 요소가 사실은 평등한 요소가 아니고,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특히 동성애자의 이야기를 다룬 부분은 우리가 모두 꺼려하면서 접근하기 어려웠던 부분을 속시원하게 긁어준다. 거기에는 우리가 동성애자에게 가진 수많은 오해와 편견도 섞여있다. 저자의 말에 귀기울이다보면 "무슨 이런 당연한 소리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지만, 돌이켜보면 정작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오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인권은 저자가 지적하듯 '대우받고 싶은 만큼 대해주는 것'이 이상적인 황금률이다. 동시에 인권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 '특수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모두가 똑같다는 것은 일면 인권 침해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 몸이 힘들다면 그가 일반적인 사람과 같은 사회 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한다. 그게 진정한 인권의 시작이다.

그렇지만 그건 여러가지 측면에서 참 어려운 일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을 확장시키고 확장시키고 다시 확장시키다보면, 그것은 어느새 '차별'이 되어버린다. 저 사람은 몸이 힘들어서 하기 어렵겠지, 라는 생각은 뻗어나가고 뻗어나가다보면 '어차피 하지도 못하잖아'라는, 부정적인 억양으로 흐르게 되고, 결국에는 그들이 '일반적인 사람과 같은 사회 생활'이 어려움을 인정하는게 아니라 '사회 생활'이 어려움을 인정하고 만다. 그러고는 그를 대우해주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이게 인권 보장에 있어서 가장 큰 방해 요소 중 하나인 것은 아닐까.

인권이라는 개념도 사회 변화와 그 흐름을 같이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도 평상시에 거기까지는 생각을 넓히지 못하고 있었지만, 친구들과 토론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아직은 시기상조다'라는 내용이었다. 나의 정치관이랄까, 인생관이랄까, 어쨌든 나는 여전히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이긴 하지만, 인권도 사회의 변화와 흐름에 따라 용인되기도 하고 부정되기도 하는 것은 확실하다.

내용 외로 나와보자면... 책 재질이 참 좋다. 종이도 두껍고 질이 좋은 용지를 사용했다. 아무래도 영화 사진 등을 넣어야해서 그랬던 모양. 그렇지만 딱 쥐었을 때 참 기분이 좋은 책이다. 내용과는 무관하게 말이지. 요즘 그런 책이라면 역시 <너의 의무를 묻는다>. 물론 두 책의 느낌은 많이 다르지만.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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