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容疑者Xの獻身, 2008)

까놓고 말하자면 나는 이 영화의 원작(동제의 히가시노 게이고 著 추리소설)을 읽어보지 못한 상태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사실 드라마의 연장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 드라마도 보지 않았고, 이게 시리즈물이라는 것도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네이버 영화 쪽에서 감상평을 둘러보면서 알게 된 것이라서 "아... 그랬던건가" 싶었다.
 대개 네이버 영화에서는 기차게 까이거나 기차게 띄워지거나 뭐 그렇다. 그런데 용의자 X의 헌신은 굉장히 어중간했다.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할까, 칭찬도 비난도 함께 받는다고 해야할까. 우선 까이는 쪽의 의견은 '소설의 본 맛을 못살렸다'라는 의견이 많았는데, 뭐 그에 대해선 지금은 기각하도록 하자. 내가 책을 안읽었으니까 판단할 수가 없다. -_-;;

Brain: 천재 수학자 vs 천재 물리학자

천재 수학자 vs 천재 물리학자

 이 영화를 단순히 추리소설의 관점으로 보자면 경찰 vs 범인이나 탐정 vs 범인의 구도가 아닌 '천재 수학자 vs 천재 물리학자'라는 알 수 없는 구도를 이루고 있다. 물론 천재 물리학자를 탐정의 위치에, 천재 수학자를 범인의 위치에 두면 구도가 굉장히 익숙한 구도가 되지만, 다른 추리 영화와 다르게 이 영화는 '검산'하는 영화다.
 영화를 보게되면, 물론 중간까지는 대 놓고 밝히지는 않지만 대부분 범인은 누구구나, 누가 도와줬구나하는 것을 알게 된다. 즉 '답은 정해져있다.' 그럼 등장인물들이 하는건? 검산이라고 해야할까, 서술형 답란을 적고 있다고나 할까. 증거를 찾아 퍼즐을 맞춰나가는 과정을 맞추고, 한 쪽에서는 그것으로부터 계속해서 퍼즐을 만들어낸다.

아무도 못 푸는 문제를 만드는 것과 그 문제를 푸는 것

새 수학 문제가 하나 생각났어. 아무도 못 푸는 문제를 만드는 것과 그 문제를 푸는 것 중 뭐가 더 어려운가. 단! 답은 반드시 존재한다고 하자.
-<용의자 X의 헌신> 중, 유카와 마나부
 그래, 이 한 마디의 말이 구도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아무도 못 푸는 문제를 만드는 것'은 이시가미가, '그 문제를 푸는 것'은 유카와가 한다. 그렇게 구도를 이뤄간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결국 유카와는 문제를 풀어내기 때문에, 유카와가 이겼다고 봐야할까. 사실 영화는 추리에 약한 나에게 있어선 분명한 반전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설마하니 시체를 바꿔치기 할 줄이야 -_-; 어떻게 보면 그렇게 큰 반전은 아니었겠지만 왠만한 트릭 하나만 튀어나오면 쓰러지는 나[...]라서 전혀 예상도 못했다. 우와, 정말로? 라고나 할까.

수학과 물리학

 둘은 굉장히 친한 친구이지만, 위치는 완전히 다르다. 한 명은 성공한 교수로, 한 명은 평범한(아니 어쩌면 그 보다 조금 더 나쁜 상황의) 교사로 살아가고 있었다. 같은 대학을 나왔지만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굳이 호칭을 붙이자면 물리학자와 수학자였다. 영화에서 유카와는 물리학과 수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애시당초 수학자와 물리학자는 답에 다다를 때까지의 과정이 정반대야. 물리학자는 관찰하고 가설을 세워 실험으로 증명해 나가지. 하지만 수학자는 전부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해 나가.
-<용의자 X의 헌신> 중, 유카와 마나부

Heart: 한 여자를 사랑한 남자, 그 남자의 사랑 방식

남자가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렇지만 이 영화는 과연 추리영화일까. 그렇다라고 대답하기엔 마음에 걸린다. 애초에 이 영화는 '분류하자면 추리이지만 추리영화이길 포기해버렸고 내용이 로맨스로 분류해야할까 싶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사랑과도 너무 거리가 멀어서 도대체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는' 작품 정도로 설명할 수 있는게 아닐까. '추리를 가장한 사랑'이라는 평가는 과연 괜히 나온 것은 아니었다. 이 영화는 추리에 초점을 두고 있지 않았다. 한 수학자의 괴짜같은 사랑에 초점을 둔 작품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추리는 덤 정도였을까. 아니 조미료라고 하는 쪽이 좀 더 가까울지 모르겠다.
사랑이라고 하면 조금 더 청춘을 바랬을까. 그렇지만 이 영화가 그려내고 있는 사랑은 그런 정열적인게 아니다. 어쩌면 가장 침울한, 가장 어두운 사랑을 그려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 <분명한 사랑>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과연 나는 누군가를 저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그렇다, 라고 자신있게 말하기는 역시 어렵겠지.

가장 차갑지만 가장 따뜻한 사랑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가장 차갑지만 가장 따뜻한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자신이 아끼는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을 때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 거기에 자신의 한 목숨까지 걸어가면서 담담히 준비를 해나가는 그의 모습은 과연 저런 것이 사랑이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그렇다, 그는 지나칠 정도로 담담하다. 굉장히 담담한 태도로 그녀를 위해, 그리고 그녀의 딸을 위해 그녀의 살인을 감추어주고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갈 수 있도록 준비해준다.

마무리는, 잔인할 정도로 희생적인 헌신이었다.

마무리는 잔인할 정도로 희생적인 헌신이었다. 사실 살인은 한 것은 나다, 라고 자수를 해버린 것이다. 그의 증언에는 한치의 '모순'도 없었다. 그렇다, 거짓이 없었던게 아니라 모순이 없었다. 사실 자수 그 자체는 거짓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는 그녀가 사랑했던 한 여자를 위해서 자신이 감옥에서 수감 생활을 하는 것까지도 감수한 것이다.

가장 극단적으로 그려낸, 숨막히는 인간애 그 자체에 대한 영화

 그것은 보은이었을까 사랑이었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나는 그것을 확신할 수가 없다. 사실 그녀, 하나오카 야스코는 이시가미가 모든 것에 절망하고 목숨을 끊으려 했을 때 그의 집을 방문해 '자신도 모르게' 그를 살렸었다. 극서에 대해 이시가미는 사랑과 은혜가 뒤섞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이 영화의 마지막부분, 클라이막스 장면. 무언가가 가슴에 툭 하고 와닿았던 장면. 그토록 담담하게 트릭을 준비하던 천재 수학자, 그랬던 그가 처음으로 인간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영화의 마지막에서야, 인간다운 모습을. 자신도 함께 벌을 받겠다는 야스코의 앞에서 결국 절규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경찰에게 끌려가는 모습은 또 얼마나 애처로운지.
 그러고보면 하나같이 슬픈 이야기들 뿐이다.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 수학자와 그의 보호를 받으면서 과거의 고통도 경험하고, 살인의 고통도 경험하고, 상실의 고통도 경험하는 여자와, 친구가 아파하는 것을 옆에서 바라봐야하는 한 물리학자와. 결국 무엇이었을까, 이 사건은.
 영화는 내내 차갑고도 담담한 카메라로 담아간다. 영화의 색채가 전반적으로 굉장히 짙고 어둡다. 짙은 파란색과 검은 색으로 얼룩진 필름을 가지고 촬영한 것만 같은 작품. 그러한 카메라는 이야기의 담담함을 한없이 고조시킨다. 이야기는 추리 영화인데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담담하다. 이건 이랬고 이건 이랬지. 그래서 이건 이런거야.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뭐라고 해야할까? 인물들의 감정 기복은 한없이 평행선을 그리고, 영화 그 자체도 조용히 굴러간다.
 자, 한 번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 이 사건은 "극도로 잔인한 트릭을 쓴 살인 범죄"일 뿐일지도 모른다. 살인을 감추기 위해 또 하나의 살인을 했고, 시체를 바꿔치기 했다. 먼저 죽인 시체는 버렸고 두 번째 죽인 사람의 시체는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훼손했다. 차가운 이성의 눈으로 보자면 이시가미는 사랑에 미쳐버린 놈일 뿐이고, 야스코는 살인을 저지르고 자수도 하지 못하는 비겁한 사람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럼 이제 뜨거운 가슴으로 다시 한 번 이 이야기를 훑어볼까. 그렇게 보면 이 사건은 한 여자를 사랑했던 남자가 자신의 한 몸을 희생하여 여자를 도와주는 그런 이야기다. 도와주다 뿐인가, 결국 내가 범인이요- 하고, 자신이 범인이 되는 트릭을 세워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그것은 천재적인 두뇌와 사랑을 알아버린 가슴이 이뤄낸 합작이었다.

영화를 어떻게 보는가는 보는 사람 마음이지만

 이 영화를 어떻게 이해하는 가는 보는 사람에 달렸다. 단순히 추리로서 볼 것인가, 사랑 이야기로 볼 것인가. 그렇지만, 어떠한 관점에서 보든지,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2개의 안경을 겹쳐서 써보라는 것이다. 이 영화의 새로운 무언가가 당신의 뇌에, 그리고 가슴에 와닿을 것이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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