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야 리사 - 인스톨(Intall)

인스톨 - 10점
와타야 리사 지음, 김수현 옮김/황매(푸른바람)

와타야 리사에 관한건 전번의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감상에도 가득 기록되어있다. 어린 작가의 문체가 매우 경쾌하다.

와타야 리사는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으로 처음 알게 된 저자이지만 그녀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으며 데뷔한 것은 2001년 Intall에서부터였다. 그랬으니 본격, 팬이 되려면 적어도 데뷔작은 읽어봐야할 터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어렵게 찾아내 읽기 시작. 이번 책도 130페이지라는 짧은 분량 덕에 하루만에 끝낼 수 있었다.

책의 주인공은 도모코로 1인칭 시점에서 그려진다. 내용의 느낌이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과 아주 유사한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자전적 성향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기본적으로는 두 소설 모두 방황의 과정에서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른" 과정을 겪으며 아웃사이더처럼 되버린 아이들이 주인공이고, 성장소설이니만큼 어떤 사건을 계기로 눈을 뜨는 구주로 되어있다.

인스톨의 주인공인 도모코는 자신의 코앞에서 자신을 압박해오은 입시를 부정해버리고, 입시 전쟁에서 자진탈락해버린다. 쉽게 말하자면, 공부를 부정하고 거기에다 엄마 몰래 등교거부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어쩌면, 입시 제도가 흡사한 점이 많은 한국과 일본의 모든 수험생들이 가슴속 깊이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를 그 "욕망"을, 도모코는 말 그대로 "저질러버리는" 것이다.

스토리라인은 결국 2파트… 좀 더 나누자면 3파트 쯤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렇게 등교 거부를 하고, 음란 채팅을 하고, 결국 자아성찰을 하게 된다라는, 단순한 구조다.

사실 스토리는 모르고 와타야 리사라는 이름만을 보고 고른 작품인지라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아니, 애시당초에 자아성찰의 소재가 우연히 만난 남자아이(그것도 겨우 12세)와 동업 관계에서 음란 채팅에 종사하는 것이라니.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에서 자아성찰의 소재로 오타쿠 남자 아리를 고른 것은 오히려 별것 아닌 수준이다. 얼핏보면 어째 스토리가 영 막장이네, 하고 넘길지도 모를 작품인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정신차리고 읽어 보자. 결국엔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 작품이 아님을.

물론 저자 특유의 직설적이고 부드럽고 경쾌하며 가벼운 문체에 의해서 그 내용은 꽤나 적나라하다. 그런데 그 주인공인 도모코와 그것의 관계에서는 "음란"이라는 키워드보다 "일탈의 수단"이라는 키워드가 100배는 옳다. 과연, 어떻게 보면 소재는 그저 특이할 뿐이다. 얼핏보면 "오락주의적 성향"을 가진 소설인 것 같은데 내면은 그게 아니다. 분명한 청춘소설이고 성장소설이다. 그런가 하면, 저자의 경쾌한 문체는 내용의 심각성을 덜어내면서도 그것을 더욱 와닿게 만든다.

와타야 리사의 문체는 마법같다고 해야할까. 어떻게 보면 전혀 감정의 기복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그렇기에 내용을 더욱 확실히 와닿게 한다. 부정적인 일을 묘사할 때, 갑자기 말투를 바꾸며 심각한 전개를 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특유의 문체를 유지하면서 장난스럽달까, 뭔가 가볍게 전달한다. 그런데 정작 전달되어온 내용을 보면 가볍지 않다. 그것이, 와타야 리사 최고의 장점이자 그녀의 글이 가진 최고의 매력이다.


이야기는 과연 짧다. 150페이지에서 끝을 맺던 <발로 등을 차주고 싶은 등짝>보다 더 짧다. 추천사와 역자의 말을 제외하면 136페이지에서 이야기가 끝난다. 얇지만, 그 느낌은 충분하다. 사실 리사의 문체 자체가 이렇게 짧은 글에 꽤나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두께는 저자 자신도 "역시 너무 짧다"라고 말했을 정도이지만, 그게 또 내용을 압축하고 압축한 결과가 아니라 원래 딱 그정도의 이야기이니만큼 역시 딱 적당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글은 기본적으로 도모코, 나이 열일곱의 소녀를 그려내는데, 그녀는 입시에 직면하면서 방황하기 시작한다. 내 생각일 뿐이지만, 17세는 무언가를 결정하기엔 분명히 너무 이르다. 아직 중요한 결정을 하기엔 너무 미숙하다. 그런데 우리 인새으이 중요한 결정 대부분은 이 즈음에 결정하게 된다. 그 앞에서의 방황은, 어쩌면 당연하다. 어리지도, 성숙하지도 않은 열일곱이라는 나이. 현실에 직면하며 많은 것을 깨닫는 나이. 저자 본인이 그 나이에 쓴 소설이기에 더욱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과연 나는 어떤가. 물론 지금의 상황은 방황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안주에 지나지 않는다. 나를 덮쳐오는 열일곱에 나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확실히 누군가에게는 깊은 여운을 새기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수많은 생각 거리를 안겨준 이야기였다.

 "나 매일 다른 애들하고 똑같은 이런 생활 계속해도 되는 걸까. 다른 애들하고 똑같은 교실에서 똑같은 수업받고. 난 구체적인 꿈은 없어도 야망은 있는데 말이야. 틀림없이 유명해질거야. 텔레비전에 나가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고이치에게 그렇게 말하고서, 이거 좀 안이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에 시큰둥해졌다.
고이치는 세상을 대표하는 어른인 양 그런 나를 한껏 꾸짖어주었다.
"멍청하긴, 다른 사람드랗고 똑같은 생활을 하기 싫다? 너, 자기가 엄청 특별한 줄 아는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시간만 아까워하고, 넌 인생의 목표가 없어. 그러니까 그렇게 구시렁구시렁 말도 많고, 다른 사람들은 극복해 낸 기본적이고 흔해빠진 고민거리를 질질 끌고다니는 거라구."

와타야 리사 저 <인스톨> 中 P7

내가 성장소설, 특히 와타야 리사의 책을 읽을 때마다 항상 깊은 공감을 느끼는 대목을 한 부분씩 발견하곤 하는데, 이번엔 7페이지 부분이 부분. "넌 인생의 목표가 없어"라. 비교적 목표를 뚜렷이 세우고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글세 어떨까. 과연 나는 제대로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야 너, 입시 공부하고 있냐? 설마, 나 어젯밤 아홉시에 자버렸다니까, 정말이야 그러니까 이렇게 힘이 넘치지. 그럼 그 눈 밑에 거뭇거뭇한 건 뭐냐. 뭐 내가 이렇게 추궁하지 않아도, 다들 상대방의 거짓말을 궤뚫어보고 있다.
자, 그렇다면 왜 모두들 앞을 다투듯 열심히 하지 않는 자신을 어필하려 애쓰는가. 그건 역시 자기를 천재라 착각하고 싶고, 남들도 그렇게 생각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 반면 대단한 평화주의에, 아아 귀엽다, 하지만 치사해, 멍하고 있었더니 고이치가 상냥한 말투로 다시 말했다.

와타야 리사 저 <인스톨> 中 P10 ~ 11

솔직히 나는 작가가 이 대목을 어떤 의미에서 삽입했는지, 그 저의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그저 경쟁의 상대로만 상대방을 인식하는 그 모습이라거나, 자신을 천재라고 생각해버리는 부분이라거나. 여러모로 생각할 부분이 많다.

소민(素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문의: kimv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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